유럽 산업은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 가장 많이 노출된 기업들은 고전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부인 엘케 뷔덴벤더가 영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2025년 12월 5일 금요일 잉글랜드 옥스퍼드의 지멘스 헬시니어스를 방문해 위르겐 캄프마이어 대표이사(왼쪽)와 함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경제는 잘 나가지만, 유럽 경제는 지리멸렬하다는 것이 우리들의 요즘 인식입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경제에 비해 유럽 경제가 힘이 없을까요? 경제 지표는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한국, 일본 경제가 저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유럽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9월 27일자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유럽경제가 우리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독일 경제의 침체만 보다가 다른 나라들 상황을 못 봤던 것입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 제품들의 공세가 유럽 전반에 도전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최근 몇년간 EU 일자리 상실분의 5분의4가 독일 한 나라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독일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EU 전체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나 기술자 같은 고숙련 직종의 고용은 7% 증가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는 다 알고 있지만, 한국 경제도 작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특수'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촉발된 방산 '특수'외에는 그다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특수가 끝난 후에도 한국이 2.5% 이상의 성장을 꾸준히 보일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한국 경제와 경쟁하고 협력할 수백 년 역사의 유럽 산업역량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유럽 화학기업들의 로비단체인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를 이끄는 마르코 멘싱크가 묻는다. 멘싱크는 먼저 암울한 진단을 내놓는다. 높은 에너지 가격과 중국과의 경쟁으로 공장들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업계 통폐합은 "불가피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희망은 책상 위에 놓아둔 전기케이블의 단면(斷面)에서 잘 드러난다. 이 케이블은 중국의 거대 기업 오리엔트케이블이 만든 제품이다. 그러나 전선을 감싸는 절연용 폴리머는 오스트리아의 보루주인터내셔널이 생산했다. 멘싱크는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업계 거물들이 이 유럽 기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고 말한다. 중국 기업들이 아직 만들지 못하는 케이블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산업 기반 상당 부분이 압박을 받고 있다. 9월 21일 폭스바겐은 구조조정 계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중국 경쟁업체들의 공세에 타격을 받아 올해 이익 전망에 대해 사전경고를 내놓은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 5곳 가운데 하나다.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우려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최근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중대한 고비"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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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폴리머 외에도 희망의 빛이 더 보인다. 광범위한 산업 붕괴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피해는 소수의 산업 부문에 국한돼 있다. 유럽 산업의 일부는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위협에 직면한 기업들 역시 새롭고 더욱 가혹해진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


최근 일부 유럽 제조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에너지다.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오랫동안 미국이나 중국보다 높았다. 보조금을 지급하기 전 기준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이나 중국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은 에너지 비용을 더욱 끌어올렸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다. 중국의 산업정책과 혁신, 품질 향상은 압연강재부터 전기자동차(EV)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의 생산을 촉진했다. 중국의 풍부한 공급은 국내 수요 둔화와 맞물려 있으며, 과잉생산 물량의 일부는 해외에서 판로를 찾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제한 조치로 유럽은 중국 수출업체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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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 기업들은 한때 규모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며 높은 이익률을 제공했던 중국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현지 공장과 공급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유럽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제한적이다. 그 결과 중국의 대EU 상품무역 흑자는 2019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해 4200억 달러에 달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특히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과거 중국은 이들에게 이익을 창출하는 핵심 시장이었지만, 이제 중국 제조업체들은 유럽 기업들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새로운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게다가 품질도 좋다. EU의 자동차 생산량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보다 17% 감소했다. 자동차 산업이 EU 일자리의 6%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결정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한 압박은 다시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을 줄여 EU 기업들이 더욱 뒤처질 위험을 키운다.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6개 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2024년 유럽은 제약, 전자, 화학 등 3개 산업에서 미국과 중국보다 적은 투자를 유치했다. 6개 산업 가운데 유럽이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한 분야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매우 암울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유럽 산업 전체가 몰락할 운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피해는 국가별, 산업별로 매우 집중돼 있다. 도이체방크의 에리크 하이만은 최근 몇 년간 EU 전체의 총부가가치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6%로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다고 지적한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이 비중이 소폭 하락했다. 고용 통계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3년 초 이후 EU의 제조업 고용은 약 2% 감소해 2800만 명이 됐다. 감소분의 5분의4는 독일 한 나라에서 발생했다. 전체 일자리 수는 줄었지만 엔지니어와 기술자 같은 고숙련 직종의 고용은 7% 증가했다.


일부 산업은 오히려 활황을 누리고 있다. 2023년 초 이후 제약, 항공우주, 전자산업의 고용은 증가했다. 인공지능(AI) 붐은 프랑스의 슈나이더일렉트릭, 독일의 지멘스, 이탈리아의 프리즈미안에 혜택을 주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데이터센터가 원활하게 가동되도록 하는 장비를 생산한다. 독일의 라인메탈과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같은 방산업체들은 국방예산이 늘어나면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무역 통계가 보여주듯 중국의 위협 역시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있다. 스위스 경영대학원 IMD의 사이먼 에버넷은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홍수처럼 밀려와 유럽 기업들을 휩쓸어버리고 있다는 통상적인 설명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이후 EU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의 증가율은 다른 지역에서 수입한 동일한 상품의 증가율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했다. 즉, 유럽은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지역에서 수입을 늘리고 있다.


물론 일부 중국산 제품의 수입은 급증했다. 에버넷은 독일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주요 품목 약 100개도 조사했다. 그는 2023년 이후 수입 물량이 25% 이상 증가하고 가격은 10% 하락한 품목을 찾아냈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한 품목은 11개였다. 전기자동차, 가구, 일부 화학제품 등을 포함한 11개 품목 대부분에서 중국산과 유럽산 제품은 정면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유럽 산업의 상당 부분을 가격경쟁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주장은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일부 중국산 수입품은 유럽 기업들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023년 이후 중국의 세계 수출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100개 제품 가운데 수출 증가분의 4분의3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로봇팔 같은 부품 및 중간재에서 나왔다. 이들 제품은 유사한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에는 위협이다. 그러나 이를 구매하는 유럽 기업들에는 생산비용을 낮춰준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산 중간재 수입에 노출된 산업에서는 산업생산의 연간 증가율이 0.6%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중국산 완제품 수입에 노출된 산업에서는 약 1%포인트 낮아졌다.


여러 측면에서 유럽 기업들은 변화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 풍부한 태양광 발전 덕분에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스페인에서는 유럽 기업들의 연간 투자액이 2021~2025년 기간에 그 이전 5년과 비교해 두 배로 증가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유럽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끊겼던 2022년에 비해 올겨울에 대비할 준비가 "훨씬 더 잘돼 있다"고 평가한다. 일부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 개선 조치를 시행하거나 현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추가로 설치했다. 다른 기업들은 금융 헤지 거래를 늘리고 있다. 벨기에-프랑스 화학기업 솔베이와 독일의 소금 생산업체 K+S는 올해 에너지 소비량의 대부분에 대해 가격 변동 위험을 헤지했다.


EU 제조업체들은 서비스 판매도 늘리고 있다. 2024년 서비스 수출액은 4600억 달러로 2년 만에 21% 증가했다. 덴마크의 풍력터빈 제조업체 베스타스와 독일의 MTU에어로엔진스 같은 기업들에게 이것은 유지보수 계약을 의미한다. 다른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판매를 늘리고 이를 자사의 하드웨어에 결합하고 있다. 독일의 거대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는 일찌감치 이러한 추세를 파악하고 여러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했다.


실제로 많은 기업 지도자와 정책결정자들은 유럽 산업의 미래가 소프트웨어, 특히 AI에 달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멘스의 이사회 의장인 짐 하게만 스나베에게 AI가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 독일은 이미 근로자 1인당 산업용 로봇 보유 대수에서 싱가포르와 한국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이는 유럽에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유럽은 낡은 산업의 쇠퇴를 애도하는 일을 그만두고 AI와 다른 신기술의 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 분야에서 미국 및 중국과 유럽 사이의 격차는 크며, 이는 단지 AI 모델 개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과 중국이 유럽 산업에 가하는 위협은 과장돼 있다. 그러나 유럽이 AI 분야에서 더욱 뒤처질 경우 직면하게 될 위험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