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미국 없는 유럽의 미래 (2): 누가 유럽을 위해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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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4.08.23 15:12

Foreig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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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은 일종의 거대한 섬입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틈만 나면 세상의 번잡한 일을 떠나 혼자 살고 싶어 합니다. 이른바 고립주의입니다. 하지만 무역과 통신 등으로 얽혀 있는 세상에서 구대륙을 잊고 신대륙에서 홀로 편히 살 수는 없습니다. 20세기 초 세계 최강 국가로 올라선 미국이 구대륙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자 구대륙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결국 미국이 참전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대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영국은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능력은 있었지만 의지가 없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또다시 미국 없는 세상을 감당해야 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이 만든 초국적 유럽연합(EU)은 아직 경제적 연합에 머물러 있습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벨기에 브뤼셀에 가면 유럽연합(EU) 관리들은 나토(NATO)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미국 도움 없이 안보를 맡아보겠다는 기개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코소보 사태가 터지고 자신들에게는 의지만 있을 뿐 그 어떤 능력도 없음을 깨닫고는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미국이 그들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전망이 떠오르자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전쟁이 유럽에서 발발했습니다. 러시아는 침공하는데 미국은 떠나려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지식인과 전략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시아의 분석가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보고 있는지, 지난주(미국 없는 유럽의 미래 (1): 유럽의 긴 휴가는 끝났다)에 이어 7월 1일자 포린폴리시 '지상토론'을 연재합니다.


5. 억제가 전쟁보다 저렴하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가안보회의에서 "나토(NATO) 회원국들이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유럽의 군사적 보호 비용을 계속 지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 특히 냉전 종식 이후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유럽이 자신의 방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요구가 너무 자주 무시되어왔다.


너무 오랫동안 서유럽 사람들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일부 유럽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있는 파괴적 세력이 결코 자국 영토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올해 나토 회원국 32개국 중 최소 20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할 예정인데,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린 속도다. 폴란드는 20여 년 전에 이 목표에 도달했으며 현재 4%에 가까운 국방예산으로 동맹의 맨 앞에 서있다. 다른 국가들도 우리의 모범을 따라야 할 것이다.


억제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는 비용이 적게 든다.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은 거의 5조 달러에 달하며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인명 피해와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그러나 국방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것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이 해야 할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지출해야 하는데, 이는 더 나은 협력과 조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럽통합군의 환상을 쫓는 것을 멈춰야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 사이에는 각국 군대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없다. 우리는 하나로 통합된 유럽 군대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더 나은 유럽 군대들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EU 예산으로 최소 5000명 규모의 연합 신속대응군―유럽군단이라고 부르자―을 창설할 수 있다.


둘째, 군 병력과 장비의 기동성을 개선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수송과 병참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셋째, 유럽은 회원국들이 긴밀히 협력하여 방위산업 능력을 높이고 투자를 결합하며 군대의 작전 준비 태세를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인 EU '영구구조협력'(PESCO)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는 유럽이 국방력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세 가지 예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나토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유럽 안보 체제에서 나토의 고유한 역할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일부 EU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대신 EU-나토 간 "전략적 조화"를 추진하는 것이 낫다.


미국의 정치적 흐름이 바뀌면 미국-유럽 관계가 심각하게 긴장될 수 있다는 널리 퍼진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 영향력 있는 미국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미국이라는 글로벌 초강대국이 유럽과 동아시아에 모두 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미국이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말한 것처럼 진정으로 중국을 "가장 큰 지정학 및 정보경쟁의 라이벌"이자 "가장 중요한 장기 과제"라고 믿는다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동맹 네트워크는 줄여야 할 부담이 아니라 중국이 가지고 있지 않아 이제야 모으려고 하는 종류의 자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중국이 기존 세계질서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온 나라들을 오랫동안 공격해온 권위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추진해온 막후세력이라는 것은 수많은 증거들이 보여준다. 중국이 러시아와 맺은 "무한" 파트너십은 중국이 꾸리고 있는 방대한 네트워크의 한 축이다. 우리는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이중용도 상품 수출이 크게 증가했고,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중국이 이제 러시아 가스의 필수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란산 드론이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으며, 북한산 포탄과 탄도 미사일의 지원도 목격하고 있다. 아프리카, 남미 등 소위 글로벌사우스라고 불리는 여러 지역에서는 중국, 이란, 러시아의 국가 후원 미디어가 현지 정권의 도움을 받아 자유롭게 선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리고 인류의 마음과 정신을 놓고 경쟁하는 두 블록 간의 글로벌 경쟁에 직면한 상황에서 아무리 강력한 초강대국이라도 동맹이 필요하다.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여전히 미국의 확실한 동맹이다. 유럽은 안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곧 파열될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유럽은 세계 민주주의 블록이 그 영향력과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6. 영국은 돌아올 것이다 (로빈 니블렛, 채텀하우스 석좌 연구원)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브렉시트의 전략적 계산을 뒤집어 놓았다.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영국의 시야를 유럽을 넘어 미국 및 역동적 아시아 국가들과의 긴밀한 무역 및 정치적 관계로 넓히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서 지리는 운명이라는 격언이 증명되었고, 영국의 전략적 초점은 다시 유럽대륙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수세기 동안의 최우선 과제로 돌아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만적 전쟁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협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성실한 정치적 약속, 군사적 원조,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EU 회원국들을 하나로 묶는 유대가 무너질 것이다. 이는 EU가 이미 직면하고 있는 다른 모든 압력과 결합하여 EU의 외교정책 및 국방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EU의 단일시장, 국경통제 및 이민 관련 규칙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독일만의 깊은 우려가 아니다. 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의 전쟁 승리를 막는 것이 유럽 안보의 "필수 조건"(sine qua non)이라고 말하며 유럽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계획까지 밝힌 프랑스만의 우려도 아니다. 러시아가 승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영국에서도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인 대다수는 2016년에 EU 탈퇴를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EU가 붕괴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다. 영국이 2021년 유럽 단일시장을 떠난 후에도 EU는 영국 수입의 절반 이상,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유럽 경제의 붕괴는 영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민, 범죄, 테러, 정치적 급진주의에 대한 EU와의 긴밀한 공조가 단절되면 위험한 파급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유럽인들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유럽을 지켜야 할 명분은 더이상 없으며 이제 미국이 관심을 돌릴 때가 되었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유럽에서 기본적인 방어 억제력만 유지하고는 부상하는 중국이라는 더 큰 전략적 위협에 집중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미국에 버림 받은 영국과 유럽 이웃국가들은 러시아에 맞서 겨우 자기 몸 하나 지키는데 급급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주요 정당들이 공유하는 이러한 장기 전략적 관점은 영국이 우크라이나의 유럽 최대 군사 지원국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이유다. 또 영국이 장거리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같이 영국보다 조심스러운 미 바이든 행정부가 오랫동안 제공을 피해왔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기꺼이 제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순항미사일은 러시아 목표물을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이것은 또한 2024년 1월, 영국이 유럽 국가 중 최초로 우크라이나와 향후 10년간 군사지원을 약속하는 양자 안보협정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향후 나토 회원국 가입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국가 중 하나다. 또한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군대와 방위산업이 나토와 상호운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국은 현재 에스토니아에 1000명의 병력을 항구적으로 배치하여 미래의 러시아 침략을 억제하기 위한 나토의 '강화된 전진배치' 다국적 전투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안보자원과 안보공약을 일치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월 현재 전군에 걸쳐 약 13만 명의 정규 상비군을 보유한 영국의 군대 규모는 2000년 이후 거의 3분의 1이 축소된 것이다. 영국은 유럽이 오늘날의 낭비적인 중복투자를 계속하는 대신 각국의 장점을 결합하여 안보에 대해 보다 통합적인 접근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영국의 방어 및 공격 사이버 역량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 감시 역량은 특히 유용할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을 대부분 중단한 이후 영국은 광범위한 재기화(再氣化: 액체인 LNG를 기체로 만드는 공정 - 역자주) 인프라와 북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국 및 기타 지역에서 유럽 대륙으로 LNG(액화천연가스)를 수출하는 육상연결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또한 유럽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풍력 발전 단지와 해저 전기 상호연결망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 시설들은 러시아의 파괴공작으로부터 더 잘 보호되어야 한다. 2023년 1월, 영국 노동당 예비내각의 외무장관인 데이비드 래미는 차기 노동당 정부가 나토를 보완하여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위해 EU와 공식적인 안보조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4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을 통해 노동당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태평양으로 관심을 보이면서도 유럽 안보에 다시 집중하는 것은 미국의 현재 정책과도 일치한다. 문제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23년 대미 상품 무역에서 2천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EU가 자신의 보복적 무역정책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영국은 공격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수당 내 일부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새로운 양자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선호할 수 있지만, 곧 집권이 확실시되는 노동당 정부는 EU와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에 대한 구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7. 유럽의 취약한 경제 (군트람 볼프, 벨기에 소재 브뤼겔 선임 연구원 겸 에르푸르트대학교 빌리 브란트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유럽의 경제모델이 피로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정학적으로 더욱 격동적인 세계라는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 2010년 유럽 부채 위기 이후 유럽의 GDP 성장률은 미국에 뒤처지고 있다. EU 내의 국가별로 분열된 시장, 제대로 작동하는 금융 시스템의 부재, 미흡한 거시경제 정책, 낙후된 첨단 테크 산업 등이 모두 평균 이하의 성장을 의미했다. 외부적으로는 러시아 에너지 공급과의 탈동조화, 불확실한 중국과의 무역 전망 등이 고도로 글로벌화된 유럽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제조업에 대한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과잉 생산을 해외로 내보내는 중국의 경제 모델은 많은 유럽 국가, 특히 독일 같이 동일 산업 부문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국가들에게 특별한 도전이 되고 있다.


백악관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중국이 대만을 지배하려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세계 무역의 안정성이 더욱 약화되면서 유럽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디리스킹'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의 대중국 무역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어떤 데이터에서도 '디커플링'은 보이지 않으며 여전히 무역의 혜택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은 무엇보다 안보전략을 경제정책에 통합하는 전통이 없기 때문에 대결적인 안보 중심의 경제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정책은 주로 EU가 담당하고 있지만, 안보 위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각국 정부의 소관으로 무엇이 그러한 위험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첨단 반도체 개발, 중요 광물의 역내 채굴 촉진, 친환경 공급망 개선 등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무기화 시대에 대비하는 데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중국을 포함한 무역 관계를 다변화하는 작업은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회원국의 기득권이 중요한 정책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미 관세동맹인 메르코수르와의 무역협정은 EU의 무역 다변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프랑스 농민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유럽은 세 가지 주요 정책의제를 통해 취약점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유럽이 테크놀로지를 따라잡고 경제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EU 차원의 자본시장 육성 등 경제성장을 위한 자금조성의 여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유럽은 디지털 인프라 및 서비스의 취약점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은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미국의 새 대통령이 데이터 프라이버시 규칙을 둘러싼 갈등을 증폭시킬 경우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큰 사활적 문제는 유럽이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군 조달의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와 탄약이 극도로 부족하고 우크라이나에서 2년이 넘는 전쟁을 치른 후에도 생산량은 여전히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방위산업을 활성화하려는 EU의 대대적인 노력은 유럽의 안보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유럽 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은 당분간 안보와 전략적 리더십을 미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EU는 미국의 보호주의 의제를 따라가는 대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보호주의는 EU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또 유럽은 수익성 높은 중국 시장을 떠나는 대신 기업들이 지정학적 혼란을 견뎌낼 수 있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조직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관세는 그 도구 중 하나이며 보조금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EU의 자체 평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이 부채에 대한 금기를 깨고 전략산업을 활성화하고 성장을 우선시하는 동시에 유럽 고유의 '사회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무역 개방성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해 무역과 규칙기반 국제 질서를 보호하는 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8. 아시아의 눈으로 보는 유럽의 혼란 (빌라하리 카우시칸,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중동 연구소장 겸 전 싱가포르 외교관)

미국 워싱턴DC에서 2024년 7월 11일 열린 나토 75주년 정상회담. /사진=로이터/뉴스1

미국 워싱턴DC에서 2024년 7월 11일 열린 나토 75주년 정상회담. /사진=로이터/뉴스1

유럽은 러시아의 침략에 대처하는 것이 현재 가장 큰 전략적 도전이지만, 미국의 도움 없이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처할 수 없다. 미국이 없는 나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미국 없는 나토'는 서방의 약화를 바라는 나라들이 꿈꾸는 전망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 동맹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미국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생사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자가 되었고, 탈냉전 이후 러시아는 위험하며, 북한과 이란의 깽판치는 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미국에 생사의 위협은 아니다.


즉,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어떤 대가도 치르면서, 그리고 어떤 부담도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질서를 유지해야 할 사활적 이유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냉전 종식 이후 모든 미국 행정부는 국내 과제들에 우선적으로 집중해 왔으며, 조지 W 부시 행정부만이 9/11 테러로 인해 부득이한 예외였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 세계로부터 물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확실히 해외개입 여부와 방법에 대해 더욱 신중해졌다. 미국은 동맹국, 파트너, 우방국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보다 더 많은 대화를 가지려고 하지만, 그는 건강을 묻는 인사나 하려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려고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인도태평양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소수의 유럽 국가들만이 제한적 역할의 플레이어로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러시아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메시지는 모스크바만큼이나 베이징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유럽간 전략적 우선순위의 불일치로 인해 유럽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에 독자적인 핵 억제력을 고려하라고 압박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제기였다. 하지만 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프랑스가 독일을 구하기 위해 전멸의 위험을 감수할까? 유럽은 핵무장한 폴란드나 독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EU 옹호자들의 말과는 달리 EU는 안보행위자가 아니다. EU의 이른바 '공동 외교안보 정책'을 아시아의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럽방위군 같은 것은 그냥 말뿐으로서 당분간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


유럽은 이제 냉전 이후 수십 년간 국방을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과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주장했던 '차이텐벤데' 즉 시대전환을 가져왔을까? 핵 문제는 제쳐두고, 러시아를 억제할 수 있는 재래식 군사 역량을 구축하려면 모든 EU 회원국이 몇 년이 아니라 10년 이상 지속해서 훨씬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야 할 것이다.


유럽이 미국 없이도 자체적으로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생각해보면, 유럽의 핵심문제는 유럽 고유의 '사회 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인데, 이것은 단순히 인구만 보더라도 확실한 전망이다. 30년 동안 대부분의 EU 회원국들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회적 지출을 삭감하기보다는 국방 지출을 줄이는 것을 선호했다. 이 달콤한 선택은 이제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제 총을 위해 버터를 포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모닝콜을 듣고 깨어났다는 유럽 지도자들의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기한 연기할 수 없는 이 결정에 진지하게 맞서는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EU는 방위를 위해 어떤 사회적 지출을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또 러시아의 위협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북유럽과 중부 유럽, 그리고 위협을 덜 느끼는 남유럽 사이에 그 희생의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 집단적, 국가적으로 논의하게 되면서 지금보다 더 큰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유럽이 총과 버터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인구 고령화 상황에서 대규모 이민 없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대규모 이민에 따른 정치적 갈등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특히 우익 집단들이 이러한 혼란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유럽의 단합과 기조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소모전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계산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아시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유럽이 미국에 전략적 의존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독자적인 진로를 모색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균형에 임시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만 기여할 수 있는 유럽의 능력도 마찬가지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유럽이 자국의 경제안보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인도태평양의 안보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려면 자신의 방위에 힘을 쏟음으로써 미군 자산이 인도태평양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이 작은 기여조차도 실현되려면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9. 누가 유럽을 위해 싸울 것인가? (이반 크라스테프, 불가리아 소재 자유전략센터 회장)

1989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의 가장 큰 역에 서서 동쪽의 붕괴된 공산주의 국가에서 도착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열차를 바라보던 영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20세기 유럽 역사를 새롭게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단순히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과 유산에 의해 유럽의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럽이 대규모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전후'(Postwar)라는 책을 저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1세기의 유럽을 다룬 책이라면 다른 제목이 필요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인들은 '전후'(戰後)가 아닌 '전전'(戰前) 세계에 살고 있다는 현실에 눈을 떴다. 유럽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그들의 오랜 가정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많은 도시들처럼 불타버린 폐허가 되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6년간 집권한 독일의 정치가들을 예로 들어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통합의 지속적인 성공 외에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들은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대부분의 가스를 구매하면 평화롭고 협력적인 러시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실제로는 유럽과 러시아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크렘린궁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억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독일의 에너지 의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하여금 전쟁을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많은 서유럽인들이 안보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안보상의 취약점이 된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에 직면한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군사력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 유럽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의 안보우산을 더이상 당연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럽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중국과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미국이 경제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유럽의 번영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 현실은 만약 유럽인들이 현재의 안보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라도―주요 국가들이 실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EU와 그 회원국들이 방위산업을 재건하고 대륙 차원의 전쟁경제를 구축하는 데 10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 대륙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연상시키는 야수같은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영웅적인 저항은 전쟁은 야만적인 것이며, 갈등은 협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며, 성장하는 경제 파이에서 누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할지에 대한 분쟁만 남았다는 '탈영웅적 사회'에 대한 유럽인들의 낭만적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20세기 말이 되자 영국의 위대한 군사사가(軍事史家) 마이클 하워드가 말한 것처럼 "죽음은 더이상 사회계약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유럽인들은 훨씬 더 적대적이고 불안정한 세계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기존의 사회계약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전쟁은 또한 집단기억에 기반한 유럽 내 깊은 분열을 드러냈다. 2022년 2월,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침략에 충격을 받았는데, 동유럽 사람들은 서구의 순진함에 충격을 받았다. 파리와 베를린은 전쟁 확대가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했고,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점령 확대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EU의 동쪽 지역도 분열되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국경을 개방했고, 헝가리는 푸틴의 가장 가까운 EU 친구가 되었다. 폴란드인,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지만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다른 동유럽인들은 지지를 꺼리고 있다. 전쟁은 동유럽뿐만 아니라 동서 유럽을 분리시켰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비서구 세계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소위 글로벌사우스가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대신 비서구 국가들은 자유세계와 부상하는 권위주의 세계 사이의 새로운 냉전에 동참하는 대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탈식민주의적 내러티브가 냉전 프레임을 대체하면서 많은 비서구 사회는 EU를 다가올 세계의 실험실이라기보다는 옛 식민세력들의 집합체로 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유럽인들은 전쟁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유럽 프로젝트의 큰 성공으로 여겼다. 역사가들은 "군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라고 물으며 유럽인들의 전쟁 기피에 찬사를 보냈다. 이제 유럽의 새로운 현실인 전쟁과 재무장이 시작되면서 이런 질문이 생겼다. '유럽의 인구 고령화와 수십 년에 걸친 비무장화를 고려할 때 모든 군인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수 세기에 걸친 끔찍한 전쟁 끝에 유럽인의 마음이 평화로워진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요 정치적 성과였다. 이제 그것은 유럽 안보의 취약점이 되었다.


새뮤얼 헌팅턴이 1970년 창간한 국제문제·외교 전문지. 1979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인수했다가 2008년 당시 워싱턴포스트 소유주였던 그레이엄홀딩스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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