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 인공지능(AI)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모든 형태의 노동에서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면 말이다.
우리가 모두 여전히 살아 있고 사이버펑크풍 봉건주의 디스토피아의 신민으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점차 하나의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기계가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예 일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겉보기에만 현대의 고용 형태를 닮은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경제학자 알렉스 이마스1Alex Imas가 에세이 '무엇이 희소해질 것인가What Will Become Scarce'에서 '관계 부문relational sector'이라 부른 영역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 일에는 언제나 인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관계 중심 일자리는 어떻게 얻게 될까? 당연히 인맥을 통해서다. 어차피 누구나 모든 지식을 다 아는 세상이니,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실제로 시사하는 바는 현대적 노동의 연장이라기보다는 노동을 바라보던 훨씬 오래된 문화적 인식으로의 회귀에 가깝다. 이마스는 이 점을 직접적으로 짚어낸다. "산업화 이전에는 생산품과 그것을 만든 사람을 분리하기가 어려웠다. (…) 경제적 거래에는 소비 경험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뚜렷한 사회적 요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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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산업화 이전에는 일한다는 행위 자체가 존엄하거나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2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촘촘하게 얽힌 사회적 세계에 어떻게 참여하느냐였다. 다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관계중심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 모든 예측은 자연스럽게 그런 세계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 삶의 틀과 정체성,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다.
안타깝게도 그 예측이 맞을 것 같다.
유인원들의 권력과 성
기술과 문화적 변화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일반화해 단정하는 일은 늘 위험이 따르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도 과장이 심하다. 미래가 과거와 조금이라도 닮았다면—그럴 것이라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사례 연구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18세기 귀족들부터 살펴보자. 귀족들은 (대체로) 부유한데 비관계적 일반 노동을 모두 해낼 수 있는 로봇을 갖게 된다면 우리 역시 분명 부유해질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이 물질적 자원을 확보해야 할 때 인맥을 동원해 토지를 더 얻거나 궁정 내 알짜배기 직위를 따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사실이다. 고된 노동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들은 보수를 받기 위해 일하지 않았고 노동을 삶의 의미를 찾는 원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 중 일부에게는 통치를 하거나 서로를 죽이는 일처럼 실질적인 의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왕정 시대의 궁정 생활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 어떤 사례보다도 순수한 관계 중심 세계에 가깝다.
우리는 귀족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지도 상당히 잘 안다. 귀족들은 대개 사회를 예민하게 관찰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극도로 몰두하는 성향이 있어 뛰어나면서도 풍부한 기록을 남기는 회고록 작가가 되곤 한다. 이 장르에서 단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생시몽 공작 루이 드 루브루아Louis de Rouvroy, duc de Saint-Simon의 회고록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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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시몽은 루이 14세 치하 베르사유 궁정의 신하였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찬란한 궁정이자 미학과 예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련미의 중심지였다. 또 다른 궁정 신하였던 볼테르에 따르면, 이곳은 최전성기의 아테네와 로마, 피렌체를 능가하는 인류 4대 계몽의 시대 중에서도 최고봉이었다.
그렇기에 정작 생시몽 본인이 따분하고 옹졸하며 반지성적인 데다, 인간사의 다른 모든 관심사는 제쳐두고 혈통과 서열의 미묘한 차이에만 집착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보일지도 모른다. 생시몽은 어느 가문이 특정 문장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 혹은 고등법원 법관들이 공작들 앞에서 특정 의전용 모자를 쓸 수 있는지를 두고 벌이는 이해 못 할 소송전에 평생의 대부분을 허비했다. 생시몽은 국왕을 경멸했는데, 사생아들에게 높은 의전 서열을 부여한 탓도 있고 유능한 평민들에게 국정을 맡긴 탓도 있었다. (볼테르는 벼락출세한 보잘것없는 인물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불행히도 명성이 높지만 않았다면 깔볼 가치조차 거의 없었다.) 생시몽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고, 늘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그 회고록을 읽는 것은 툭하면 발끈하는 만화 캐릭터 대피 덕Daffy Duck의 머릿속에서 수백 쪽을 읽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고록이 읽기에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흥미진진한데 생시몽의 예리한 관찰력과 그 내용의 공허함이 이루는 극명한 대비 덕분이다. 연극, 오페라, 가면극, 축제, 게임, 그리고 고전 신화 속 인물로 분장한 수백 명의 하인이 동원되어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연회까지, 궁정 생활의 온갖 유흥은 일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핵심 활동의 배경막에 불과하다. 바로 암투다. 이 세계에서 몰리에르Molière나 코르네유Corneille의 천재성을 감상하려고 극장에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은 볼테르가 이 시대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나 강조하는 대목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그가 어쩔 수 없는 부르주아임을 알 수 있다.) 귀족들이 극장에 가는 것은 누가 왔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 옷차림이 현재 벌어지는 파벌 싸움에서 어느 편에 서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실의에 찬 한 남자의 회상만으로 사회 전체를 재단하는 것은 불공평할 것이다. 게다가 이는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18세기 프랑스 귀족 문화의 모습과도 다르다. 독자들은 계몽주의를 이끈 주역들이 화려한 살롱에 모여 시와 희곡, 당대의 가장 시급한 철학적 쟁점들을 논하는 장면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이는 (대부분) 거짓이다. 살롱이 존재했고 계몽사상가들이 참석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성적 담론보다는 오락을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 프랑스 역사학자 앙투안 릴티Antoine Lilti가 했던 것처럼 살롱 안주인들과 손님들이 남긴 방대한 기록물을 살펴보면, 그들이 나눈 대화의 압도적 다수가 정치적 '뒷담화'였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4 그들은 거의 전부가 귀족이었고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나는 릴티 같은 학자는 아니지만 귀족들의 회고록을 수없이 읽었는데 하나같이 다 이런 식이다. 생시몽이 유독 증세가 심각한 사례일 수는 있어도 단지 그뿐이다. 그런 병적 징후 자체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회고록을 예로 들어보자. 예카테리나는 모든 면에서 생시몽과 정반대인 인물이다. 열린 마음을 지녔고 지적 탐구욕이 왕성하며 볼테르의 찬미자인 동시에 권력을 추구하는 데서는 냉혹할 만큼 실용적이다.
예카테리나는 전혀 다른 부류의 관찰자이지만 그가 관찰하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같다. 문화적인 면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베르사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을지 모르나 그런 차이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궁정과 마찬가지로 출세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정치뿐이었고 모든 정치는 철저하게 개인적 관계에 좌우됐다. 이곳에서도 일상은 온통 뒷담화였다. 누가 누구와 대화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는지, 누가 지나치게 독실하거나 신앙심이 부족한지, 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지, 누가 여제의 심기를 건드렸거나 건드릴 가능성이 있는지, 혹은 공작을 꾸며 여제의 눈 밖에 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주된 화제였다. 자유도 사생활도 없었으며, 권력의 핵심에 더 가까운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는 경쟁으로 귀결되지 않는 대화는 거의 없었다.
현대 독자들, 적어도 현대를 사는 독자인 나로서는 모든 물질적 자원을 다 가진 총명하고 통찰력 있는 성인들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모든 모습이 너무나 품위 없어 보인다. 하기야 귀족들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부르주아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엄성이란 근면하고 생산적이며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노동을 전제로 한다.) 반면 귀족의 존엄성은 명예에서 나오며 이는 곧 가문과 계급의 구별을 유지하는 데서 비롯된다.
귀족들의 회고록 외에도 나는 영장류 행동학 서적을 즐겨 읽는다. 실제로 내가 이 두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침팬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도로 사교적이고 교활하며, 매 순간 엄격한 내부 서열 구조를 과도할 정도로 의식하고, 동맹과 도전, 힘의 과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들을 끊임없이 집요하게 추적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저서 '궁정사회The Court Society'에서 베르사유의 일상을 지배했던 지극히 정교한 예법과 의전이 문명화 과정의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격해지는 감정을 서로 칼로 찌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던 무인 귀족 계층이 제도화된 자기통제 양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분명 그들에게는 그런 통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엘리아스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절대왕정 아래 귀족들의 행동을 인간에게 보편적인 영장류 본능으로의 불가피한 퇴행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베르사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갇혀 살던 귀족들이 노동 없는 세계의 필연적 산물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모두 수백 년 묵은 봉건제도와 궁정 의례의 그물망 속에서 태어났고, 그 체제 자체도 근대 국가의 탄생이 가하는 압력 아래 뒤틀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온전한 출발점에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까?
오찬을 즐기는 상류층 부인들
수전 오스트랜더Susan Ostrander가 1984년에 펴낸 '상류층 여성들Women of the Upper Class'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중서부의 한 도시에 사는 상류층 여성들을 기록한 문화기술지ethnography다.5
이들의 세계가 순수한 탈노동 사회는 아니다. 이 여성들의 남편은 모두 가산을 관리하는 정도일지언정 직업이 있고 여성들 중에도 직접 일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현대의 관계중심 사회에 관한 가장 훌륭한 사례 연구라고 생각한다.6 오스트랜더의 연구 대상자 중 누구도 장차 집 밖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라지 않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스트랜더의 관심사도 우리와 같다. 이 여성들은 왜 지금 하는 일을 하는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들의 삶을 구조화하는 전제는 무엇인가?
알고 보니 핵심 전제는 계급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18세기 귀족들과 달리 이들은 특별히 야심을 품지 않는다. ("이들은 특권을 타고난 남녀들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대신 "여성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망이 잘 유지되도록 신경 쓴다." 이 일의 상당 부분은 사교 모임에 참석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 남편을 내조하는 일,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는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걸맞은 상대와 결혼하도록 확실히 챙기는 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런 활동이 아니다. 손님을 초대해 대접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자녀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사실상 알아서 크기 마련이다. 직업을 갖거나 정치적 술수를 부리거나 풍요롭고 다채로운 취미를 가꾸는 대신, 이들은 자원봉사를 한다.
상류계급에게 자원봉사란 매우 특수한 종류의 활동이다. 쓰레기를 줍거나 무료 급식소에서 국을 퍼주는 일이 아니다. 연구 대상 여성들은 모두 오페라단, 교향악단, 병원, 각종 지역 자선단체 등 저명한 비영리 기관의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이사회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거의 전부가 기금 모금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기금을 모으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맡는다고 한다. 그들 자신이 모두 막대한 부자인 데다 다른 막대한 부자들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기부를 요청하는 적절한 의례에 익숙하도록 사회화되어 있다. 고위급 자선 활동으로 나아가는 길은 그들 거의 모두가 소속된 배타적 상류층 여성 봉사 단체인 '주니어 리그Junior League'를 거친다.
대부분은 유급 전문직에서는 자격이 없어 맡지 못할 수준의 책임을 맡을 기회를 얻거나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자원봉사를 즐긴다. 3분의1 가량은 그 일을 싫어하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라 여겨 어쨌든 수행한다. 이들 모두는 사회에 무언가를 환원함으로써 자신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이를 이해했다. "미국에서 부자는 여론에 보답하기 위해 여가를 어떤 산업이나 상업 활동, 또는 공적인 의무에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살아가는 데만 인생을 쓴다면 평판이 나빠질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자원봉사가 대상 지역사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지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대신 오스트랜더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상류층 여성들의 자원봉사 활동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구석이 있으며, 지역사회의 삶을 실제로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홀트 부인은 헌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역사회 활동가다. 홀트 부인은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온 듯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얼굴을 붉혔다. '만족감을 주는 건 바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이에요.' 스마이스 부인은 자원봉사를 '진정성의 증명'이라고 불렀다. 하퍼 부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제가 해온 일이 실제로 무언가를 이뤄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상당수는 그저 시간 때우기식 일거리거든요.'"

1980년대 미국 중서부 사교계 부인들의 삶에서 자원봉사라는 제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내게 매혹적이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감정을 안겨준다. 우리는 모두 돈이 무한정 있다면 꿈을 좇으리라고 믿고 싶다. 누구도 명목상의 목표조차 달성한다고 믿지 않는, 꽤 제한적이고 특수한 사회적 의무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유한계급이 실제로 하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그나마 그들이 가장 순기능을 발휘할 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오스트랜더는 이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가 그것이 하층계급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이렇게 자라면 그냥 하는 것이다. 이러지 않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더 넓은 사회적 의미에서나 그들이 봉사하는 단체 내부에서나 마찬가지다. 자원봉사를 하는 상류층 여성 상당수는 단체를 관리하는 유급 전문가들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는 수혜자들이 기관 운영 방식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강조한다. 결국 핵심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질서정연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정점에 서 있는 바로 그 질서 말이다.
이 여성들은 여전히 더 큰 상업 사회라는 맥락 속에 존재하며 그 점은 분명 도움이 되는 듯하다. 모두 베르사유 궁정의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상냥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두 사회는 가치의 근본적인 원천을 공유한다. 바로 자신의 가문과 그 가문이 속한 체제다. 그리고 두 사회 모두에서 이는 똑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삶의 중심 활동이 온통 그 체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 방어하는 일로 수렴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협소한 사회적 세계다. 용인되는 활동과 관심사의 범위는 좁다.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허용된 사람들의 범위는 더욱 좁다. 연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똑같은 배타적 사교 클럽들에 소속되어 있었다. 거의 전부가 여러 세대에 걸쳐 그 도시에 살아온 이들이었다. 다른 도시의 마찬가지로 격조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20년 전 현재 거주하는 도시의 최고 명문가 중 한 곳으로 시집온 한 연구 대상자는 스스로를 여전히 그곳의 "이방인"이라 자조 섞인 투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나쁜 삶은 아니다. 그저 협소한 삶일 따름이다. 대체로 여성들은 그 삶을 즐긴다. 그들은 물질적 안락함을 좋아하고, 예술과 음악, 시민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를 즐긴다. 오스트랜더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을 떠올렸다. 트롤럽의 소설들은 산업화나 휘그당의 자유주의 물결에 맞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지키려 애쓰는 지주계급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를 계속 떠올렸다. 노동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사뭇 다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다룬 일련의 문화기술지 연구들이다.
노동계급
바로 사회학자 겸 도시계획가 허버트 갠스Herbert J Gans가 보스턴 웨스트엔드 지역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노동계급을 연구해 1962년에 펴낸 '도시의 마을 사람들7'이다. 언뜻 기묘한 비교처럼 보일 수 있다. 노동계급이란 정의상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물론 일을 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폭넓은 개념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보스턴의 갠스, 런던의 마이클 영Michael Young과 피터 윌모트Peter Willmott, 파리의 앙리 쿠앵Henri Coing을 비롯한 일군의 문화기술지 연구자들은 당시에 막 사라지기 시작하던 특정 유형의 노동계급 생활상을 다룬 책을 일제히 펴냈다. 이들의 연구 대상자들은 도심에 자리한 인구 밀도가 높은 저소득층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이 지역들은 모두 도시 재개발로 쓸려 나가기 직전이었다. 갠스는 이 책을 조사하면서 1957년과 1958년에 웨스트엔드에 살았으며 그의 저술은 시의 "빈민가 정비" 사업 반대 운동의 일환이었다(결국 실패했지만). 갠스는 웨스트엔드가 빈민가가 아니라 끈끈하게 결속되어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공동체라고 주장했다.8
갠스가 "도시 속 마을"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의도적이었다. 그는 웨스트엔드 주민들이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남부의 농촌 소작농이었던 부모와 조부모 세대로부터 사회 조직의 기본 형태를 물려받았다고 보았다. 이들은 노동을 대하는 전형적인 미국 주류 사회의 태도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웨스트엔드 남성 대다수는 비숙련이나 반숙련 생산직 노동에 종사했고 고용 상태도 대체로 불안정했다. 그들은 보람 있는 경력이나, 더 나아가 그 어떤 종류의 출세 가도도 가능한 일이라거나 심지어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웨스트엔드 주민들이 앞날이 막막한 직업을 좋아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직업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웨스트엔드의 삶에서 노동은 일상을 조직하는 중심 활동이 아니었다. 웨스트엔드 주민들은 딱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만큼만 일했고, 그 삶은 갠스가 또래집단peer group이라 부른 모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갠스의 표현을 빌리면 웨스트엔드는 "또래집단 사회"였다. 성인들의 또래집단은 부부와 나이대가 비슷한 형제자매, 사촌, 인척 등의 친척들과 몇몇 어린 시절 친구들로 구성되었는데, 이 친구들은 대개 부부의 자녀들에게 대부모godparents가 되는 방식으로 집단 안에 "입양"되곤 했다. 이들은 퇴근 후 어느 한 가족의 아파트에 모여 밤늦도록 머물면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남자들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도박을 벌이기도 했지만—이 세계에서 도박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었다—대부분의 시간에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란 대개 뒷담화였다.
대대로 부를 물려받은 미국 중서부 상류층 부인들 및 유럽 귀족들과의 유사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 집단들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 어느 집단도 노동을 사회적 지위의 원천으로 보지 않는다. 웨스트엔드 주민들도 과시하기를 좋아하지만 직업을 자랑하는 법은 결코 없다. 또래집단 모임에서 발휘하는 입담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배타적이다. 웨스트엔드 주민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같은 사람들만 알고 지낸다. 외부인에 대해서는 매우 경계심이 강한데 같은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다른 민족 집단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모두 일탈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쏟는다. 웨스트엔드에서 일탈이란 대개 여성의 성적 문란함, 남성의 여성스러운 태도, 그리고 남녀를 막론하고 계급 상승을 꿈꾸는 일을 뜻한다. 남자아이가 학교 성적이 너무 좋거나 사무직 일자리를 원한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남다른 성공조차 눈총을 받는다. 한 사람의 존엄성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집단과 맺는 관계에서 나온다.
"서열을 매기고 차이를 두며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를 가늠하는 주요 기준은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내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확립된 개인 행동 규범에의 순응이다. 웨스트엔드 주민들은 서로에게 통용되는 사회적 관습과 소비 양식을 유지하고, 같은 민족 집단—적어도 같은 종교 집단—안에서 결혼하며, 중산층식의 지위와 문화를 거부할 것을 기대한다. (…) 대인관계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행동 통제력, 즉 자신의 욕구와 소망을 조절하고 필요할 때 집단의 요구에 따르는 능력이다."

모든 훌륭한 문화기술지 학자가 그렇듯 갠스 역시 자신의 연구 대상자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좋아할 만한 구석이 많다. 그들은 진정 따뜻하고 풍요로우며 끈끈하게 결속된 사회적 세계를 누린다. 하지만 갠스는 이 사람들이 1950년대 미국 교외 지역 중산층과 비교하더라도 유별날 정도로 순응주의적이라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다.
물론 선택 효과도 작용했다. 사무직 일자리와 교외의 주택을 원했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2세들은 이미 웨스트엔드를 떠난 뒤였기 때문이다. 예외 없이 그들이 이전에 맺었던 사회적 관계는 이주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끊어졌다. ("웨스트엔드를 떠나 쇠락해가는 중하층 마을로 이사한 한 가족은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 오니까 사람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지를 않아요.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웨스트엔드의 문화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것이었지만 한계가 뚜렷했고, 그러한 한계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웨스트엔드의 파괴였다. 웨스트엔드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철거되어 고급 아파트 단지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이에 맞서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데 거듭 실패했다. 주민들이 조직화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또래집단은 필연적으로 평등주의를 지향한다. 그들은 스스로 지도자로 나서려는 사람을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공정한 관료제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웨스트엔드 주민에게 자기 가족의 이익보다 공식 규정을 우선시한다는 발상은 냉정할 뿐 아니라 심지어 부도덕한 것으로 비친다. 그 결과 웨스트엔드 주민들에게는 사회학자들이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 부르는 것은 풍부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제도적 기반은 전혀 없다. 노동조합도, 로터리클럽도, 볼링 리그나 학부모회 모임도 없으며,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교구 운영은 아일랜드계 주민들이 맡는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갠스는 에드워드 밴필드Edward C Banfield가 1958년에 펴낸 저서 '낙후된 사회의 도덕적 기반The Moral Basis of a Backward Society'을 인용한다. 여기서 낙후된 사회란 밴필드가 '몬테그라노'라는 가명으로 부른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마을로, 웨스트엔드 주민들의 조부모 세대가 태어났을 법한 바로 그런 곳이다. 그곳 주민들은 밴필드가 비도덕적 가족주의라 부른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핵가족의 단기적·물질적 이익을 극대화하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 가정하라." 밴필드는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몬테그라노 주민들이 가난하다고 주장한다. 가족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을 누구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필요한 추상적 제도들을 구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발표 당시나 지금이나 거센 논란의 대상이다. 어찌 되었든 갠스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웨스트엔드 주민들이 비도덕적 가족주의자일 수는 있지만 이는 만성적인 빈곤에 대한 (대체로) 합리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몬테그라노에서나 보스턴에서나 고용주들은 착취적이고 정치인들은 부패했으며, 시민사회의 제도는 주민들의 기본적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집단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모든 여건이 이탈리아에서보다 훨씬 덜 고착화되어 있었고, 여건이 변함에 따라 규범 역시 변했다. 이탈리아와 달리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집 밖에서 일할 수 있었고, 웨스트엔드의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보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가고 스스로 선택한 상대와 결혼할 자유를 훨씬 더 많이 누렸다. 그들의 남자 형제들 역시 공식 노동시장이 보내는 매혹적인 유혹을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다. "경제 여건이 나아지면서 밴필드가 비도덕적 가족주의라고 부른 기풍은 그 중요성이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간스는 이렇게 적었다.
다시 말해 물질적 조건은 우리가 가진 것만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까지도 바꾼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정'은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발명되었다
관계 중심의 삶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흔한 사회조직 형태이며,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그 안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개인의 존엄성이 집단 소속감에서 비롯될 때, 집단이 하는 모든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얼굴이 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역시 필연적으로 집단 전체의 평판으로 돌아간다. 러시아의 대공들과 보스턴의 이탈리아계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뒷담화로—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행동규범을 구축하고 집행하는 일로—보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바로 집단적 평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노동과 의미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가 방향을 잘못 짚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반드시 노동이나 그와 유사한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분명하다. 또한 '의미'를 논하는 사람들이 흔히 염두에 두는 것들, 즉 개인적 자아실현이나 내면적 성장, 더 큰 대의에 대한 헌신 같은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대다수가 그래왔듯이 우리는 그런 게 전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결코 없이 살 수 없는 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동료들의 존중을 얻게 해주는 사회적 틀이다. 노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물론 돈 다음으로—바로 그러한 욕구를 충족할 대안적 경로다. 모든 직업이 즐겁거나 보람찬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누구를 아는지나 어떤 집안 출신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를 통해 성인으로서 존중과 존엄을 얻을 수 있는 체제에 산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
미국인들이 실제로 노동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 들여다보면 정확히 이 점이 확인된다.
우선, 우리 대부분은 일을 좋아한다.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서는 통상 응답자의 약 85%가 자신의 직업에 "어느 정도" 또는 "전적으로" 만족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갤럽과 콘퍼런스보드가 장기간 진행해 온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직업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없거나 특별히 흥미롭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류학자 클라우디아 스트라우스Claudia Strauss가 기록했듯이, 지극히 평범한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즐겁다고 답한다. 하지만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에서 스트라우스는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끝난 뒤 일터로 복귀한 노동자들의 경험을 살펴보았다. 이들 중 누구도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늘어난 휴가와 단축된 근무시간을 반겼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대다수는 일터로의 복귀를 압도적인 안도감으로 맞이했다.
"카지노가 문을 닫기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바텐더로 일했던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는 한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일을 하고 싶기에 때로는 괴롭고 절박해져요. 실업급여처럼 일하지 않고 공짜로 받는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요.' 공인 소믈리에 레벨2 자격을 취득한 애리조나주의 한 젊은 원주민 남성은 자신의 일자리를 그리워했다. 그 남성은 다른 방법으로는 접할 길이 없었던 세상에 대해 와인이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향한 창이자 내가 여행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여행자 안내소에서 일하는 한 50대 흑인 여성은 수개월간의 무급휴직 끝에 일터로 돌아왔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 여성은 자기 일을 사랑했다.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팀의 일원이라는 게 정말 좋아서 동화 같은 기분이었어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집에만 갇혀 있는 건 싫어요. 출근하지 못하는 게 싫어요. 돈 때문이라기보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오래 집에 있다 보면 집에서 할 일은 다 해버리는데 그러면 뭘 더 하겠어요?'"9

스트라우스의 연구 대상자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여러 가지 면을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 주제가 유독 두드러졌다. 응답자들은 물리적 근무 환경이 쾌적하거나 흥미로울 때 만족감을 느꼈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이 유능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보다 포괄적인 연구들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후반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는 당시의 또 다른 고용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실직한 작가들을 고용해 미국 노인 수천 명의 생애를 기록하게 했다.
연방작가프로젝트(FWP)는 개척자부터 서커스 단원, 유력 기업인, 노예 출신 인사에 이르기까지 미국인의 삶을 독보적일 만큼 포괄적으로 담아낸 기록이다. 이 프로젝트의 면담 대상자들은 대부분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이었기에 무엇이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2025년에 나온 이 문헌 자료집 분석 결과, 연구진조차 놀랄 만큼 일은 가족이나 공동체 참여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역과 인종을 불문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하게 나타났다. 거의 한 세기 뒤 스트라우스의 조사에 응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남녀 응답자들 역시 자신의 일이 진정한 천직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소중히 여긴 것은 "일을 잘 해냈다는 자부심, 자신이 갈고닦은 기술, 혹은 상사와 동료들의 인정"이었다.
FWP의 수혜자 중 한 명은 스터즈 터클Studs Terkel이라는 젊은 작가였다. 뉴딜 정책이 마무리된 뒤 터클은 라디오 진행자로 일하고 반자전적 시트콤에 출연하다가 다시 구술사 작업으로 돌아왔다. 그의 저서 '일Working'은 1970년대 초 시카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이 주제를 다룬 그 어떤 기록 못지않게 포괄적이다.
대체로 면담 대상자들은 노동을 장밋빛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1970년대 초 시카고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들이 무엇을 증오했고 무엇을 버팀목 삼아 일을 계속했는지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농장의 이주노동자부터 광고 회사 임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로봇" 취급을 받는다고 불평했다. 업무가 반복적이라는 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반복 업무 자체에 대해서는 감정이 엇갈렸다—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노동자들은 하대받거나 감시당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가장 비참해했던 면담자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이들이었다. 예컨대 여러 공정을 맡는 다기능공utility man으로 승진하고 싶어 했던 백인 조립라인 노동자나,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도10 사무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야간 근무를 뛰며 학위를 따고 있던 그의 흑인 동료 같은 경우다. 반면 가장 행복해했던 이들은 동료들에게 존중받고 자신의 직무에 숙련되어 있으며 지역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역사상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존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관계중심 사회의 구성원들과 달리, 우리가 존중받고자 하는 대상은 개인적 연고와는 무관한 영역이다. 바로 우리의 기술과 성취, 공동의 목표에 대한 기여다. 이러한 기여가 세상을 뒤흔들 만큼 거창할 필요는 없다. 시카고의 식당 종업원이나 그랜드래피즈의 사무 보조원도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시 토크빌의 말이다. "미국의 하인들은 일한다고 해서 스스로 격이 낮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일하기 때문이다. 봉급을 받는다고 해서 비천해졌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미국 대통령도 봉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평등은 관계중심 사회가 유독 어려움을 겪는 가치다. 관계중심 사회는 더 폐쇄적이고 더 배타적인 경향을 띤다. 모든 사람이 그저 좋은 배우자나 부모,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의 존엄성이 집단의 소속 여부에 좌우될 때, 우리는 누가 새로 들어올 수 있는지와 들어온 뒤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관계중심적이 될수록 파벌적이 된다.
이로써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현대 노동시장이 전통과 가족, 씨족의 유대를 해체했다는 사실이다. 현대 세계에서 인간관계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 안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관계는 한층 자유로워졌다. 숨 쉴 공간이 생긴 것이다.
다른 수많은 사안들에서 그랬듯, 이 점 역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가장 먼저 꿰뚫어 보았다. 11상업사회에서 우정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에게 진지한 관심사였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은 상업사회가 비로소 진정한 우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개인적 연고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시장과 관료제가 등장하기 전의 암울했던 시절에는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 동맹이나 혈연 같은 사적 유대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그 결과 모든 인간관계는 거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노동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 이러한 거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스미스는 이러한 생존상의 필요성이 사라진 자리에 상호 이해타산이 아닌 "자연스러운 공감"에 바탕을 둔 더 나은 형태의 우정이 싹틀 공간이 열렸다고 봤다. 그리고 개인들 사이의 이러한 공감은 봉건제도나 가족 집단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보다 보편주의적인 사회도덕의 토대가 되어줄 것이었다.
노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문화로 나아간 역사적 이행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 매우 중요한 한 축이다. 오늘날 노동은 개인의 독립을 물질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설령 물질적 필요가 충족된다 하더라도,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모든 욕구를 사적인 인간관계에 의존해 해결하려 들면 그와 유사한 종류의 예속이 다시 생겨난다. 오스트랜더가 연구한 상류층 부인들의 사례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삶의 다른 조건들은 그대로 둔 채 개인적 연고와 무관한 형태의 노동만 덜어내면 과거의 낡은 굴레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래가 반드시 그런 모습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앞서 기술과 문화 변동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일반화해 단정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진심이었다. 만약 AI가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세상이 지금보다 더 관계중심적으로 변하는 정도라면 분명 안도할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미래가 기다려진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좋아한다. 언젠가 전자가 진보의 희생양이 된다 하더라도, 후자만큼은 살아남기를 바란다.
클라라 콜리어는 미국의 지식·정책 계간지 애스터리스크의 편집장이다. 예일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기술 발전과 인류의 진보를 탐구하는 연구 재단 'The Roots of Progress' 등에서 활동했다. 애스터리스크 창간 이래 편집을 총괄하며 신흥 기술, 인공지능 안전, 거시경제, 과학 정책, 문명사적 진보 등 현대 지적 담론의 핵심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우리 사회의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는 너무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의 극단론에 치우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보다 신선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지식·정책 계간지 '애스터리스크'의 편집장 클라라 콜리어는 현대의 노동 개념이 AI로 인해 형해화될 경우 사회가 다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닌 '누구와 가까우냐'로 개인을 평가하는 관계중심의 사회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합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자아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관계중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를 쉬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런 사례의 기록이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래된 미래'인 셈입니다. 콜리어는 18세기의 궁정사회부터 20세기의 상류층 여성 사회와 노동계급의 사회 등을 살펴보면서 관계중심 사회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에세이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고전적 자유주의(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준 선물('자유로운 개인')의 값어치를 재평가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