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4일 1차 투표로 막을 올리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들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두 정치 비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흔히 룰라로 불리며 중남미 좌파의 기수로 꼽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이 4선 도전에 나섰으며, 맞상대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상원의원이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지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징역 27년형을 선고받은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이번 대선은 브라질이 외교정책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대결이기도 하다. 룰라는 중국 등 대외 파트너들과의 관계 확대를 통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선호한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브라질이 여전히 외교정책 전략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무력분쟁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유입되고 있어, 본래대로라면 현 국제 정세의 격변과 강대국 간 경쟁을 잘 관리하고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값진 지정학적 자산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국제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행동의 자율성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은 브라질과 관계를 맺을 때 점차 자국의 조건을 관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브라질은 최근까지도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같은 지역기구의 창설을 주도했던 남미 대륙에서도 고립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40년간 역내 안정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던 아르헨티나와의 관계는 양국 모두 상대국 수도에 대사를 두지 않을 정도로 악화했다.
영향력 감소의 책임은 대체로 브라질 자신에게 있다. 브라질의 영향력은 상당 부분 오늘 체결한 합의를 내일도 이행할 것이라고 해외 파트너들이 믿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도는 국가의 이행 역량에 좌우된다.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공공기관들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며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기존 합의가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능력이다. 가중되는 재정적 제약, 내전에 가까운 정치체제의 분열, 만연한 부패 등 산적한 국내 문제들로 인해 브라질이란 국가가 약속을 이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현재는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하며 따라서 브라질이 맺은 약속의 지속성에 필수적인 기관인 연방대법원마저 대형 스캔들에 휩싸였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 국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브라질의 취약성은 더욱 심화했다. 어떠한 합의든 논란의 대상이자 정파적인 사안으로 변질되고, 향후 브라질과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이를 뒤집으려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이러한 취약점들을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지금까지 후보들은 이를 해결할 명확한 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쪽으로 기우는 것도, 다자외교를 중시하는 것도 브라질의 외교적 자율성을 갉아먹고 보유자산을 실질적 국력으로 전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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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불능의 현실
브라질이 세계를 상대로 신뢰를 보여주는 데 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브라질은 경제안정화 계획을 통해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를 공고히 다지고 강화했으며, 아르헨티나와 경제 통합 및 핵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 역내 안보를 개선했다. 이러한 약속들은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되는 동안에도 꾸준히 유지되었다. 유럽과 미국 같은 주요 강국들의 눈에 브라질은 매력적인 투자처이자 다자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 파트너들의 눈에 비친 브라질은 심각한 재정 문제, 극도로 분열된 국내 정치, 고질적인 부패에 시달리는 나라다.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캐나다와 비슷하고 스페인보다 크며,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해 세수를 확보하는 막강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이자 지불 이외의 지출 가운데 90% 이상이 의무지출로 묶여 있어 재량지출 여력이 거의 없다. 막대한 핵심 광물 매장량을 활용하는 데 절실히 필요한 인프라 같은 분야에 투자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브라질의 정부 부채가 2026년 말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9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질금리가 약 10%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 부채를 상환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지 않았다면 치안·안보 역량을 강화하거나 다른 전략적 우선순위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쓰였을 자원이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의 재정적 제약은 자국 범죄 조직들이 국경을 넘어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억제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실패로 인해 다른 국가들이 브라질의 문제를 떠안게 되면서 파트너로서 브라질의 신뢰도는 더욱 훼손되고 있다. 브라질 당국은 거대한 범죄조직망에 대응할 충분한 자금이 없다. 이들 조직은 아마존강 유역 전역에서 1500곳이 넘는 비밀 활주로를 운영하고 브라질과 10개 인접국 간의 국경을 넘어 마약·금·무기 등 각종 물품을 밀수하며 감시가 허술한 약 8000km의 해안선을 악용하고 있다. 브라질의 재정이 빠듯해지는 가운데, 범죄 위협은 브라질 국가가 이를 퇴치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브라질은 정부기관들이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각 기관에는 시험을 통과해 임용된 고도로 전문적인 관료들이 포진해 있으나 기관들은 권한과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치열하게 다투며 서로의 입지를 깎아내린다. 일례로 치안 정책의 책임은 연방경찰, 고속도로경찰, 정보기관, 26개 주와 연방구(수도 브라질리아가 속한 행정구역) 각각의 군사경찰 및 민간경찰, 군대, 연방국세청, 그리고 독립적인 연방 및 주 검찰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조직범죄에 맞서기 위해 여러 기관을 중앙 컨트롤타워 아래 조율하려는 시도는 의회에서 무산되었다. 각 기관을 대변하는 직능단체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어떤 조치에도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느 단일 기관도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신속하게 자원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고, 범죄 조직들은 관료제의 틈새를 파고들며 급격히 세력을 불렸다.
브라질의 내부 분절은 국제협력도 저해하고 있다. 여러 기관이 중첩되는 권한을 주장하고 각자의 우선순위를 추진할 때 서로 조율하지 않아, 국가가 하나의 단일한 주체로 행동하기 어렵다. 브라질 범죄조직망이 번성하고 있으나 자력으로 맞설 자원이 부족한 파라과이나 우루과이 같은 인접국들과도, 브라질은 정보공유와 합동작전 및 공조 집행을 위한 지속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브라질이 자국 안보 의제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브라질 영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범죄 조직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결정은 점차 브라질 밖에서 내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브라질의 양대 범죄 조직인 PCC(Primeiro Comando da Capital)와 CV(Comando Vermelho)를 테러 단체로 지정해, 미국이 이들을 소탕하는 데 새로운 금융·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했다. 중남미의 여러 정부도 미국의 카르텔 대응 정책에 동참했다. 그 결과 브라질은 자국 안보정책의 주체가 아닌 타국 안보정책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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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의 기록
부패가 브라질의 가장 야심 찬 외교정책 프로젝트들을 괴롭혀 온 역사는 길지만 최근 불거진 공적 스캔들은 국가적 평판에 치명타를 입혔다.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와 브라질 국립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의 자금 지원을 받은 대형 건설사들이 연루된 대규모 스캔들은 브라질이 중남미 전역에서 따냈던 대형 계약들을 뒤엎었다. 남미 대륙 전역의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뇌물과 리베이트가 오간 이 스캔들은 정치적 위기를 촉발해 2016년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의 탄핵과 2018년 룰라의 수감으로 이어졌다. (룰라의 유죄 판결은 나중에 무효화되었다.) 이어 2018년 말, 일련의 스캔들은 반기득권 반발 정서에 기름을 부어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집권하게 만들었다. 부패를 적발하고 수사했던 판사들과 검사들은 그 시기를 거치며 브라질 국민을 실망시킨 정치 계급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자처했고, 막강한 정치적 권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2025년 말부터 대중은 사법부 일각이 부패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시장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던 방쿠마스테르Banco Master의 사주가 연방대법관 가족들에게 뒷돈과 수익성 높은 계약을 제공하고 대법관들의 사적 여행에 자신의 전용기를 빌려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선출된 정부에 맞설 수 있어 권위를 얻었던 대법원이 이제 의혹의 대상이 되면서, 과연 차기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 스캔들은 다가오는 대선 정국을 집어삼켰으며 선거 결과에 걸린 판돈을 키웠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본인 자신이 방쿠마스테르와의 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부친의 사면을 포함해 부친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에 맞서겠다고 공언했다. 룰라는 스캔들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지만 룰라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또한 이번 대선 승리자는 대법관 11명 중 최소 3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되어 사실상 대법원을 재편할 권한을 쥐게 된다.
부패는 브라질의 외교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브라질에서 발생한 스캔들은 해외에 브라질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었던 기업과 기관들을 반복해서 무너뜨렸다. 21세기 초 페트로브라스와 대형 건설사들은 개발 사업을 통해 브라질의 역내 영향력을 구축하고 있었으나 2010년대의 스캔들이 이들의 영향력을 꺾어놓았다. 오늘날에는 규칙이 정치보다 우위에 있도록 보장해야 할 법원이 권위를 잃고 있다. 해외 파트너들은 어떤 합의가 다음 스캔들에 휘말릴지 알 수 없어 리스크를 분산하게 된다. 핵심광물, 에너지, 농업, 인프라 같은 분야에서 브라질에 대규모 장기 투자를 검토하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더 강력한 투자 보증을 요구하거나 계약 조건에 대한 통제권을 더 크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으며, 아니면 단순히 위험부담이 적은 소규모 합의를 택할 것이다.
기댈 곳 없는 브라질
수십 년간 브라질은 국제규범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방식으로 국가적 약속의 신뢰도를 높여왔다. 예컨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국내 보호무역주의 정치인들이 무역 개방에 반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인권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군정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고문과 초법적 폭력 같은 관행을 이어가려던 국내 치안·안보 기관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국제 은행 기준에 합의한 것은 브라질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에 엄격한 규정을 부과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주었다. 이러한 대외적 제약은 브라질 지도자들에게 국내의 반대를 극복할 지렛대를 제공했으며 해외 파트너들에게는 브라질에 대한 더 큰 신뢰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제 국제규범이 거센 공격을 받게 되면서, 공공계약에 대한 특혜적 접근이나 규제상의 이점 또는 정치적 비호를 노리는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막아줄 방어벽이 줄어들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를 훨씬 더 악화시켰다. 브라질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미국의 시도는 브라질이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선택을 할 때 치러야 할 대가를 높였다. 만약 미국이 압력을 가해 브라질이 기존 약속을 파기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국 내에서 브라질의 입지는 올라갈지 몰라도 다른 모든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서 브라질의 신뢰도는 추락할 것이다. 이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미·브라질 관계가 백악관이 정치적 결과에 조건부로 연계하거나 개인적 친분에 결부시킨 합의에 좌우된다면, 향후 미국의 차기 행정부들은 이를 정파적인 합의로 치부할 명분이 커져 이를 파기하거나 변경하려 들 수 있다.
한편 강대국 간 경쟁이 더욱 제로섬 양상을 띠게 되면서 브라질이 맺은 모든 파트너십은 끊임없는 검증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브라질이 자국 5G 통신망을 어느 나라에서 공급받을지 결정하든, 신흥 인공지능(AI) 인프라의 기반 기술을 어느 나라 것으로 채택할지 결정하든, 파트너 국가들은 경쟁 강대국이 물러서라고 압박하더라도 브라질 정부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브라질의 신뢰도가 약해질수록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강대국과 긴밀한 관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입지는 좁아진다.
핵심광물을 둘러싼 각축전에서 브라질은 고강도 철강 생산에 쓰이는 금속인 니오븀niobium의 세계 생산을 장악하고 있고 대규모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희토류 가공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지배력을 우려하는 미국은 공급망에서 중국계 기업들을 배제하려 애쓰고 있다. 생산업체들은 이미 경쟁하는 공급망 사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콜로서스 희토류 프로젝트를 개발 중인 호주 기업 비리디스 마이닝 앤드 미네랄스Viridis Mining & Minerals는 중국 측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구매자들에게만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브라질 전체 수출의 거의 30%를 사들이고 있으며 전력, 광업, 자동차, 석유 등 주요 전략 분야의 큰손 투자자로 자리 잡았다. 브라질은 여러 당사자를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가령 미국과 중국이 모두 브라질이 상대방의 압력에 굴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그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신뢰의 부족은 잠재적 파트너들을 아예 떠나가게 만들 수도 있다. 브라질은 해상 유전을 발견한 뒤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가치가 높은 유전에 적용되는 규칙을 고쳐 썼을 때 이미 이런 상황을 겪었다. 2013년 거대한 리브라 유전의 개발권을 경매에 부쳤을 때 유효한 입찰에 나선 곳은 단 한 개 컨소시엄뿐이었으며, 그마저도 개정된 조건상 허용된 최저가를 제시했다. 브라질은 새로 가치가 높아진 자산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게임의 규칙을 갑작스럽게 바꾼 탓에 새로운 계약의 조건을 주도적으로 설정할 힘을 잃고 말았다.
현장에서 통하는 신뢰
브라질 같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약속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 걸프 지역 아랍 국가들에서는 집중된 권한이 신뢰성 부족의 해법이다. 해외 파트너들은 걸프 국가들이 어떤 합의를 맺든 자기 몫을 이행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도자들이 국가 관료 조직의 후속 이행을 확실히 관철할 수 있을 만큼 정치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튼튼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일상적인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국가의 약속을 지켜내는 객관적 제도, 그리고 이러한 제도들이 약속을 실행에 옮기기에 충분한 규모의 예산에 의존한다.
브라질에는 권위주의 체제와 같은 집중된 권력도, 같은 기능을 수행할 만큼 튼튼한 민주적 제도도 없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보증을 내놓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취약한 재정 상태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자원도 제한되어 있다.
두 대선 후보는 신뢰회복을 위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미국과의 더 긴밀한 공조를 통해 미국 정부로부터 신뢰를 빌려오려 한다. 공급망을 중국의 통제 밖에 두자는 미국의 핵심광물 계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한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를 안심시킬지는 몰라도 중국 정부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극도로 거래중심적인 외교정책을 펴는 단일 후원국의 처분에 브라질의 운명을 맡기게 만들 것이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배제하는 조건에 동의하면 미국과 더 많은 합의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다른 강대국들이 독립적인 협력 상대국으로서 브라질을 덜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룰라는 모든 주요 강대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강화하고 다자외교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브라질의 자율성을 지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 방안은 브라질이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보장해주겠지만, 브라질이 유지하고 투자해야 할 대외 관계의 수를 크게 늘려 이미 한계에 달한 국가기관들에 훨씬 더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이 전략은 외풍이 브라질을 여러 방향으로 잡아당기더라도 브라질이 여러 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수 있다고 각기 다른 파트너들이 믿을 때만 작동한다.
두 전략 모두 신뢰의 바탕이 되는 국가역량을 재건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브라질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브라질은 여전히 해외 파트너들과 협력할 방법을 일부 찾아낼 수 있겠지만 더 높은 비용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합의를 맺을 때마다 브라질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후속협상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브라질의 자원, 수출품, 투자가 전 세계에 더욱 귀중해지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이러한 악순환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브라질의 협상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커져야 할 순간인데 말이다.
10월 4일에 시작되는 투표와 그로부터 3주 뒤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상위 득표자 두 명 간의 결선투표만으로는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브라질이 야심 찬 합의를 체결하고 이를 굳건히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 응집력,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도록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신 유권자들이 결정하게 될 것은 브라질이 신뢰의 적자를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그 적자를 메우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지 여부다.
마치아스 스펙토르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로 상파울루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FGV)의 정치·국제관계학 교수다.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글로벌 사우스의 대외 전략과 미·중 경쟁 속 헤징 외교를 다룬 다수의 글을 '포린어페어스', 등에 기고해 왔다.



포린어페어스 10월 2일자 기고문은 브라질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브라질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외교적 결함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쓴소리를 합니다. 브라질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필자는 브라질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잃어가는 가장 큰 문제로 국가적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우리에게도 아픈 것은 한국 역시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의 이행에서 일관성이 부족하고 흔들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브라질과 비슷한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도 마음의 변화, 신체의 변화, 사생활의 상황 등에 따라 주변사람들에 한 약속을 어길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가 갑자기 감기가 걸리거나 바쁜 일이 생겨서, 아니면 갑자기 마음이 바껴서 약속을 깰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깨는 빈도가 높아지면, 사람들 사이에 '저 사람과는 약속을 할 수가 없다'라는 인상이 생기고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배척당할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은 많은 친구, 동료들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타인들의 눈에는 핑계에 불과해보입니다. 한번이면 몰라도 그것이 반복된다면 핑계거리라는 인식이 굳어집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적 요인을 이유로 국제적으로 맺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나라는 친하게 지낼 친구들을 잃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국내적으로 '법의 지배'를 철저히 확립해 국가의 대외 행동이 지도자나 집권 정파의 사정이 아니라 시스템에 따라 이뤄지도록, 그래서 예상가능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브라질의 문제를 지적한 이 기고문을 살펴보시면서 한국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