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로이터/뉴스1
2025.03.14 15:33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은 몇 시간 전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한 수요일 오후, 그녀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미니당근을 씹고 있었다. 예상보다 이른 방문객에 다소 놀란 듯, 그는 당근을 다 먹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채가 필요해서요." 프레데릭센이 설명했다.
이번 방문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로 이동한 뒤 기차를 타고 키이우로 들어갔다. 모든 일정은 그녀가 국경을 넘을 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다섯 번째 우크라이나 방문이었다. 이번 방문은 러시아에 대한 저항이 1000일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공교롭게도 그녀의 47번째 생일과도 겹쳤다. 프레데릭센은 현지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병원에서 만나 위로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덴마크의 새로운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덴마크는 경제 규모 대비 전쟁 지원금 기여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대한 지원은 덴마크가 국제 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눈에 띄는 모습 중 하나에 불과하다. 프레데릭센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 후 그린란드의 통제권을 넘기라고 요구했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세계적으로 트럼프에 반대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프레데릭센과 그녀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진정한 정치적 중요성은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북대서양에서의 영토 분쟁 이외의 곳에 있다. 지난 6년 동안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고, 전 세계 진보 세력들이 부러워할 만한 정책적 성과를 달성해왔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는 상황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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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법을 개정하고 반대 세력을 배제하며 권력을 유지해왔다.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강경 우익 세력이 급성장했다. 독일에서도 지난 일요일 치러진 선거에서 중도좌파 여당이 중도우파와 강경 우익 정당에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여론조사는 올해 중도좌파 정부가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를 못 받는 상태로 퇴임했으며,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해 처음으로 대선에서 선거인단 수뿐만 아니라 전체득표에서도 승리했다.
이 모든 사례에서 중요한 공통점은 전통적으로 좌파를 지지했던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점점 더 좌파 정당에서 이탈해 포퓰리즘, 민족주의, 보수주의를 혼합한 정치 성향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고소득 국가 중에서 중도좌파 정당이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선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덴마크는 예외적이었다.
2019년 덴마크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이후, 이들은 미국의 진보 성향 싱크탱크가 원하는 정책 목록과 유사한 성과를 내놓았다. 노동자 계층이 전문직보다 더 빨리 은퇴할 수 있도록 연금 규정을 변경했고, 주택 정책에서는 사모펀드의 투기 행태를 막기 위해 이른바 '블랙스톤 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뉴욕의 대형 투자사 블랙스톤이 코펜하겐의 인기 아파트 단지를 사들인 사례에서 착안한 것으로, 신규 건물주가 인수 후 5년간 임대료를 인상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세계 최초로 가축에 대한 탄소세를 도입했고, 농지의 15%를 자연 서식지로 전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낙태권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덴마크는 임신 12주까지였던 합법적 낙태 시기를 18주까지 연장했으며, 15세 이상 소녀들이 부모 동의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모든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에도 덴마크는 여전히 강력한 복지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까지 전액 무료 교육을 제공하며, 학생들에게는 매달 약 900달러의 생활비 지원금이 지급된다. 의료 서비스는 무상이며, 실업보험도 상당히 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만치료제 '오젬픽'을 만든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있다. 2022년 총선에서 프레데릭센 총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정권 교체 바람이 불었던 흐름을 거슬러 재선에 성공했다. 그녀의 정치 전략은 강경 우익 정당을 주변화시키는 데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프레데릭센과 사회민주당이 전 세계 대부분의 진보 세력과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는 한 가지 이슈가 있다. 바로 이민 문제다. 약 10년 전, 리비아와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이민자가 급증하자, 프레데릭센과 그녀의 동료들은 사회민주당의 기존 입장을 대폭 수정했다. 이들은 이민 규모를 줄이고, 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불법 입국자의 신속한 추방을 요구했다. 집권 이후, 사회민주당은 이러한 정책을 실제로 시행했다. 덴마크는 여전히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인구 구성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느리다. 현재 덴마크 인구의 12.6%가 외국 태생으로, 이는 프레데릭센이 취임했을 당시 10.5%에서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남쪽 이웃 국가인 독일에서는 이 비율이 거의 20%에 달하며, 스웨덴은 그보다도 더 높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덴마크는 많은 국제 진보 세력의 비난을 받았다. 비판자들은 덴마크 사회민주당을 '괴물', '인종주의', '반동적'이라고 부르며, 이민 문제에 있어 사실상 우파 정당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프레데릭센과 그녀의 측근들에게 강경한 이민 정책은 진보주의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녀의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프레데릭센은 이민 문제가 사회민주당이 다시 집권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이며, 다른 나라에서 좌파 정당들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덴마크에서 사회민주당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프레데릭센은 좌파 정치가 성공하려면 유권자들이 공동체나 국가의 일부라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세금을 감당할 이유가 사라지며, 결국 강력한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다면, 원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으며, 특히 우리처럼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높은 수준의 이민이 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키고, 노동계층에게 가장 큰 부담을 준다고 주장했다. 복지 시스템의 과부하, 학급 과밀화, 주택난, 블루칼라 일자리 경쟁 심화 등은 주로 노동계층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반면, 부유한 계층은 이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노동계층은 이런 문제를 직접 경험하지만, 부유한 좌파들은 현실을 외면한 채 특권층이 아닌 유권자들에게 '관용이 부족하다'고 훈계한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프레데릭센은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사회로 유입되면 그 대가는 따르게 된다"며, "그 대가를 가장 많이 치르는 계층은 노동계층과 저소득층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 부담을 지는 사람들은 부유층이 아니다.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회민주당이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이민 정책을 변경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높은 이민율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보고 있으며, 진보 세력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는 자국 내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녀는 "우리의 이민 정책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총선에서 메테 프레데릭슨 총리의 사회민주당은 예상보다 큰 승리를 거뒀다. /사진=로이터/뉴스1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중도좌파 정당들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면 이 딜레마를 직시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민 문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빈곤, 정치적 불안정, 기후변화, 인신매매 조직, 소셜미디어 등의 요인이 계속해서 저소득 국가의 주민들을 더 부유한 국가로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출산 문제를 겪는 선진국들이 경제를 원활하게 유지하려면 일정 수준의 이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서유럽이 취했던 접근 방식은 실패했다.
이민은 종종 혼란스럽고 법의 틀 밖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국민들은 수백만 명의 이민자를 더 받아들일 것인지 직접 묻는 국민투표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만약 투표가 이루어졌다면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이민 문제가 현실이 된 후에야 민심이 반발했다. 트럼프는 2016년과 2024년 대선에서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공약하며 승리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강경 우익 정당들만이 이민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왔으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세를 확장해왔다.
미국의 진보 세력에게 덴마크는 불편한 본보기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이 보여준 잔혹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과거 프레데릭센의 접근 방식을 비판하던 정치인들이 이제는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세계 중도좌파 정당들에게 덴마크는 또 다른 형태의 진보 정치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계층을 기반으로 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며, 이민 정책에서는 보다 제한적인 형태다. 프레데릭센과 사회민주당은 세계 곳곳의 동료 정치인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적인 진보주의를 위해서는 제한적 국경 정책이 필수적인가?
현재 세계는 전례 없는 대규모 이민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민자 비율은 5% 미만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비율이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호주와 캐나다에서도 이민자 비율이 급증했다.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 미국은 역사상 가장 빠른 이민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민 유입 속도는 엘리스 섬(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뉴욕항 부근의 이 섬을 통해 많은 이민자들이 입국했다-역자주)을 통한 이민 최전성기를 넘어섰다. 800만 명 이상이 미국에 입국했으며, 이 중 약 60%가 불법 체류자였다. 현재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6%가 외국 태생으로, 이는 1890년 당시 기록된 최고치인 14.8%를 넘어선 수치다.
이러한 이민 급증의 원인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빈곤, 전쟁, 기타 여러 요인들이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 시대의 역설은, 이런 현상이 인류의 고통이 줄어든 시기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빈곤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전쟁과 폭력도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언젠가 주요 이민 원인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즉, 최근의 이민 급증을 단순히 '떠나는 나라의 삶이 나빠졌기 때문'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빈곤 감소다. 새로운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경제적 자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며, 극빈층은 그런 여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해력 같은 기본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여행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갖췄다. 현대적인 도로망과 항공 교통도 이민을 용이하게 만든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소셜미디어다. 이민자와 밀입국 브로커들은 틱톡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중앙아메리카를 통과하는 방법이나 지중해를 건너는 방법을 공유한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사람들은 왓츠앱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라 해보라고 부추긴다. 스마트폰 기술이 이민을 더욱 눈에 띄게 만들었으며, 이는 과거 편지나 유선전화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인은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들의 정부 정책이다. 20세기 후반, 특히 21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많은 서구 국가들은 입국 규정을 완화했다. 미국은 1965년 대대적인 이민법 개정을 단행했는데, 이는 서유럽 출신들에게 우선권을 주던 차별적 규정을 폐지했다는 점에서 인권 운동의 승리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 법은 예상치 못한 결과도 가져왔다. 당시 법안 발의자들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민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 주된 이유는 가족 재결합 조항이라는 허점 때문이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이민 규정 완화는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계속됐다.
유럽에서의 변화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다. 1985년 프랑스, 서독,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다섯 개 국가는 솅겐협정을 체결해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했다. 이후 이 협정은 유럽연합(EU) 27개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이에 따라 유럽 내 저소득 국가인 남부 및 동부 지역 출신 노동자들이 더 부유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동시에 유럽연합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비유럽권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도 장려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난민 제도의 개편이었다. 이 제도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1967년 유엔이 이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난민 지위를 신청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일부 이민자는 난민 지위를 얻지만, 많은 경우 정치적 박해를 입증하지 못해 거부된다. 그러나 법적 절차가 몇 년씩 걸리는 동안 이들은 해당 국가에서 생활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강제 추방은 비용이 많이 들고 인도적으로도 논란이 되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이를 꺼려왔다. 결국 난민 제도는 국가별 공식 이민 규정을 뛰어넘는 또 다른 허점이 되었다.
과거에는 높은 이민율에 대한 우려가 주로 좌파 진영에서 나왔다. 진보 세력은 이민 증가가 기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국의 노동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A. 필립 랜돌프는 100년 전 이렇게 말했다. "과도한 이민은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인종과 국적의 대중들에게 해가 된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좌파의 입장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반핵 운동, 환경 보호, 인종 및 성차별 철폐 등 사회적 이슈에 주력하던 학생과 지식인들이 좌파 정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변화된 진보주의를 '브라만 좌파'(Brahmin left)라고 명명했다. 브라만은 인도의 최상위 계급을 의미하며, 보스턴의 개신교 엘리트 계층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이 용어는 좌파가 전통적인 노동계급 기반에서 멀어지고, 보다 부유하고 아카데믹한 성향의 진보주의로 이동한 흐름을 설명한다. 이 새로운 좌파는 경제 계급보다 사회 문제와 문화적 정체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민주당과 유럽의 중도좌파 정당이 과거에는 저학력 유권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현재는 그들을 잃어버린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민 문제는 '브라만 좌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주제였다. 과거의 좌파는 이민자 증가로 인해 노동시장이 과포화되면서 노조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임금이 하락할 것을 우려했다. 반면, 새로운 진보주의자들은 이민자들에게 줄 막대한 혜택에 초점을 맞췄다. 이민은 대체로 백인이 아닌 세계 빈곤층을 돕는 방법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1965년 이민법을 추진한 지지자들은 이를 시민권 운동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유럽에서는 이민 문제를 식민지배의 과거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인식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이민 개방 정책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역사적 실패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브라만 좌파는 '인종적 정의'(racial justice)에 대한 논리를 경제적·문화적 논리와 결합했다. 즉, 이민자들은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다른 기업들이 운영될 수 있도록 노동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확대된다. 또한, 그들이 정착한 나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음식, 음악,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이민 증가 현상은 냉전 이후 세계화의 상징적인 특징이 되었다. 토니 블레어, 조지 W. 부시, 빌 게이츠, 밀턴 프리드먼 등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물론, 평소 프리드먼과 거의 모든 사안에서 의견이 달랐던 진보 학자들까지도 이민을 적극 옹호했다. 2015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동에서 유입된 난민들을 받아들이도록 자국민들에게 독려하며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Wir schaffen das" 즉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싱크탱크와 언론들은 이민의 이점을 강조하며 이를 적극 지지했다. 경제학자들 역시 평소라면 회의적이었을 "공짜 점심" 논리를 이번만큼은 받아들이며, 이민이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일반 유권자들은 이만큼 열광적이지 않았다. 진보 세력이 다른 이슈에서는 인정하듯, GDP가 상승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이민 증가로 인해 교육, 복지 서비스, 공공 의료, 주택 시장 등이 압박을 받게 되며, 이는 대체로 이민자들이 정착하는 노동계층 지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지난 4년간 시카고, 덴버, 엘패소,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또한, 여러 연구들은 이민이 기존 국민의 임금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2017년 미국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NASEM)이 이민의 경제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연구에서 조사된 22개의 주요 연구 결과 중 18개가 이민이 기존 노동자의 임금을 감소시킨다고 결론지었다. 브라만 좌파는 이러한 영향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한 차이"라고 일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임금이 하락한 노동자들은 이를 다르게 느낀다. 대기업 경영진들 역시 다르게 느낀다. 그들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이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민 반대 여론을 설명하는 요인 중 하나로 인종주의가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이민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설명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며, 심지어 가장 중요한 요인도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민에 대한 우려는 종종 기존 주민과 같은 인종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20년 전 주로 동유럽 출신 백인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 되었다. 레바논 정부는 최근 시리아 난민들을 대거 추방했다. 대만에서는 2024년 대선에서 중국인 유학생 유입 문제가 논란이 되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작년 선거에서 짐바브웨 출신 불법 이민자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됐다. 미국에서도 트럼프는 퀸스, 브롱스, 남부 텍사스 등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 라티노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표를 상당히 얻었다.
이런 사례들에서도 외국인 혐오, 즉 피부색과 무관하게 단지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급격하고 대규모로 이뤄지는 이민은 거의 항상 인기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이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려 유권자들에게 설교하는 방식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건전한 정치적 논쟁이 있었다면, 이민 문제의 복잡성을 더 깊이 다루었을 것이다. 그런 논쟁은 이민이 GDP를 증가시키긴 하지만, 그 혜택은 부유층이 더 많이 가져가고, 저소득층과 노동계급, 심지어 최근 이민자들까지도 더 큰 부담을 진다는 점을 인정했을 것이다. 프린스턴대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은 이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된 산업 중 상당수가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외식업, 조경노동, 건설업이 있다. 이민자들이 노동시장에 더 많이 유입될수록 임금은 하락해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지고, 동시에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낮아져 부유층에게 유리해지는 등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다. 디턴은 "조경 노동자가 늘어난 덕분에 프린스턴의 부유층 거주민들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민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이러한 미묘한 현실이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반이민 정치인들은 트럼프처럼 이민자에 대한 거짓 선동을 퍼뜨렸고, 친이민 진영은 이민의 부정적 측면을 논의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결국, 이민 옹호자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이민이 많을수록 좋다, 반대하면 인종주의다'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표로 응징했다.
덴마크 사회민주당에서 이민 문제를 가장 깊이 고민해 온 인물 중 하나는 현 교육부 장관인 마티아스 테스파이일 것이다. 43세인 그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다. 테스파이는 1980~1990년대 덴마크의 제2 도시인 오르후스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덴마크인이자 보건의료 노동자였다. 10대 시절, 그는 극좌 정치에 끌렸고, 자연스럽게 친이민 성향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도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처음에는 이민 확대를 지지하는 것이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다. 그는 오르후스 시청 앞에서 열린 한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 시위는 이민자 밀집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덴마크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다른 학교로 보내려는 정책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시위대는 이민자 아이들이 동네 학교에 그대로 다녀야 하며, 동화(同化)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전학을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미국인들에게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보 세력이 학교 통합을 위해 버스를 이용한 배정을 지지하고, 보수 세력은 이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정반대의 논리가 작용했다. 정치적 우파는 이민자들을 덴마크 사회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좌파는 이민자 공동체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이민 문제가 단순히 좌우 이념으로 구분될 수 없는 복잡한 주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티아스 테스파이 덴마크 교육부 장관. /사진=로이터/뉴스1
테스파이는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의문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두 명의 소말리아 출신 친구들은 이민자 밀집 지역을 떠나 덴마크 학생들이 많은 학교로 전학 간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덴마크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적응도 더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자신의 아버지는 끝내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덴마크에서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다. "덴마크어로 말하면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야"라고 말하던 그의 아버지는 결국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
그 후 몇 년 동안, 테스파이는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조에 가입한 벽돌공으로 일했다. 그는 극좌 정당을 떠나 보다 온건한 사회민주당에 합류했다. 이 정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2015년, 34세가 된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패배했고, 특히 이민 정책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반면 극우 정당인 덴마크 국민당은 2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급부상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테스파이는 덴마크의 이민 역사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책은 감정을 배제한 차분한 문체로 쓰였으며, 그의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분명했다. 사회민주당이 점점 더 친이민 정책을 지지하면서 전통적인 노동계급 지지층을 배신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후 프레데릭센과 테스파이 같은 사회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지침서가 되었다.
테스파이는 덴마크의 이민 역사를 1960년대부터 시작한다. 당시 덴마크의 기업 경영진들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 세력은 이에 반대했다. 1970년, 한 사회민주당 의원은 "덴마크에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기업에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실시된 어느 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단 36%의 덴마크인만이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찬성했다. 특히 사무직과 전문직 종사자들은 이를 지지했지만, 노동자 대다수는 반대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점차 이민에 우호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1983년, 덴마크 의회는 외국인법을 통과시켰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민법으로 평가했다. 망명 규정이 완화되었고, 난민들은 덴마크의 관대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 재결합 정책도 도입되어, 난민들이 가족을 불러오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정책으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민자가 덴마크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는 1960년대 개혁 이후 미국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덴마크 인구 중 외국 태생의 비율은 2%에서 거의 9%로 증가했다.
테스파이의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덴마크 정치권이 수십 년 동안 자국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이미 급격한 이민 증가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사실은 명확했지만, 이를 직시한 정치인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하던 노동계층 지역의 사회민주당 시장들은 이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지역들은 코펜하겐 중심부보다 주택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이에 따라 정책적 부담도 더 크게 작용했다. 당시 알베르슬룬(소형 단독주택이 밀집한 교외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했던 전직 교사 비베케 스톰 라스무센은 "우리는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부속 유치원생의 절반 이상이 덴마크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다. 성평등 문제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덴마크 사회는 평등의 선구자로 자부하는 반면, 많은 이민자들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적인 전통적인 무슬림 사회에서 온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여성의 노동 참여나, 소녀들이 결혼 시기와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로 떠올랐다. 범죄와 복지도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덴마크 출신 국민보다 훨씬 높았고, 고용률은 훨씬 낮았다. (미국에서는 덴마크와 달리 이민자의 사회적 상향 이동성이 전체 평균보다 높고, 범죄율도 낮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또한, 실업 상태의 이민자들이 정착 지원금을 받으면서, 일부 경우에는 덴마크인 실업자들이 받는 복지 혜택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는 현상도 논란이 되었다.
이민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민감한 주제였다. 일부 이민 반대 여론은 비이성적인 외국인 혐오에서 비롯되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종교를 믿으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은 전통적으로 밀접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덴마크 사회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새로운 입국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주류 정치인들이 저지른 실수는, 늘어나는 이민에 대한 모든 불만을 단순히 인종주의로 치부한 것이었다. 테스파이는 이에 대해 "인종주의자로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종종 당내에서 이민 정책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막아왔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덴마크에서는 이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세계화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발이 시작되었다. 2000년 국민투표에서 덴마크 국민은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덕분에 덴마크는 오늘날까지도 독자적인 통화(크로네)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유럽연합 국가 중 하나다. 2001년 총선에서는 사회민주당이 1924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대패했다.
이 같은 유권자들의 반란은 곧 서구 전역으로 확산될 정치적 흐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냉전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는 노동계층 유권자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들은 점점 더 저임금 외국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공장이 문을 닫았고, 통화가 변경되었으며, 유럽연합(EU)이 새로운 규제를 도입했다. 공동체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많은 유권자들은 자신이 일부 국제적 엘리트들과 달리 '세계 시민'이 아니라 특정 국가의 시민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평범한 유권자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익이 유럽이나 세계의 이해관계와는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2016년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유럽 전역에서 강경 우익 정당들이 세를 확대했다. 중도좌파 정당들은 세계화와 브라만 좌파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동안, 노동계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어갔다. 프랑스에서는 1980~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집권했던 주요 중도좌파 정당이 2022년 대선에서 불과 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몰락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중도우파와 극우 세력을 공고하게 결집시키며 공화당을 장악했다. 그는 반(反)엘리트 정서를 내세워 두 차례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의 정치 경력이 10년 전 트럼프 타워에서 시작된 순간부터, 이민 문제는 그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 이슈였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사진=Shvets Anna
덴마크에서도 2015년은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지만, 결과는 다소 달랐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세력이 부상하던 시기,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당을 재편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해 선거에서 패배한 후, 당은 젊고 직설적이며 노동계층 출신인 메테 프레데릭센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프레데릭센과 테스파이 등 그녀의 동료들은 이민 문제가 민감해진 시점에 사회민주당의 지도부를 맡게 되었다. 몇 달 전, 이슬람국가(IS) 추종자가 덴마크에서 성장한 뒤 코펜하겐에서 두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중 한 명은 표현의 자유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유대교 회당에서 피격됐다. 동시에,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유럽 전역으로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었다. 한때, 덴마크의 한 학교에서 억류되던 이민자 300여 명이 탈출해 고속도로를 따라 행진했고, 경찰이 도로를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사회민주당은 수십 년 동안 이민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못했다. 때로는 규제를 지지했지만, 대체로 이민 확대를 옹호했다. 이로 인해 많은 유권자들은 사회민주당이 무엇을 신념으로 삼고 있는지, 선거 전략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구별하기 어려워했다. 이는 전 세계 좌파 정치인들이 흔히 겪는 문제다. 바이든이 자신의 자유로운 국경 정책을 임기 말에 뒤집은 것, 또는 카말라 해리스가 자신이야말로 트럼프보다 강력한 국경 수호자라고 주장한 것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과 해리스 모두 민주당의 입장을 바꾼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초기 정책이 저소득층 지역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프레데릭센은 2015년 당의 기존 노선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녀는 과거에 이민 확대를 지지했던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하며, 사회민주당이 코펜하겐 외곽 지역 시장들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완전히 옳았다. 우리 당은 그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에 따라 사회민주당은 3년에 걸쳐 전문가 인터뷰와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수립했다. 그 결과물은 2018년, 우파-중도파 연립정부가 집권 중이던 시기에 발표된 '정의롭고 현실적인 정책'(Retfaerdig og Realistisk)이라는 문건이었다.
새로운 정책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됐다. 첫째, 입국 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조정하는 것. 둘째, 이민자들의 덴마크 사회 통합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 셋째, 해외 원조를 확대해 이민자들이 자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민주당은 당시 집권 중이던 우파-중도파 정부의 이민 규제 정책도 지지했다. 하지만 프레데릭센과 그녀의 동료들은 이러한 접근법을 단순한 보수적 정책이 아니라, 불평등을 줄이고 강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함으로써 높은 세율을 정당화하는 진보적 의제의 일부로 제시했다. 정치 전문 기자 라스 올센은 이에 대해 "이민 정책에서는 우파로 이동했지만, 다른 많은 정책에서는 좌파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사회민주당의 변화를 비판하는 이들조차도 그 변화가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했다. 좌파 정당인 적녹연합의 국회의원 로사 룬드는 "그들에게 이건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다. 그들은 진심이다"라고 말했다.
브라만 좌파가 등장하기 전의 진보주의자들처럼, 2015년 이후의 사회민주당은 높은 이민율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오랜 역사적 데이터를 통해 뒷받침된다.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150년간 미국에서 이민 증가와 경제적 불평등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도금시대(Gilded Age)' 동안 이민과 불평등이 모두 증가했다. 20세기 중반에는 둘 다 감소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다시 이민과 불평등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 정책, 세금 정책 등 다른 요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의 높은 이민율이 불평등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노동 시장에서 경쟁을 심화시켜 임금을 억제하고, 높은 세율을 정당화하는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이민이 많은 사회일수록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아지고 정부의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관계가 미국의 복지 시스템이 유럽보다 약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미국은 유럽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사회적 연대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2006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도했다. "다양성 또는 복지국가: 하나만 선택하라."
사회민주당이 이민 정책을 바꾸자 거의 즉시 정치적 이점을 누리기 시작했다. 2019년 총선에서 당은 다시 집권했고, 그때 41세였던 프레데릭센은 덴마크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다. 집권 후 사회민주당은 이민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 10년 동안 덴마크는 독일과 스웨덴과의 국경 검문소를 강화해, 유럽연합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 입국하는 것을 차단했다. (한 유럽연합 국가의 시민은 여전히 다른 국가에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다.) 또한, 난민 규정을 변경해 다른 나라의 일시적 위기가 덴마크에서 영구 체류할 근거가 되지 않도록 했다. 국가 신분 시스템을 활용해 당국은 난민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구금하고 추방하고 있다. 덴마크는 시민권(국적) 취득 절차도 더 어렵게 만들어, 지원자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덴마크어 능력과 역사 및 문화 관련 시험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정책은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 대상이 된 이른바 '게토 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은 2018년 우파-중도파 정부가 제정했을 당시 '게토 법'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병행 사회' 법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이 법은 고용, 범죄, 교육 진전, 복지 수혜율, 그리고 비서구 배경 주민 비율 등 다섯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동네를 평가한다. 첫 네 가지 지표 중 두 가지 이상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비서구 출신 주민 비율이 50% 이상이면 당국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받아들이는 등 사회통합 촉진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효과가 없을 경우, 정부는 주택 단지를 철거하고 해당 지역을 고급주택가로 만들 수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월 13일 예비 판결을 내리며, 비서구 조항이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무효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프레데릭센은 모든 배경의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덴마크 사회에 통합되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인도, 스리랑카, 베트남 출신 이민자 가정은 학교와 노동 시장에서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지역 출신 이민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부 통계는 충격적이다. 특정 집단의 범죄율은 급격히 높고, 고용률은 현저히 낮다. 프레데릭센은 특히 일부 이민자 여성들이 남편과 공동체의 압력으로 인해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테스파이 역시 이러한 사회통합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이 출신 국가에 따라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한다는 점은, 덴마크의 다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불편하게 만든다. 동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이자 오르후스 시의회 의원인 마하드 유수프는 이민 유입을 줄이려는 정책 자체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책이 워낙 인기가 높아 많은 이민자들조차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는 2020년 사회민주당을 떠나 사회진보주의 성향의 작은 정당에 합류했다. 그는 사회민주당의 사회통합 정책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소수 집단, 특히 무슬림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표현방식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모든 무슬림이 의심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덴마크 내 논쟁이 너무 적나라하다 보니 해외의 진보 세력들은 처음에 덴마크의 변화를 조롱했다. 스웨덴, 독일 등 여러 나라의 활동가들과 학자들은 덴마크 사회민주당이 극우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 언론도 대체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기사를 취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접촉한 일부 덴마크인들은 나를 경계했다. 그들은 내가 또 외국 언론인으로서 덴마크를 배타적인 국가로 묘사하러 온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런 반응을 보며, 나는 엘리트 문화 속에 뿌리 깊은 친이민적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많은 미국인과 영국인들처럼 나도 덴마크 정치 드라마 '보르겐'(Borgen)을 즐겨봤다. 이 드라마는 2010년에 첫 방송되었으며, 나는 이번 덴마크 방문 전까지 이민 문제가 드라마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비르기테 뉘보르는 소규모 정당의 지도자로, 첫 에피소드에서 중도파-좌파 연정이 더 엄격한 난민 규정을 도입하자 원칙적으로 이를 반대하며 연정을 탈퇴한다. 이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겹쳐 그가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노동계층 정치인들과 이민 회의론자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처럼 묘사한다. 보르겐은 흥미로운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브라만 좌파를 위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내가 프레데릭센에게 보르겐에 대해 언급하며 이런 점을 지적했을 때, 그녀는 건조한 톤으로 대답했다. "아마 그래서 제가 그 드라마를 한번도 재미있게 본 적이 없었나 봅니다."
현실에서는 덴마크의 새로운 이민 정책이 사실상 전국민적 합의로 자리 잡았다.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프레데릭센은 2022년 총선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정치담당 기자 라스 올센이 내게 보여준 덴마크 선거 지도를 보면 놀라운 패턴이 나타난다. 2019년 이후, 사회민주당은 코펜하겐에서 멀리 떨어진 저소득 지역에서 다시 승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민주당이 펜실베이니아나 텍사스의 노동계층 지역에서 다시 이기는 것과 비슷한 변화였다.
사회민주당이 다시 노동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민이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데릭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음 선거에서 패배한다면—그럴 수도 있겠죠, 저야 모르겠지만—그 이유는 이민 때문은 아닐 겁니다." 이민 문제가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강경 우익 정당이다. 덴마크 국민당은 최근 선거에서 극도로 부진했고, 이에 따라 또 다른 강경 우익 정당이 창당되었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덴마크 국민당은 5위에 그쳤으며, 득표율은 7%에 불과했다. 같은 선거에서 강경 우익 정당들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2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코펜하겐대학 정치학자 말레네 빈드는 이에 대해 "유럽 전역에서 이런 우익 정당들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과 독일의 분위기도 변화했다. 처음에는 프레데릭센의 정책을 비판했던 스웨덴 내 여론도 점차 바뀌었고, 이제는 덴마크의 접근 방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스웨덴의 외국 태생 인구는 급증했고, 정부는 최근 유입된 이민자들을 사회에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스웨덴은 유럽연합에서 총기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며, 이민자들이 총기 범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조직 폭력 사건이 급증하자, 중도우파 총리 울프 크리스테르손은 대국민 연설에서 "무책임한 이민 정책"과 "정치적 순진함"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의 중도좌파 정당 역시 이전보다 이민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독일에서는 난민 지위를 거부당한 뒤에도 추방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이민자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공격이 최소 네 차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지난겨울 선거에서 이민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기독민주당(CDU)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보다 강경한 이민 규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중도우파 연합은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고, 극우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선거 직전, 미국의 부통령 JD 밴스는 뮌헨에서 연설을 하며 유럽 정치인들이 반이민 정당들을 배척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같은 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를 주류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들의 생각이 무가치하다고 일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의도적으로 나치 시대의 구호를 차용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밴스가 그들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는 점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미국에서는 이민 문제가 유럽만큼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사회적 상향 이동은 늘 당연한 것이었으며, 이민자에 의한 테러 공격도 드물다. 이러한 차이점은 미국에서 이민 관련 정치적 갈등이 결국 완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민의 규모 자체는 중요한 변수다. 지난 4년 동안 이민자가 급증하며 노동계층 지역 사회에 혼란이 발생하자,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너무나 성공적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해왔더라도, 이민이 너무 급격하게 증가하면 결국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20세기 중반을 이상적인 시대로 여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공황의 폐허 속에서 미국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번영하고 포용적인 경제를 구축했다.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은 상류층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심각했지만 점차 완화되었고, 1940년대부터 흑인과 백인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해, 시민권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더욱 좁혀졌다. 유럽에서도 같은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변화가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기를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보 세력이 종종 망각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이 시기 동안 이민이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1924년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의 이민이 급감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인종주의적 동기가 있었지만, 그 효과는 훨씬 광범위했다. 영국처럼 미국으로의 이민을 별로 원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에게만 많은 수의 이민을 허용했기 때문에, 전체 이민자 수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20년 미국 인구의 13%를 차지했던 외국 태생 비율은 1970년에는 5% 이하로 떨어졌다.
이민율이 낮았던 시대가 진보 정책이 번성했던 시대였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대도시의 노동시장이 빡빡해지면서, 대규모 이주를 했던 흑인 노동자들도 과거에는 닫혀 있던 일자리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미 미국에 정착해 있던 이민자 가정들도 경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더 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민 문제가 정치적 논쟁에서 사라지면서 정치권의 초점이 경제 문제로 이동했다는 점이다(덴마크에서도 지난 10년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미국 사회는 더 단결된 국가처럼 보였으며, 사회적 신뢰와 국민적 자부심이 높았다. 덕분에 정치인들은 부유층에 대한 높은 세율과 사회보장제도, 메디케어(Medicare) 및 메디케이드(Medicaid) 같은 새로운 복지 정책을 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이민이 급증하는 동안, 미국은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율은 낮아졌고, 노동계층의 소득은 정체되었으며,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극우 정당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불평등을 줄인 국가의 사례는 거의 없다. 일부 예외적인 사례들도 이 패턴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을 예로 들면, 2010년대 들어 이민을 점진적으로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이민자 수가 극히 적었던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일본 인구 중 외국 태생 비율은 3% 미만이다.
대규모 이민에 대한 이상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진보 세력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자유를 갈망하는 억눌린 대중"을 환영한다는 엠마 라자루스의 유명한 시구처럼, 미국이 전 세계 난민들에게 희망의 등대(beacon)가 된다는 이상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아마도 그것은 미국의 가장 고귀한 신념일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그 지위에서 엄청난 혜택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민이 가장 많았던 시기에도, 미국이 받아들인 이민자는 자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전 세계 인구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80억 인구 중 약 10억 명이 이주를 희망하며, 그중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다. 문제는 언제나 미국이 이 엄청난 수의 이주 희망자 중 몇 퍼센트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었다.
진보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해결책은 있다. 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많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제시했던 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접근법은 국경 보안과 추방에 대한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이민자들을 환영하고 시민권 취득 경로를 확대하는 정책을 결합한 것이었다. 진정한 정치적 난민을 받아들이는 한편, 고령화 사회에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반(反)이민적 인종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이민 규제를 곧바로 인종주의로 간주하는 잘못된 관점을 배척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진보 세력을 대중 여론과 일치시키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극단적으로 많은 이민과 극단적으로 적은 이민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대부분은 적은 이민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급격한 이민 증가가 발생한 경우, 일부 유권자들은 우익 포퓰리스트로 돌아서 사회 복지 정책에도 등을 돌릴 수 있다.
대규모 이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것이 인구 변화, 세계화, 기후변화 등의 요인 때문에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여겨졌던 주장들은 대부분 현실을 직시했다기보다는 기대 섞인 예상에 가깝다. 국가는 자국의 국경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고, 덴마크도 최근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에 정책을 강화하자 국경을 넘는 이민자 수가 급감했다. 트럼프는 이를 더욱 낮췄다. 사실, 고용 확인 시스템과 같은 현대적 테크놀리지는 과거보다 국경 단속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국경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정부 정책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이며, 이는 진보주의의 더 큰 목표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잔혹한 이민 정책은 민주당에게 다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그의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다. 만약 민주당이 선거 캠페인의 마지막 몇 달이 아니라 일관된 중도적 접근법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동안 잃어버린 유권자들을 다시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브라만 좌파 내부에서는 여전히 선거 패배 이후에도 노동계층 유권자들이 대규모 이민에 대한 입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단순한 메시지 조정을 통해 다시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노동계층 유권자들은 본능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 제한적인 이민 정책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가장 취약한 미국인들의 가치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현재 정치적 방황을 겪고 있는 좌파 세력이 다시 주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대선은 미국 리버럴, 즉 진보주의자들에게 매우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선거인단 수뿐만 아니라 전국 득표(popular votes)에서도 트럼프 후보에게 졌습니다. 경합주에서도 참패했습니다. 민주당을 위시한 미국 진보파는 현재 패인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복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진보주의의 대변지라고도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의 2월 24일자 기사도 이러한 복기의 일환입니다. 이 기사는 장문의 덴마크 사회민주당 탐방기사를 통해 우익 포퓰리즘의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덴마크 사회민주당의 비결을 알아봅니다. 핵심 키워드는 이민과 공동체입니다. 진보주의는 전통적으로 노동계층을 위한 복지확대를 추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연대의식이 필요하며, 연대 의식 없이 복지를 확대하면 저항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사회의 개방성을 과격하게 추구하면서 이민을 급격히 확대하다보면 이 사회적 연대,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게 됩니다. 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필요하지만 사회의 건강을 위해 개방성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개방의 속도와 폭입니다. 개방이 공동체적 연대를 깨버릴 정도까지 빠르고 커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기사의 핵심요지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인구 문제의 해법으로 이민 확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민 확대 여부와 함께 확대의 속도와 폭이라고 하는 어쩌면 공동체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꼼꼼히 챙겨야 할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이민을 받아들인 정부였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이것을 중대한 실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