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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인터뷰: 트럼프 치하에선 모두 '왕에게 직접 청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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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Fronteiras do Pensamento

2025.04.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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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이념을 쫓을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헤겔주의적 역사철학을 내세우며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3월 25일자 노에마 인터뷰는 이 자유주의 사상가가 트럼프와 현재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만다린' 즉 중국식 관료제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개념으로 유능한 관료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미국은 300만명의 작은 공화국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였다가 독립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아직 '작은 공화국' 그리고 과거의 영국 스타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3억명이 넘는 거대한 나라가 되었고, 또 미국이 배웠던 영국도 19세기를 거치면서 유능한 관료제를 확립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아직도 '선출 권력'을 중시하고 관료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관료 즉 공무원은 가급적 학력도 낮게 유지하면서 선출 권력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시작해 한국, 일본, 그리고 유럽으로 퍼진 '만다린' 관료제는 최고 정치권력이 유능한 현장 관리자들을 선발해 이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소수의 정치권력(민주정에선 선출권력)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관료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국가라는 머신이 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후쿠야마는 미국이 관료들을 통제만 하려 하다보니 국가 머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국가 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은 매우 강력한 지도자라도 나와 국가를 이끌어주기 바라게 되었다고 트럼프의 등장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한 명의 '스트롱맨' 트럼프보다 유능하고 잘 훈련된 복수의 관료들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 후쿠야마의 주장입니다. 결국 미국도 언젠가는 '만다린' 즉 '고급관료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3억이 넘는 거대한 국가를 18세기 이전의 방식으로 이끌 순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쿠야마는 동아시아식 '만다린' 관료제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한국도 미국식의 논의를 받아들이면서 국가와 관료제에 대한 반감이 오랫동안 지배해왔습니다. 특히 87 민주화 이후 그런 분위기가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관료제의 효율성과 능력, 그리고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대해 다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국의 관료제는 권한은 여전하지만 능력과 효율성은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민주적 통제는 엄격히 하되 그 능력과 효율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정치와 행정이 조화를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노에마 편집장 네이선 가델스가 최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베르그루엔연구소의 곧 공개될 '패러다임 전환' 팟캐스트 시리즈를 위해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만났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 '정치질서의 기원', '자유주의와 그 불만들'과 같은 유명한 책을 쓴 저자다. 다음은 그들의 광범위한 대화의 발췌록이다.


(This article was produced by and originally published in Noema Magazine.)


네이선 가델스: 몇 년 전에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제도가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러한 신뢰 수준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트럼프 팀의 지속적인 사법부 비방으로 인해 매일 악화되고 있습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조차도 이러한 공격은 법치주의에 매우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존속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프랜시스 후쿠야마: 1월 20일(트럼프 취임일) 이후로 저는 존속 가능성을 훨씬 낮게 평가합니다. 선거 전에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 "그는 권위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를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조금 과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가 분명히 권위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짧은 몇 달 동안 미국이 권위주의로 향하는 것을 이미 목격하고 있습니다.



헌법은 권력 분립, 즉 대통령이 매우 명확하지만 제한적인 임무를 수행하도록 행정부를 제약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그러나 1월 20일 이후 우리가 목격한 것은 행정명령의 남발입니다. 마치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 행정부 아래에서는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의회에 가지 않습니다. 주요 기관을 폐쇄하는 것과 같이 무언가를 변경하고 싶다면 왕에게 직접 청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권위주의적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제도적 수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정말 해로운 일은 신뢰의 추가적인 붕괴입니다. 저는 항상 미국을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사회로 생각해왔습니다. 이것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으로, 미국인들이 잘 지내고 서로 협력하기 위해 시민사회 조직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는 관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뢰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결코 높지 않았지만, 이제는 매우 해로운 수준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일반 미국인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신뢰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을 위해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많은 원인이 있지만, 솔직히 기술적 즉 테크놀리지와 관련된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로버트 퍼트넘은 90년대 중반에 이미 미국인들의 함께 어울리는 능력 약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유명한 에세이 '나 홀로 볼링'을 썼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넷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퍼트넘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온라인에서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료 시민들을 신뢰할 수 있고 정직하다고 믿는 신뢰 관계입니다. 그러나 실제 등장한 것은 사회 전반의 양극화로 특징지어지는, 매우 협소하고 밀접하게 결속된 집단들입니다. 이러한 집단 내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높은 수준의 신뢰를 보이지만 그 집단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뢰가 부족합니다.


저는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가 내부적 관계는 정말 끈끈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함께 맥주를 마시러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협소한 집단이며, 국내의 다른 협소한 집단과 매우 대립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좌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한때 가졌던 연대감은 정체성(identity) 정치로 전환되었고, 이는 다시 사람들을 더욱 작은 정체성 집단으로 묶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교류는 많아지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신뢰는 줄어듭니다.


가델스: 그렇군요, 신뢰는 있지만 좁은 공간 안에서만 존재하는군요.


교수님께서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정명령을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정당화했습니다. 이것은 바이마르 시대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는 절대적인 주권 권력은 국내외의 적에게 위협받는 "예외적 상태"에서 정상적인 헌법 질서를 정지시키는 데서 정당성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트럼프 팀, 즉 JD 밴스, 일론 머스크, 트럼프 자신의 사고방식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사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후쿠야마: 물론 "이민자 침략"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는 현재의 법적 제한을 우회하는 방법입니다. 미국 영토에서 태어나고 귀화한 모든 사람은 해당 관할권의 적용을 받는다고 명시된 수정 헌법 제14조의 명확한 진술을 고려할 때 '출생 시민권' 종료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작은 조항 하나에 매달려 우리가 침략당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 상태에 있다고 말하려고 하며, 이는 수정 헌법의 이 명백한 언어를 무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말장난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 행정부에서는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의회에 가지 않습니다. 주요 기관을 폐쇄하는 것과 같이 무언가를 변경하고 싶다면 왕에게 직접 청원합니다."

편집장님 말씀처럼 그것은 더 넓은 자유주의(liberalism)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과도한 절차주의'의 문제입니다. 자유주의 사회는 법치주의 위에 건설되지 않습니까? 힘센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는 규칙들이 있고, 자유주의 사회의 경향은 그것이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믿으면서 그러한 제한적 규칙들을 계속해서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한의 누적이 심해지면서 범죄자를 유죄 판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고, 필요한 모든 규제와 허가를 통과해 인프라 건설 하나 하는 것도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문제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우호적 본능을 낳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제약에 지칩니다. 트럼프 당선을 환호한 사람들 중에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볼 수 있는데, 그는 그 나라 청년들 상당수를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는 범죄율을 낮췄지만, 그것은 완전히 초법적인 방식입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의 과도한 절차주의에 대한 반발이며, 사람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트럼프 지지자들로 하여금 판사를 공격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해 현재 제기된 모든 소송에 직면하여 일론 머스크와 JD 밴스는 "판사들을 탄핵하자. 우리가 하는 일에 어떤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가델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소위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부정행위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신뢰를 증가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소시키고 있습니까?


후쿠야마: 명백히 신뢰를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론 머스크의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불투명합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연방 관료주의를 악마화하는 것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대다수의 관료들이 공익을 위해 관료 조직에 합류한 능력있는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양한 강력한 집단들의 '관료 포획'에 따른 일부 부패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1883년에 직업공무원 제도를 확립한 펜들턴법의 오래된 이상이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관리예산국(OMB) 국장인 러셀 보트와 같은 사람들은 아주 과격합니다. 보트는 실제로 연방 관료들이 미국 국민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것이 그들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비행기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이 공익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많은 관료들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가델스: 교수님의 저서 '정치질서의 기원'에서 중국이 행정 관료제를 발전시켜 최초의 근대국가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소위 '만다린'(동아시아식 고급관료)으로 발전했는데,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인재들이 국가가 시행하는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일부에서 중국의 '제도적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졌고, 수세기 동안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미국과 같은 현대 사회가 번영하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 통치 기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까?


후쿠야마: 그렇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제가 씨름해 온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권한의 위임' 문제입니다. 즉, 모든 정치 권력, 모든 기업 권력,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조직은 적절한 수준의 역량에 따라 계층 구조 내에서 위아래로 권한을 위임해야 합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계층 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 즉 대통령, CEO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하고,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하위의 실무자들입니까?


미국이 가진 문제 중 하나는 경제학자들이 "주인-대리인 모델"이라고 부르는 것의 바보같은 버전입니다. 이 버전에 따르면 주인은 명령을 내리고 대리인은 단지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조직에서는 대부분의 현장 지식이 대리인 측에 있습니다. 고위 정치인 본인들이 아무것도 모를 때 실제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아래의 공무원들입니다. 따라서 실제로는 권위가 조직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미 육군은 이것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장군이 아니라, 실제로 마을을 점령하려고 하는 건물 앞의 소위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로 권한을 위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관료제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관료들 자신이 우월한 현장 지식과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율성을 필요로 하는 계층적 시스템입니다.


미국에서 우리가 가진 문제는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관료들이 좋은 판단에 따라 실제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하는 것은 많은 제한적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연방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이 있는데, 연방 기관은 책상이나 컴퓨터 하나를 구입하는 데에도 입찰 제안을 내는 방법,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 등에 대한 수백 페이지 분량의 규칙서를 참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컴퓨터 같은 것을 하나 구매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연방정부에서 계약이 실제로 체결될 때쯤이면 보통 구식이 되어 버립니다.


정말 정부효율부(DOGE)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관료들을 해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을 이 모든 산더미 같은 규칙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에서 대부분의 관료들은 자신들의 고객들이 직면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보다 이러한 세부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데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특히 유럽연합(EU)에 대한 극우 비판가들은 관료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뉴딜정책 이후로 계속해서 이 말을 들어왔습니다.


더 최근에는 머스크가 민주적 통제 없이 우리 삶을 관리하는 관료들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 많은 규칙들에 의해 과도하게 제약 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의회와 선출된 대표자들이 민주적으로 권한의 범위를 정해주고는 그 권한 내에서 관료들이 실제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문제는 정부에 대한 전통적인 반감 및 불신때문에 스칸디나비아, 일본, 한국과 같이 국가 전통이 더 긴 나라들이 관료를 맹목적으로 불신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은 정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델스: 그렇다면 효율성을 얻는 방법은 관료들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군요.


후쿠야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권한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훌륭하고, 유능하며,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훈련, 전문성 및 기술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의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9/11 이후 교통안전청(TSA)를 설립했을 때 특히 공화당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원들은 "고등학교 졸업자나 동등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면 교통안전청에서 일하기에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믿고 조사 대상 선정 같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도록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초기 항공기 납치 및 폭탄 테러 시도 때문에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항공 보안에 훨씬 더 큰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의 공항 보안 요원들은 세밀한 규칙을 따르도록 훈련받기보다는 스스로 판단력을 행사하도록 훈련받습니다. 그들은 승객들에게 아는 사람, 다녀온 곳,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질문하며, 과거 프로필을 바탕으로 수상한지 어떤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꽤 잘 훈련되어야 합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필요로 합니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가장 저렴한 노동력만 고용하려 한다면, 당신은 지불한 만큼만 얻게 될 것입니다.


가델스: 싱가포르는 유교적 만다린(고급관료) 모델에 기반한 유능한 관료제로 유명합니다. 그 나라의 공무원들은 민간 부문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습니다.


후쿠야마: 그것은 미국인들이 정말 어려움을 겪어온 문제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정부를 불신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정책을 펼칠 문화적 본능이 없습니다.


가델스: 관료제가 언제 활력이 없고 비생산적인 수준으로 부패합니까?


후쿠야마: 제도의 규칙이 경직되어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 새로운 행위자들의 동원 또는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부패가 발생합니다. 기존 이해 관계자들에 의한 국가 기관의 포획, 때로는 "국가 포획"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면 정부는 더 이상 공공의 목적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관료제는 자신들을 포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합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거버넌스의 위험 중 하나입니다. 오스만 제국과 중화제국에서도 발생했습니다.


가델스: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부수는" 방식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이루어지는 종류의 혁신을 관료제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후쿠야마: 정부가 혁신적일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때로는 더 높은 수준의 위험 감수를 허용하는 일종의 안전한 실험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혁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 및 업무 방식에 대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해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민간과 달리) 공공 부문에서는 실패에 대한 용납도가 극히 낮다는 것이고, 경쟁하는 두 정당이 있는 정치적 환경에서는 누구도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음, 이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해보니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린 교훈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실리콘밸리보다 공공기관에서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정치에서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고가 팽배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 내에서 위험 감수를 실제로 장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수를 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돈이거나 불운한 벤처 캐피털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공공 부문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정치적 역풍은 없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뉴스1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뉴스1


가델스: 그래서 중국이나 현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같은 곳에서 경제 특별 구역이 생겨나는군요. 그곳은 다른 곳에 적용되는 환경 규제, 관세 및 기타 제한 사항을 실험을 위해 제쳐두는 구역입니다. 사람들은 그 구역에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그 위험을 말하자면 사회 전체로부터 격리시키는 거죠.


후쿠야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종류의 대중 비판으로부터 정부의 특정 부문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데에는 권위주의 국가라는 점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고 정당들의 정치적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당신의 적들은 어떤 실패든 즉시 포착해 공격할 겁니다.


가델스: 머스크의 관료제에 대한 '전기톱식' 접근법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후쿠야마: 그것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항공 교통 통제나 약물에 대한 안전 및 효능 인증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항공 교통 관제사를 모두 해고해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고, 전염병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에 대한 저의 불만은 자신의 정부가 무엇을 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잘 훈련된 사람들, 즉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익에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부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뒤늦게 후회할 것입니다.

강력한 신들과 국가

가델스: 2024년 선거는 신앙, 가족, 네이션(nation)라는 '강력한 신들'이 극단적인 워우키즘(wokism)조차 포용해내는 열린 사회의 자유로운 감각을 압도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상식으로의 복귀입니까, 아니면 하나의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가 내쉬는 마지막 숨입니까?


후쿠야마: 글쎄요, 저는 후자를 믿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다양한 사회를 통치하는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다른 두 가지 해석이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오른쪽의 하나는 소위 신자유주의로, 시장에 대한 일종의 극단적인 믿음과 국가 및 규제에 대한 상응하는 반감입니다. 왼쪽의 것은 '워우크' 자유주의 또는 정체성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로, 더 이상 사람들을 보편적 권리 보유자로 대우하지 않고 특정 정체성 집단의 구성원으로 대우하며, 그들을 위해 특별한 특권을 부여합니다.


저는 그러한 종류의 정체성 정치에서 물러나서 여전히 자유주의 사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른쪽의 많은 사람들은 워우크 자유주의가 자유주의 자체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따라서 자유주의 전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주장에서 그 어떤 정당성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정체성 정치의 극단적인 측면을 많이 되돌리고 여전히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다원적인 사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19세기로의 회귀

가델스: 자유주의적 국제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기 직전의 마지막 숨입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와 중국을 이러한 질서를 없애고 싶어하는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여겨왔습니다. 이제 미국이 이러한 수정주의의 축에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다른 사람들이 제정하는 규칙에 의해 제약받을 수도 있는 어떤 연루도 거부하는 주권절대주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약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주권절대주의 강대국들이 여기저기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패러다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후쿠야마: 그것은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사실상 19세기로의 회귀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것을 위해 이번 대선에서 투표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거 전에 트럼프의 외교 정책이 어떠할지 물었다면, 대부분은 고립주의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전쟁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나토(NATO)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해외 개입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1월 20일 이후 우리가 듣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는 파나마를 점령하고 싶어하고, 이제 그린란드를 원하며,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가자 지구를 원하고, 캐나다까지 원합니다. 그것은 1945년 이후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비전입니다.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국가의 위대함이 영토와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지만, 제국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열도에 머물면서 많은 도요타와 소니 제품을 만드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어째서인지 국가의 물리적 크기가 진정으로 당신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되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는 윌리엄 매킨리 이후 처음으로 다른 지역들을 병합하여 미국의 물리적 영토를 실제로 확장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력권'이라는 개념 전체를 부활시키기 때문에 정말 19세기적인 발상입니다. 즉, 미국이 미국 근처의 영토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렇게 하려는 다른 강대국들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러시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1945년 이후의 규범에 의해 병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억제되어 왔습니다. 이제 미국도 그들의 게임에 뛰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강대국들이 제국을 가지고 있었던 19세기 세계의 모습이었고, 우리는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매우 노골적인 힘의 정치로의 회귀입니다.


가델스: 하지만 19세기와 다른 점은 정보 네트워크와 AI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후쿠야마: AI는 이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과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우리는 끊임없는 기술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것은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나무 증기선을 현대적인 강철 전함으로 대체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제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AI가 사람들이 사용할 또 다른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권력을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는지 아니면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는지입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훈련시키려면 막대한 컴퓨팅 성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누구든지 온갖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AI를 만들 수 있는 오픈 소스 LLM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정답을 정말로 알지 못하므로 너무 많이 추측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수년 동안 이야기했던 여러 이론들을 실제로 시험합니다. 즉, 강대국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기능 같은 것들이 있으며, 이 필요한 기능들이 그들을 같은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컴퓨터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아니, 우리는 말과 나무로 만든 마차로 모든 것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강대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 말은, 그렇게 강대국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매우 분명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중앙의 계획을 통해 통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에 대한 그 모든 소련 공산주의적 접근 방식은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경쟁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의 자유 등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미국에 이점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고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비교적 개방적인 경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같은 나라가 이 모든 것을 따라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꽤 잘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술 부문을 통제하려 했던 방식을 보면 문제가 드러냅니다. 그것은 그들의 혁신 능력을 제한할 것입니다.


가델스: 하지만 동시에 딥시크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중국에 대한 기술 금수 조치는 결국 중국의 혁신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금지는 높은 역량과 능력을 가진 사회에서는 혁신의 어머니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우주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군사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은 서방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여전히 부상(浮上)하는 유능한 사회입니다.


후쿠야마: 맞습니다. 그들은 유능하고, 금수 조치는 그들이 더 열심히 우리와 경쟁하도록 자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그들이 우리와 경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속도를 늦추고 경쟁에 비용을 더 많이 들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가델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역사적 연속성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을 '문명 국가'라고 묘사해 왔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우리도 같은 용어로 서구 문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조르지아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서구 문명을 수호하려 한다고 말하는데, 그녀는 서구 문명이 "그리스 철학, 로마법, 기독교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팔란티어의 CEO인 알렉스 카프는 '기술 공화국: 하드 파워, 소프트 신념, 그리고 서구의 미래'라는 책에서 이러한 다른 문명 국가들에 맞서 서구 문명의 우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의 최전선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모든 것에서 문명적 요소가 보이십니까?


후쿠야마: 이것은 '문명' 차원에서 생각했던 헌팅턴의 오랜 논쟁으로 되돌아갑니다. 저는 여전히 그 주장을 그다지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는 이러한 각 문명 내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분열과 균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헌팅턴은 이슬람을 하나의 문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실제로 국민국가를 초월해 진정한 하나의 문명 관념으로 사유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나 중동의 현실을 보면 그들도 역시 서로 경쟁하는 국가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범중화권이나 범러시아권 내 나라들 사이의 협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문명들을 어떻게 나누고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구 문명을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에 대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으며, 서구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교회 출석과 전통적 가치의 쇠퇴를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 즉 자유주의적 관점은 '서구'가 중세교회와 정통성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탄생한 계몽주의를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구 문명의 단일한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서구인은 몇 가지 매우 중요한 복잡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델스: 하지만 서구의 열린 사회를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대다수의 무슬림 국가와 힌두교의 인도와 구별하는 일반적인 공감대는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후쿠야마: 그런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언어가 관련된 모든 문화적 요소를 설명하기에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곳에서 이러한 모든 복잡성에 빠지게 됩니다. 헌팅턴은 문명이 오랜 시간 속에서 놀라울 정도의 안정성을 보이며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사고방식을 지시하는 종교 및 종교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더욱 세속화된 시대에, 새로운 버전의 자칭 '문명'에서 종교를 대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미디어 생태계

가델스: 오늘날의 소셜미디어 생태계는 구글과 메타와 같은 테크 기업들에 통제를 집중시키지만, 이전에는 목소리를 못 내던 수많은 사람들에도 힘을 실어줍니다. 따라서 일종의 이중적인 역동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공화국들은 한 곳에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될 때마다 견제와 균형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 테크 대기업들에게도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반대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보는 공론장을 만들지 않고 사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으로만 흐릅니다. 모든 사람이 협소한 사일로(silo) 안에 거주합니다.


정보 흐름이 너무 나뉘어져 있고 공론장이 너무 무력화되어 국정운영의 합의에 도달할 모두가 참여하는 플랫폼이 없는 지금, 공화국들은 이제 견제와 균형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분열로는 나라의 통일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후쿠야마: 그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같은 자유주의적 원칙에 기반한 서구 사회는 현재 진정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하고 말씀하신대로 권력 집중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편집장님이 정부가 진실과 가짜뉴스를 구별해내는 통제 주체가 되기를 원하진 않으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영리를 추구하는 대규모 사기업이 그러한 책임을 맡는 것도 원하지 않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기업이 민주적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통제 형태 모두 나쁩니다. 이 갈등과 관련해 가장 합리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는 소위 "미들웨어"의 사용입니다. 미들웨어가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기술적 솔루션입니다. 미들웨어는 기본적으로 콘텐츠 조정 기능을 대형 플랫폼에서 떼어내지만 그렇다고 정부에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용자가 일부 부유한 개인이나 국가 권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시받는 대신 콘텐츠 조정 기능을 경쟁적으로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제3자들에게 나눠주고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동일한 콘텐츠를 조정하는 여러 방법들이 존재한다면, 사용자가 '필터 버블'과 구획화된 정보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자료를 선택할 수 있는 경쟁적인 생태계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이 많고, 지배적인 단일 방법이 없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질서 내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언론의 자유 개념과 양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델스: 그것은 예를 들어 메타(페이스북의 모기업)가 콘텐츠 조정자 대신 현재 사용하는 이러한 커뮤니티 모니터링 기능과 어떻게 다릅니까?


후쿠야마: 그들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진전입니다. 이상적인 미들웨어에 가장 가까운 한 가지 예는 레딧(Reddit)입니다. 그들은 콘텐츠 조정 기능이 분산된 다양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조정 규칙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꽤 좋은 시스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강요되는 보편적인 규칙을 가진 단일 플랫폼보다 훨씬 나은 대안입니다.


가델스: 그것은 콘텐츠 조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숙고를 위해 정치 공동체 전체에 노출되고, 아이디어가 상호 격리된 사일로를 넘어서 정치 공동체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공론장의 다리를 건설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후쿠야마: 그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문제의 일부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규모의 경제가 가지는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이 규모의 경제 때문에 플랫폼이 이렇게나 크고 강력해졌습니다. 1억 명의 팔로워를 가진 네트워크가 1천만 명의 참가자가 있는 네트워크보다 셉니다. 그래서 점점 더 큰 플랫폼으로 모여두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해결책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미들웨어는 적어도 그것을 조정하고 밀어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가델스: 분산된 문제에 대한 분산된 해결책이군요. 19세기적 주권절대주의 국가들과 현재 전개되고 있는 관세 체제로 잠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대공황 직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같아서 경제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가 지적했듯이, 2025년은 1930년대의 미국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비합니다. 따라서 관세는 실제로 국내 수요를 재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이는 GDP 성장, 임금 상승,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가자 지구에 대한 요르단의 영향력이나 캐나다, 파나마 또는 덴마크에 대한 미국의 경제력을 활용하기 위해 관세를 사용하는 이 새로운 중상주의 전략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트럼프는 "금광 위에 앉아 있다면 관세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후쿠야마: 글쎄요, 저는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이전에도 진정한 자유무역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부상하는 내내 그들은 특정 핵심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했으므로 실제로 공정한 경쟁의 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트럼프의 관점 중 하나인데,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중국이 이익을 취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이것을 허용했지만, 그것은 아시아에서 그들을 반공의 보루로 키우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을 돕기 위해 그들과의 무역 적자를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특정 핵심 가치에서 우리와 반대되는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그런 이익을 취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다지 현명한 정책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는 공정한 경쟁의 장에 있지 않으며, 단지 그것을 더 공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유무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그것이 바이든이 트럼프 1기의 높은 관세를 유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민주주의 친구 국가인 두 개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고율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그렇게되면 미국은 정말로 위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국력은 우리의 친구들의 국력에도 달려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권절대주의자들이 잊어버리는 점입니다.

끝나지 않는 역사

가델스: 모든 사람이 교수님께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분명히 1989년 이후로 역사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논의해 온 것처럼, 우리는 강대국들이 각각의 세력권으로 전 세계를 나누던 한 세기 전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죠.


후쿠야마: 글쎄요, 문제의 일부는 사람들이 세대별로 상이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꽤 보편적인 한 가지 사실은 사람들이 독재 체제 아래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유럽이 공산주의 독재에서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해방된 것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난 지 벌써 35년이 되었습니다. 한 세대 전체는 유럽연합(EU)이 제공한 평화와 번영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독재 아래에서 사는 것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로 EU 관료주의가 새로운 독재자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 우파의 일부 표현에서 저를 놀라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더 이상 미국에는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사회에서 사는 것이 독재 정권 아래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행동합니다. 이들은 실제 독재 정권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면서도,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캔슬' 문화가 스탈린주의만큼 나쁘다고 믿습니다.


저는 자유주의가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정신 때문에 스스로를 고쳐나갈 수 있다고 여전히 믿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의 정치사상가, 국제문제 전문가로 '역사의 종말'(1992)의 저자로 유명하다. 코넬대에서는 유명 정치사상가 앨런 블룸 교수에게 배웠고, 하버드대 박사과정에서는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한때 국무부에서 근무했고,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스탠포드대에서 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To read the original interview and other similar essays in English, visit noemamag.com.)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투자가 겸 자선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젠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이 설립한 베르그루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2014년 허핑턴포스트와 파트너십으로 발행했던 월드포스트가 그 시초로,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 위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대체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국제정세, 철학, 테크놀러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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