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서평

트럼프의 '무역전쟁' 사령관이 더 강력한 계획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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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그래픽=PADO /사진=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Shealah Craighead

2023.08.18 12:35

Foreig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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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집니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공식화한 것이 바로 트럼프 행정부이고,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 역시 이 기조를 이어받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가 더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중국에 대한 의존을 낮추어야 하고('디커플링'), 경쟁성장으로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건 미국에서 초당적인 공감을 얻고 있어,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변함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전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훨씬 급진적인 정책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6월 펴낸 저서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입니다. 책에서 라이트하이저는 '디커플링' 수준을 넘어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완전히 절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너무 급진적이라 허황되게 들릴 정도이지만 트럼프는 이 책을 상찬하면서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어떤 무역 정책을 펼지 미리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결코 작지 않은 지금, 한국도 미리 대비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미중 무역을 취재하면서 라이트하이저와도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베테랑 기자 밥 데이비스가 포린폴리시에 2023년 7월 16일 기고한 서평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글을 소개해주신 신현호 경제평론가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폐쇄적인 워싱턴DC 무역 변호사의 세계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가 모두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동안 철강 수입을 막기 위한 철강 업계의 투쟁을 수십 년동안 대변하면서 부유해졌다. 그는 마치 무역 협정이 타결되고 있는 워싱턴DC에서 멀리 떨어져 "갈라파고스에 사는 거 같았죠." 한 무역 변호사의 말이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는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자신의 보호주의 사상을 공유하는 대통령을 보았다. 트럼프와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의 경제 정책을 중국에 대한 '관여'에서 '대결'로 전환했다. 2016년 이전에도 이러한 움직임에는 속도가 붙고 있었지만 누구도 트럼프처럼 미국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중국을 막대한 관세로 두드려 팰 의향은 없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은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유산일 것이다.


저서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에서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의 미국 무역 대표부 대표로서—사실상 3년에 걸친 무역 전쟁을 진두 지휘하면서—어떻게 중국과 싸워왔는지를 회고하면서 무역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그는 중국보다 더 중요한 난관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아마도 독립혁명 이후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지정학적 위협이다." 그는 나치 독일이나 남북전쟁 당시의 분리주의자보다 중국을 더 높이 평가하며 이렇게 말한다.


라이트하이저의 책은 매우 일방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저작이다.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는 틀림없이 대중국 정책을 모색하는 공화당 대선 후보와 모든 경제 국가주의자들을 위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라이트하이저는 늘 백악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요즘 세태를 보면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75세의 라이트하이저가 비서실장이나 다른 백악관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는 서로 다른 두 권의 책을 짜기운 것이다. 주된 내용은 그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비롯한 다른 무역 전투를 어떻게 치렀는지에 대한 유익하면서도 자극적인 기록이다. 자신과 트럼프의 성과를 과장하고 어떠한 실패도 인정하진 않지만 그의 기록에는 중국 정부를 상대하는 데 대한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다음 파트에서 미국과 중국을 분리하기 위한 매우 급진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엄청난 수준으로 관세를 인상하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미국으로부터 받아온 혜택을 끝내고, 양국 간 투자를 차단하고, 중국 SNS 기업을 차단하고, 기술 협력을 중단하고, 현재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무역 흑자가 사라질 때까지 이러한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다시 말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 동안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자신의 정책 제안을 '전략적 분리'라고 부르지만 여기에 전략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대국 둘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릴 것이며, 이는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라이트하이저와 나의 관계는 길고도 복잡하다. 나는 1996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서 밥 돌 상원의원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재무담당자이자 비공식 아이디어 뱅크였던 라이트하이저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스웩'과 보호주의는 참신한 것이었다. 그는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레이스 트랙에서 빨간색 포르쉐 911 타르가를 타고 레이싱을 했다. 40세 생일을 맞았을 땐 메릴랜드 교외에 위치한 집 응접실에 자신의 대형 유화 초상화를 설치했다. "누구나 이거 하나씩은 있어야 해요." 그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농담을 했다. "당신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는 겁니다." 플로리다로 이사했을 때 그는 초상화를 가져갔지만 눈에 덜 띄는 장소로 옮겼다.


그가 트럼프의 무역대표부 대표였을 때 나는 그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때로는 트럼프가 미중 무역전쟁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그와 함께 베이징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별로 성과는 없었다. 그가 13시간의 비행 시간 내내 잠만 잤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주요한 역할을 한 무역전쟁에 관한 책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때때로 그는 내가 쓴 글에 대해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했고, 심지어는 자신이 허위라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대해 나와 공동 저자인 링링 웨이의 실명을 보도자료에서 거론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가 미국은 무역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쓰자, 그는 더는 이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이틀 후 그와 가진 퇴임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항상 당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하드코어 구식 저널리스트죠. 마치 공룡 같은 존재라고요." (난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라이트하이저의 2017년 모습. /사진=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Evan Walker

라이트하이저의 2017년 모습. /사진=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Evan Walker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라이트하이저가 트럼프 정부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밥 돌과 일하면서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길 좋아하는 상사와 잘 지내는 방법을 익혔다. 트럼프와 일하는 데 매우 중요한 스킬이었다. 툭하면 언론에 입을 여는 인물이나 무능력한 말썽꾸러기로 가득 찬 행정부에서 라이트하이저는 입 무겁고 유능한 인재였다. 스티브 배넌처럼 자기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처럼 트럼프의 결정에 맞서 싸우지도 않았다.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를 보좌하면서 그 명성이 높아진 드문 인물 중 하나다.


라이트하이저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플로리다를 오가곤 했다. 자신의 보스를 더 잘 알기 위해 마라라고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친구가 되었고, 쿠슈너의 도움을 받아 몇몇 무역협상을 마무리지었다. 라이트하이저는 자신의 책에서 트럼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노력이나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이 사건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 또 다른 대중국 강경파였던 맷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이 결국 사임했다—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책에서 라이트하이저는 중국 협상가들과의 화상회의 중 그가 '양해각서'(MOU)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가 자신을 질책했던 때를 회상한다. 무역의 세계에서 MOU는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거래이지만 트럼프의 부동산 세계에서는 예비 합의를 의미한다. 둘이 다른 의미임을 설명하려 잠시 시도했다가, 라이트하이저는 다시는 MOU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보좌진이 기자들에게 얼마나 열심히 트럼프와 자신의 의견 불일치가 대수롭지 않다고 설명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무역대표부 대표 시절 라이트하이저는 흔치 않은 수단—1930년대 이후 사용되지 않았던 규모의 관세—을 사용해 흔한 결과(미국의 수많은 타협이 들어간)를 얻어냈다. 그의 1단계 합의는 전략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대신 양국 간 무역을 늘리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세부 절차를 마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트하이저는 디커플링이 아닌 지속적인 관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까지 라이트하이저의 작업을 이어나갈 정치적 의지를 보인 바 없다.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트하이저는 관세를 계속 유지했지만 무역협정은 맺지 않은 데 대해 바이든 행정부를 칭찬한다. "다행히도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까지 중국의 미끼를 물지 않았다." 그가 책에 쓴 말이다. '미끼'란 중국이 더 많은 미국 상품을 수입하게끔 만들기 위해 관세를 깎는 걸 뜻한다.



라이트하이저 자신의 중국에 대한 반대는 1990년대 이후 자유무역과 급속도의 세계화에 대한 경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의 젊은 관료였던 그는 일본산 자동차와 컴퓨터 칩의 수입을 제한하는 협상을 도왔다. 일본 경제가 붕괴된 후 중국은 라이트하이저 같은 경제 국가주의자들의 다음 목표물이 됐다.


그는 중국의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하지만, 그가 정의하는 '중상주의'란 바로 그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중상주의는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 정부 개입, 무역 장벽, 수출 진흥의 역할을 강조하는 국가주의 정치경제학파다." 그가 책에 쓴 내용이다. 정확히 그가 미국이 나아가길 바라는 방향이다.


그러나 그는 왜 자신이 퇴임한 지 불과 3년 만에 이런 급진적인 디커플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중국의 경제 및 군사적 약탈, 대만에 대한 위협, 인권 침해에 대한 흔한 불평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그가 공직에 있을 때도 뚜렷하게 드러났던 것이며 그가 중국 정부와 거래하는 걸 막진 못했다. 그는 책에서 중국 정부의 홍콩 장악과 홍콩의 민주적 권리 파괴가 무역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고 회상한다. "나는 [중국 협상 대표인 류허에게] 홍콩 문제는 우리 논의와 관련이 없으며, 우리는 현재의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재빨리 응수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라이트하이저는 대만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건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 행정부에선 흔했던 무역 및 투자에 관한 실무급 회담을 중단하고 더 깊은 수준의 경제 통합에 반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관료들은 라이트하이저를 대만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그들은 이것이 대만에 정치적 힘을 실어줄 것이라 믿었다)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라이트하이저에게 대만은 수출에 굶주린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자국의 상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방해할 수 있는 국가일 뿐이었다. 내가 대만 정책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은 '비즈니스맨'이라고 답했다. 외교 정책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무역 협상가로서 라이트하이저는 매우 공격적이다.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회담에서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의 사이버 절도, 미국 기업에 대한 압박, 대규모 무역 적자가 미국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시진핑에게 직설적 어조로 설교했다. 중국 측은 경악했다.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을 향해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고 그는 썼다.


이후 만찬에서 중국은 라이트하이저가 중국 정책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의 핵심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원 7명 중 둘을 라이트하이저 양쪽에 앉혔다.


라이트하이저는 중국과 대결할 경우, 미국이 갖고 있는 경제적 능력만으로도 중국에게 변화를 강요하기에 충분하다고 계산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WTO(세계무역기구)를 통해 무역분쟁 대부분을 해결해 왔지만 WTO는 결정을 내리는 데 수년이 걸리는 데다가 WTO의 규정은 국내 기업에 대한 부당한 보조금 지급이나 국유 기업의 행위 등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만사항 상당수를 다루지 않는다.


라이트하이저는 그 대신 미국 무역법 301조를 활용했다. 301조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여 대통령이 WTO에 제소하지 않고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라이트하이저는 지적 재산권 도용,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압력, 미국 농업 및 기타 수출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규제 등 301조의 정의에 부합하는 중국의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 3년의 무역 전쟁이 끝날 무렵,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에 판매하는 모든 제품의 4분의 3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라이트하이저는 서류상으로는 미국에게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낸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중국은 지적 재산권 보호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고, 차별적 규제를 종식하며, 미국산 제품 구매를 대폭 늘리고, 이견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미국은 거의 모든 관세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중국이 약속을 이행할 때만 관세를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성공"을 자화자찬하면서 중국이 미국산 제품 구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무를 이행했다고 말하지만, 현재 관세 철회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미중 무역합의의 단점이나 실패 사례에 대해서는 전연 거론하지 않는다. 무역전쟁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트럼프가 강경한 입장을 철회했던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미중 무역전쟁을 보다 온전히 살펴보면 미국이 승자가 아니며 중국도 승자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경제 모두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역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가 미국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미국산 제품 구매 약속에 40% 미달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중국의 강압, 기술 도용 및 기타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2020년 1월 15일 미중 1단계 무역협정 서명식에서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Tia Dufour

2020년 1월 15일 미중 1단계 무역협정 서명식에서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Tia Dufour


무역은 미중 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계속되고 있는 여러 전장(戰場) 중 하나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미국산 제품 구매가 부족하며 중국이 지속적으로 미국 기업에 대해 기술 이전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불만을 이어받았다. 중국 협상가들은 여전히 미국에 선의의 표시로 관세를 해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공장 노동자를 돕는 데 관세는 정반대의 효과를 보였다.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이전까지 미국의 공장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일자리 증가분의 75%가 2018년 7월 중국에 대한 첫 관세가 발효되기 전에 발생했다. 이후 제조업 일자리 증가세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팬데믹이 미국에 다다르기 전에 멈췄다.


미중 무역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베트남이다. 경영 컨설팅 회사 커니의 계산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관세가 인상됨에 따라 중국의 2021년에 대미 공산품 발송 규모는 2018년보다 500억달러 감소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은—미국의 관세 없이—대미 공산품 수출을 500억달러 늘렸다. 추가 수출로 얻은 수입은 베트남이 산업단지, 항만, 도로를 건설하고 전자제품과 같은 고임금 산업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역전쟁의 또 다른 아이러니는 수출 특수를 누린 베트남 기업 중 상당수가 중국 소유라는 점이다.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이 책에서 빠진 내용 중 하나는, 중국 협상단이 산업 보조금과 국유기업의 행위에 대해 모종의 양보를 하기로 합의했다가 이것이 2019년 5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부결되면서 철회한 일인데 라이트하이저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최우선 과제였다. 당시 협상문 초안을 공개하면 중국의 경제적 레드라인을 이해하고 향후 미국 협상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리라.


협상문 초안을 공개한 전례가 있다. 1999년 클린턴의 무역 대표였던 샬린 바셰프스키는 당시 클린턴이 협상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WTO 가입에 대한 클린턴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중국이 경제 정책을 대폭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바셰프스키는 중국이 당시 약속한 사안을 철회하지 않도록 확실히 해두고자 했다. 그의 전략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라이트하이저는 누락된 내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과거에 나눈 대화에서 그는 자신이 존경하게 된 중국 최고위 협상가 류허에게 선의를 보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무역의 세계에서 신사는 최종 합의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




비록 미국의 승리로 끝나진 않았지만 미중 무역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S&P글로벌를 비롯, 월스트리트의 많은 이들이 관세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지만 라이트하이저가 구사한 규모로 관세를 사용하더라도 세계 경제가 망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중국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대략 1%p 낮출 수 있다는 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추산이다. 이 연구소는 관세를 마치 가톨릭 교회가 사탄을 보듯 하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싱크탱크다. 인플레이션이 4% 안팎인 상황에서 이는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경제를 뒤흔들 수준도 아니다.


수입업체는 관세를 내고 가끔씩만 소비자에게 관세를 전가하여 물가 상승률을 예상보다 낮게 유지했다. 중국과의 무역은 현재 팬데믹 이전 시기의 최고치에 도달했지만, 고객들이 중국 이외의 생산업체로 이동함에 따라 관세 부과 품목의 수입은 뒤처진다.


라이트하이저는 스스로를 보수적인 공화당원이라고 여기지만 관세와 무역정책이 진보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되는 것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멕시코, 캐나다와의 협상에서 그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미국으로 운송되는 자동차 생산 작업의 대부분에 대해 시간당 16달러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조항을 이끌어냈다. 이는 버니 샌더스가 꿈꾸던 새로운 최저임금보다 시간당 1달러 높은 것이다. 협정의 또 다른 조항은 미국 무역대표부가 멕시코 공장에서의 노동법 위반에 대해 멕시코를 고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또한 관세가 때때로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가 중국산 자동차 수입에 부과한 25%의 관세는 유럽을 휩쓸었던 중국산 자동차 수입 급증세를 꺾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이제 관세를 사용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걸 지지한다. 탄소 집약적으로 생산된 수입품의 가격을 관세로 인상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의 관세에 대한 정열은 과하다. 그는 관세를 통해 미국의 막대한 대중 무역 적자를 완전히 해소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선 그가 공직 재임 중 주장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가 필요하다.


무역전쟁으로 2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대중 무역 적자가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전체 무역 적자는 계속 증가했다. 책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구상하는 관세는 25%보다 훨씬 높은 수준(아마도 100% 이상)이어야 하며, 베트남 같은 국가가 특수를 노리고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광범위하게 부과해야 할 것이다.


이런 규모의 관세는 장난감과 의류 수입업체부터 중국산 수입 부품을 사용하는 기계 및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이르기까지 미국 경제에 광범위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관세로 인한 수입이 미국의 재정에 도움이 되리라고 주장하지만 지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는 그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미국이 25% 관세로 거둬들인 추가 수입은 중국의 보복 관세로 매출이 급감한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됐다. 수입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관세의 효과가 바로 그렇다. 징수할 관세 수입이 없다는 의미다.


라이트하이저가 제안하는 새로운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 어떻게 될까?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그들의 보복도 전략적 디커플링에 기여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이 환경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입이 필요한 분야에서 중국이 보복할 가능성을 살펴보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첨단 전자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밝히면서 중국이 어떤 종류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중국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장비, 자동차 전기 배터리,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광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책 전반에서 무역 적자를 없애는 것이 노동자를 돕고 미국의 국력을 회복하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일례로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급증하는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거의 50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국 수입품으로 인해 공장 도시가 사라진 동남부와 중서부 상부 지역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수입품과의 경쟁도 수년간 중위 소득이 정체된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자동화와 노조 조직률 하락 등 다른 요인도 중요하다.


세계화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엄청난 이득도 있었지만 라이트하이저는 이를 거의 무시한다. 수입품은 전반적으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비용을 낮췄고,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를 넓혔으며, 미국 산업이 혁신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으며 미국에 새로운 기술을 가져왔다. 라이트하이저만이 무역을 통한 전통적인 이득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 경제적 국가주의에 경도되면서 빚어진 영향 중 하나다.


라이트하이저는 무역 적자가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군과 가장 큰 육군이 미국 달러로 만들어졌고 그 해군과 육군은 미국 것이 아니다라고 것이 과언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미국 정부 채권에 투자한 약 1조 달러는 사실상 미국에 인질로 잡혀 있으며 이는 미국에게 상당한 정치적 레버리지를 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보여줬듯, 미국은 긴급한 상황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 위안화를 글로벌 통화로 만들기 위한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역은 여전히 달러가 주도하고 있다.


무역 확대란 미국이 중국에 수천억달러를 보내는 것을 의미하며, 중국이 이를 통해 성장과 번영을 이루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게 바로 본래 의도였다. 무역은 중국의 변화를 도왔고 수천만의 중국인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무역 체계 바깥에 두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고려하지 않는다. 중국이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미국에 앙심을 품고 미국 내 혁명을 조장하고 1970년대 미중 데탕트(화해)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이나 북한처럼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에게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를 제공했으리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미국이 중국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라이트하이저의 견해는 이제 널리 퍼져있다. 팬데믹에 뒤이은 무역전쟁은 미국이 의약품, 기술 및 기타 중요 재화를 글로벌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기업들도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다른 지역으로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 일대 수정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수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우리에겐 두 명의 라이트하이저가 있다.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의 라이트하이저는 세계 양대 경제대국 간에 남아있는 관계마저 무산시킬 것이다. 중국과 무역협상을 했던 라이트하이저는 양국이 계속 협력하여 이견을 좁힐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있었다.



밥 데이비스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수십 년간 미중 경제관계를 취재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내막을 다룬 'Superpower Showdown: How the Battle Between Trump and Xi Threatens a New Cold War'를 공저했다.



새뮤얼 헌팅턴이 1970년 창간한 국제문제·외교 전문지. 1979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인수했다가 2008년 당시 워싱턴포스트 소유주였던 그레이엄홀딩스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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