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남동부 장시성(江西省)의 도시 잉탄(鷹潭)에서는 중국의 첨단기술 미래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과거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재래식 노천시장과 길가의 식당들은 이곳을 중국 내륙의 평범한 지방 도시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도시 남쪽의 산업단지에는 산업 디지털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첨단 기술의 분위기를 풍긴다. 통신관련 국책 연구소도 이곳 인근에 최첨단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곳 시 정부는 낡은 구리 산업을 첨단 기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고급 부품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잉탄이 첨단기술에 걸었던 승부수는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25년 이 도시의 1인당 GDP는 성도(省都)인 난창(南昌)을 넘어섰다. 10년 전만 해도 성도보다 25% 낮았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잉탄 경제는 여전히 부동산 경기 침체와 2010년대 초부터 시 정부가 쌓아 온 막대한 부채에 발목이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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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는 서로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중국 곳곳에서는 두 세계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으며, 중국 경제 전체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는 첨단 제조업이 2029년까지 매년 실질 GDP 성장률에 약 1% 포인트를 안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2024년과 2025년 성장률을 각각 2% 포인트씩 끌어내린 부동산 부문의 붕괴에 따른 부담도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예측 불가능하고 경제에 큰 충격을 준 봉쇄 조치의 후유증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생산자물가 하락은 3년간 이어진 끝에 미국의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충격이 중국 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지난 3월에야 막을 내렸다. 중국의 공장들은 수출용 첨단 전기차를 쏟아내고 있지만, 팬데믹과 부동산 붕괴의 상처를 간직한 데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그대로 노출된 중국 소비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위안위안 앙(Yuen Yuen Ang) 교수는 근현대사에서 큰 국가가 첨단기술 투자에 올인하면서 동시에 경기 둔화와 지방정부 부채 위기를 헤쳐 나간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시장 붕괴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새 성장 엔진이 꺼지는 데는 큰 충격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중국산 전기차 수요 둔화, 장기화되는 무역전쟁, 에너지 위기 등이 이 새로운 성장 모델의 회복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토지 매각과 건설에 의존했던 기존 성장 모델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새로운 성장 모델이 더 빠르게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데 승부를 걸고 있다. 이는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하는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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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성장 모델은 중국 연안 지역에서 형성된 뒤 내륙으로 확산됐다. 부유한 동부 연안의 공장들은 내륙 출신의 저임금 이주노동자 즉 '농민공(農民工)'들을 고용했다. 이들 이주노동자는 대도시에서 호적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번 돈을 고향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20년에 걸친 부동산 호황기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 단지는 가장 작은 지방 도시까지 들어섰고, 매년 수천만 명의 건설 노동자를 고용하는 동시에 저가 제조업 제품에 대한 막대한 수요를 만들어냈다. 고속철도는 가장 가난한 현(縣) 지역까지 뻗어나갔다.
이 모든 투자는 지방정부의 차입에 의해 뒷받침됐다. 한 추산에 따르면 지방정부 부채는 약 60조 위안(1경 3356조원)으로 전체 GDP의 43%에 달한다. 미국은 12% 수준이다. 특히 가난한 지역일수록 주택과 도로, 교량 건설을 위한 부채 의존도가 높았다. 그 결과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貴州省)과 같은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626m의 교량을 비롯한 눈부신 인프라를 갖추게 됐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채도 떠안게 됐다. 지금까지 이들 막대한 공공사업 가운데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창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제 투자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혁신성이 높은 보다 제한된 산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AI, 로봇, 핵융합 발전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기술 목표를 제시하면, 전국 수백 개 도시가 관련 프로젝트를 앞다퉈 지원한다. 어느 국가 반도체 펀드는 지난 12년 동안 약 6870억 위안(153조원)을 조성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펀드 운용사들의 운용 자금은 지난해 약 4000억 위안(89조원)으로 늘어나 2024년보다 75%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는 항공우주, 반도체, 뇌-기계 인터페이스, 양자기술 등에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1000억 위안(22조 원) 규모의 국가 벤처펀드도 출범시켰다.
망할 때까진 잘 되는 척
많은 지방정부는 소도시를 포함해 지방 세수와 국유기업 자본을 활용해 이와 유사한 투자기구를 설립하고 있다. 이들은 세제 혜택과 각종 지원을 내세워 혁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첨단기술지구'와 'AI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진 오이(Jean Oi, 戴慕珍) 교수는 이러한 첨단기술 기업들이 세수를 늘리고 지방정부가 부채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정부들은 지난해 강력한 AI 모델을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한 AI 기업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자국 기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부채를 상환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실제로 성과를 내기도 한다. 베이징, 항저우, 상하이, 선전과 같은 대도시는 인재와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다. 이 네 도시는 중국 전체 AI 투자액의 약 70%를 유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라 증권의 루팅(Lu Ting)은 이러한 흐름이 주택 수요를 자극하고 지역 부동산 시장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한적한 안후이성의 허페이는 여러 대표 기업을 육성했다. 이곳에는 LCD 패널 대기업 BOE 테크놀로지와 고급 전기차 업체 니오(NIO)의 공장이 있으며, 지역 대학에서는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iFlyTek)이 탄생했다. 지방정부는 중국 최대 첨단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CXMT도 공동 설립했다.
하지만, 이 같은 프로젝트가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보려면 잉탄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춘(宜春)으로 가보면 된다. 이곳에서는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2021년 이춘시 정부는 대규모 국가첨단기술개발구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23억 위안(약 51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선전이나 허페이의 성공적인 전기차 클러스터와 달리 이 공장은 효율적인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 공급망과 기술 인력으로부터 고립돼 있었다. 결국 현재는 생산이 중단됐으며, 산업단지의 다른 시설들 역시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설령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출범하더라도 지역 산업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10년 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는 중국 내륙의 산악지대인 구이저우성에 약 1500억 위안(약 33조원)을 투자했으며, 대부분 데이터 저장시설과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투입됐다. 그러나 존스홉킨스대의 위안위안 앙 교수는 이러한 사업들이 지역 산업과 연계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한 기업들은 연안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서버 부품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됐으며, 현지의 데이터 수요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이 전통적인 지역 경제와 융합해 지역 주민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때로는 그 결과가 희비극적일 만큼 암울하다. 중국 북서부의 산업도시 란저우(蘭州)는 수년 동안 버스 운전기사들의 임금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들에게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 명의의 은행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하면서도, 상업용 우주산업과 '드론 경제' 프로젝트에는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활력이 넘치는 연안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현지 언론이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선전(深圳)이 위치한 광둥성의 AI 산업단지들을 둘러본 결과, 상당수가 텅 비어 있거나 AI와 무관한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산업정책은 기업뿐 아니라 이들을 유치한 지역, 때로는 도시 내 개별 구(區)까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경쟁 압력은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끌어올린다. 이 같은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BYD(자동차), 화웨이(전자), 샤오미(전자, 자동차)와 같은 최고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강자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며, 인재와 자본이 풍부한 기존 상업 중심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제 돈을 보여줘
수익을 내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투자은행 BNP파리바의 치 뤄(Chi Lo)는 투자 수익은 개별 기업보다 통합된 공급망에 더 많이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공급망이 구축되면 비용이 낮아지고 제품 개발 주기와 혁신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적자를 기록하는 제조업체의 비중은 지난 4월 약 3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11년의 10%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며,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의 이전 최고치도 넘어선 수준이다(그래프 1).
기업 부채 역시 높은 수준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그래프 2). 컨설팅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마크 윌리엄스는 현재 중국 기업들이 국내 은행과 채권 투자자들에게 진 빚이 2019년의 두 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GDP는 약 3분의 1 증가했다. 그는 기업들이 생산적인 활동보다 중앙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에 제공되는 보조금을 쫓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IMF 소속 경제학자 3명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중국의 "총요소생산성(TFP·자본과 노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은 지난 10여 년 동안 산업정책이 없었을 경우를 가정한 것보다 1.2% 낮은 것으로 추산됐다. GDP도 2% 낮았으며, 이는 매년 약 4000억 달러(605조원)의 부가가치를 포기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기업들이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과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가격 인하 경쟁에 더욱 몰두할수록 수익을 창출하기는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춘이나 구이저우처럼 가난하고 외진 지역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중국 내륙 지역이 전체 제조업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내륙 지역의 비중은 36%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2013년의 약 48%에서 크게 떨어졌다. 이는 3~4억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의 저숙련 노동력에게 심각한 문제다. 국가의 관심이 첨단 기술 분야의 주도권 확보로 옮겨갈수록 이들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농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중국 중앙정부 고문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집착이 마치 미국이 의도치 않게 중국 지도부에 걸어놓은 주문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경쟁이 중국 지도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왜곡시켰으며, 첨단기술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는 반면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로봇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인민들은 우울하다. 지난 4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0.2% 증가하는 데 그쳐, 중국이 코로나19 봉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인 2022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의 은행 대출 잔액도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아무리 눈부신 첨단기술의 성공 사례가 잇따르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중국 인민들의 침체된 심리를 되살리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중국의 공학적 성과는 눈부십니다. 네이처지에 따르면, 중국이 생산하는 우수논문의 양이 미국과 EU 합쳐놓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공학, 기술의 렌즈로 보면 중국의 약진은 놀랍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불균형이 너무 심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중국공산당 및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고 있어서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라는 집착에 따라 중국 정부가 '최첨단' 기술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최첨단'은 일자리와 괴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륙지역의 이른바 '농민공'들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이들은 번영하는 지역으로 이동해 '영주'할 수도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과도한 지도, 지방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계속되는 한 균형잡힌 지속적 성장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최첨단 공학의 비약적 발전과 경제적 불균형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 소련, 인도 같은 나라들이 경제적 불균형을 감수하고 최첨단 산업에 자원을 대거 투입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과연 중국은 이러한 딜레마를 피해갈 수 있을까요? 미국과의 패권 경쟁 승리를 위해 최첨단 공학도 키우고, 동시에 수 억명의 내륙지역 농민공들에게도 부를 나눠주는 경제발전이 가능할까요? 이코노미스트 6월 9일자 기사는 이 문제를 '21세기의 방향을 결정할 질문'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