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참정권 박탈을 원하는 미국 남성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이 5월 14일자 애틀랜틱 매거진 기사를 읽다보면 '오!'라고 놀라시는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이렇게까지 전통적인 가정으로 회귀하자는 사람들이 많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 MAGA 운동과 가까운 JD 밴스 부통령은 얼마전 네번 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출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자주 드러냅니다. 한국에서라면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사회보다 한국사회가 미국 민주당쪽 세계관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매스큘리니즘(페미니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이 러스트벨트의 분노와 손 잡고 트럼프와 MAGA의 1년 반 전 압승에 기여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우리가 지금껏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으로 봐왔던 미국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공격적 매스큘리니즘이 20, 21세기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여성들이 대거 사회진출하는 흐름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게 된 불평분자들의 반항인지 아니면 좀 더 진지한 사상적 움직임인지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미국의 현 상황을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변화는 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중간중간에 매우 거친 표현들이 나오는데,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진보진영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도 궁금합니다. 미국내에 치열한 사상투쟁이 진행중입니다.

더글러스 윌슨에게는 미국인의 삶을 개선할 '소박한 제안'이 하나 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수정헌법 19조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우리 교회 조직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에서도 하면 돼요." 윌슨은 최근 내게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가구 단위로 투표하는 거죠."


윌슨은 아이다호주 모스코에 본부를 둔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CREC)의 공동 창립자다. 지난 50년 동안 윌슨은 이곳에서 미국에 대한 자신의 신정정치神政政治 비전을 퍼뜨리기 위한 작은 제국을 일궈 왔다. 출판사와 학교, 리버럴아츠 칼리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갖췄다. 약 170개 교회가 소속된 윌슨의 교단에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신자로 있으며, 윌슨은 지난 2월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기도회를 인도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러니 이 목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 인구 절반의 참정권을 박탈하자고 제안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이 입장에 대해 묻자 윌슨은 그것이 최우선 과제는 아니라며 "더 급한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200년쯤 뒤에나 일어날 일로 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지적인 간보기가 몹시 거슬렸다. "만약 제가 '모든 백인 남성을 우리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아니고, 당장의 바람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부터 제가 하는 다른 어떤 말에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으시겠죠."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윌슨은 낄낄 웃었다. "아마도 제 관심을 통째로 사로잡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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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바로 눈을 반짝이는, 서글서글한 아저씨 같은 더글러스 윌슨이다. 해군을 갓 제대하고 기타 치는 것이 좋아 히피 교회에 들어갔다가, 담임 목사가 떠나자 얼떨결에 예배를 이끌게 된 사람이다. '신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여러 도시를 도는 토론 투어를 함께 다녔고, PG 우드하우스를 향한 공통의 애정으로 그와 우정을 쌓았던 바로 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72세의 윌슨은 자신의 웹사이트 'Blog & Mablog'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20년 넘게 윌슨은 말 안 듣는 여성들에 대한 자극적인 견해를 쏟아내 왔다. 윌슨의 표현을 빌리면 '가슴 작은 잔소리꾼들', '드센 여편네들', '벌목꾼 레즈비언들', '헤픈 여자들'이다. 윌슨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또 다른 페미니스트를 '한 쌍의 XX들'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그나마 이것이 점잖은 축에 속하는 표현이다. 윌슨은 매년 '가차 없는 11월No Quarter November'이라는 행사를 열어 독자들에게 자신의 진짜 속내를 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윌슨은 여성이 "통상적으로는" 공직을 맡지 말아야 하고 군에서 전투 임무를 맡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편은 행실이 바르지 않은 아내의 체중과 소비 습관, 텔레비전 방송 선택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 작가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Karen Swallow Prior는 미국을 향한 윌슨의 비타협적 비전이 한때는 주변부의 것으로 여겨졌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헤그세스가 윌슨의 위상을 끌어올린 지금은 "더그 윌슨이 비주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 아무도 없어요."


더글러스 윌슨 아이다호주 모스코 크라이스트 교회 담임목사가 2025년 9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전미보수주의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윌슨은 이른바 '매스큘리니즘masculinism'(남성우월주의)이라 불리는 흐름의 유력 인사다. 매스큘리니즘은 페미니즘의 진전에 맞서 싸우고 남성의 우위를 다시 세우려는 운동이다. 윌슨의 매스큘리니즘은 종교적인 것으로, 가족에 대한 남성의 '머리 됨headship' 개념과 경건한 여성은 '조용해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았다. 스트리머 스니코, 자칭 '포주' 앤드루 테이트, 팟캐스터 마이런 게인스처럼 세속적 남성주의자도 많고 명목상 무슬림인 매스큘리니스트도 많다. 여성 때리기는 소셜미디어에서 잘 먹히고 암호화폐, 스포츠 도박, 보충제 광고 팔기에도 도움이 된다. 남성이야말로 진짜 억압받는 성별이라고 말해주면 꽤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알고리즘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기꾼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뉴라이트(신우파)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득표력에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사후적으로 입히는 일이었다. 매스큘리니즘은 그들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를테면 보호무역주의나 이스라엘, 빅테크에 대해 견해가 갈리는 분파들도 페미니즘의 과잉과 전통적 성역할로 돌아갈 필요성에는 모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스큘리니즘은 주변부 신념체계이기는커녕 미국 우파를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되었다. 목사, 네티즌, 상원의원, 설교자, 인플루언서, 팟캐스터, 열성 팬이라는 있을 법하지 않은 조합을 한데 모았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은 흔히 첫 흑인 대통령과 늘어나는 라틴계 인구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매노스피어manosphere'(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생태계)의 다인종적 호소력과 2024년 트럼프가 소수 인종 젊은 남성층에서 거둔 약진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뉴라이트가 무엇에 그렇게 분노하느냐고 제게 묻죠." 트럼프주의의 지적 토대를 다룬 책 <퓨리어스 마인즈Furious Minds>를 쓴 작가 로라 필드가 내게 한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 지위를 잃은 일과 그 일을 초래한 엘리트들에게 분노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를 가장 짧고 함축적으로 말하면 원인은 '여성'이라는 것이죠. 그들의 지위를 빼앗아간 것이 바로 여자들이라는 거예요."


윌슨이 공적 활동에 임하는 방식에는 프로레슬링에서 '케이페이브kayfabe'라 부르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각본을 실제인 양 연기하는 행태로, 이제 온라인 우파의 특징이 된 능청스럽고 과시적인 도발이다. 윌슨은 나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가장 황당한 제안에 발끈해서 잔소리꾼이나 하늘이 무너진다며 호들갑 떠는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윌슨과 점점 늘어나는 그의 유력한 동맹들은 이런 신념에 진심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실행에 옮기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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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큘리니즘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는 아무도 남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조시 홀리 상원의원이 2023년에 낸 책 <맨후드: 미국에 필요한 남성적 덕목들>에서도 남성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 터커 칼슨의 다큐멘터리 '남자의 종말'에서도 논의되지 않는다. 아마존에서 팔리는 <그 일에 맞는 남자>, <남성적 기독교>, <남자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같은 제목의 수많은 기독교 서적에서도 <여자들이 덜 가져야 하는 이유> 같은 비종교적 책들에서도 논의되지 않는다. 성별에 따라 극도로 분리될 수 있는 소셜미디어 피드에서도, '모던 위즈덤', '휴버먼 랩Huberman Lab', 'CEO의 일기The Diary of a CEO'처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독립 팟캐스트 일부에서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공적영역에서 페미니즘은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그만큼 강한 반동이 뒤따랐다. 1세대 여성인권 운동가들은 사납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반대를 뚫고 여성 참정권을 쟁취했다. 2세대 페미니즘이 '타이틀 나인Title IX'(교육 분야 성차별 금지법)을 비롯해 성차별에 맞선 법적 승리를 거두자, 필리스 슐래플리는 성평등 헌법 수정안(ERA)의 완전한 비준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정체성에 집착하던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재계가 총력을 기울여 '미래는 여성' 같은 번지르르한 구호를 밀었다. 이런 상업적 전격전은 여성의 전진이 남성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일부 사람들이 믿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거듭 들은 이야기는, 남자아이들이 마치 일종의 원죄라도 뒤집어쓴 듯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도록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은 그에 대한 반발의 시간이었다. 미투 운동은 완전히 내팽개쳐졌고, 보수는 '로 대 웨이드'(낙태 허용) 판결 폐기에 환호했으며, "조용히 해, 돼지야" 같은 노골적인 성차별적 모욕이 공적 영역에 되돌아왔다.


대부분의 대중운동이 그렇듯 매스큘리니즘에도 여러 진입로가 있고 옹호가 가능한 형태와 우려스러운 형태가 공존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남성의 외로움, 고등교육에서 줄어드는 남성의 비율,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남성의 정체된 임금, 그리고 단타매매day-trading, 게임, 포르노가 주는 무기력 같은 정당한 우려들이 있다. 다른 쪽 끝에는 'AWFUL'이니 '롱하우스longhouse'니 하는 여성혐오적 어휘(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와, 여성에게서 일할 권리, 투표할 권리,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는, 소설 <시녀 이야기>에 가까운 정치적 의제가 있다.


인터넷에서 매스큘리니즘은 반항으로 포장된다. 회사 인사팀이라면 입에 담지 말라고 지시할 온갖 단어로 표현되는 이 사회의 주류인 리버럴 기득권을 향해 치켜든 도발적인 가운뎃손가락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유출된 단체 대화방들은 청년 공화당원들과 대학의 보수주의자들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섞어 결속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종사가 여자이고 시칠리아 출신보다 피부색이 열 단계는 더 짙어 보인다면 그냥 거기서 끝내세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그 말을 외치세요." 뉴욕·캔자스·애리조나·버몬트주 공화당 청년 조직 지도자들이 쓰던 텔레그램 대화방의 한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화방 구성원 중 몇몇은 여성이었다.) 자신을 과거에 백인 내셔널리스트였었다고 소개하는 리처드 하나니아Richard Hanania는 이런 집단 신호 보내기를 '인증 의식1Based Ritual'이라고 부른다. 젊은 MAGA 열성 지지자들이 서로에게 자신들이 진짜배기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Z세대에서 더글러스 윌슨의 지적 후계자는 닉 푸엔테스Nick Fuentes다. 푸엔테스는 '그로이퍼Groyper'라 불리는 느슨한 트롤 집단을 이끈다. 자칭 기독교 내셔널리스트이자 반유대주의자 그리고 숫총각인 푸엔테스는 노골적인 여성혐오 언사를 무기 삼아 팬층을 쌓아 왔다. "우리에게 제1의 정치적 적은 여자들이에요. 여자들이 모든 것을, 모든 대화를, 모든 남자를, 전부 다 옭아매니까요." 푸엔테스가 올해 초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푸엔테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히틀러가 집시, 유대인, 공산주의자 등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를 전부 가둬버렸듯이, 우리도 여자들에게 똑같이 해야 해요." 푸엔테스는 여성을 "출산 굴라크gulag"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착한 여성들은 해방될 거예요. 나쁜 여성들은 광산에서 영원히 고된 노동을 하게 될 것이고요."


푸엔테스의 언사는 이런 젠더화된 세계관이 다른 편견들과 얼마나 쉽게 얽힐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게이 남성? 여성스럽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으니 남자답지 못하다. 유대인? 운동신경보다는 머리가 좋으니 역시 남자답지 못하다. 대학 강단의 학자들? 목이 연필처럼 가느다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니 역시 남자답지 못하다. 트랜스젠더? 필연적으로 타락한 존재다. 무슬림? 강간범들로 이루어진 침략군이다.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을 지켜내야 할(백인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대상인 흉악범들이다. 오늘날 온라인 우파의 거의 모든 면면은 젠더라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는 MAGA 정책 조직일 헤리티지재단에서는 지난해 재단 이사장이 푸엔테스의 반유대주의를 규탄하기를 거부하자 여러 관계자가 재단과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여성이 강제 번식 수용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푸엔테스의 견해는 그런 소동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극우 활동가 닉 푸엔테스가 2020년 1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의 주의사당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윌슨은 이런 류의 언사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천박하다고 생각한다고 내게 말했다. "성경은 경건한 여인이 남편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윌슨의 말이다. "푸엔테스가 여자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기 면류관을 이야기하는 왕은 본 적이 없어요. 터무니없는 짓이죠." 나는 "가슴 작은 잔소리꾼들"이라는 표현이 마가복음에 나오는지 누가복음에 나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윌슨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윌슨은 푸엔테스가 워낙 극단적이어서 이 운동의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위장 투입된 FBI 요원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반대편 팀이에요."


신학적으로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충격과 공포' 레토릭 전략의 덕을 보고 있다. 2014년, 초대형 교회 목사 마크 드리스콜이 게시판에 수십 쪽 분량의 폭언을 쏟아낸 필명 '윌리엄 월리스 2세'였음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그것은 작은 스캔들이었다. 게시글에서 그는 미국은 '계집애처럼 약해빠진 나라'가 됐고, 남자들은 '페니스를 시기하다 찌들어버린 페미니즘에 물든 싱글맘들 손에, 변기에 앉아서 오줌 누는 아주 착한 여자가 되도록 길러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그런 언어는 눈살조차 찌푸리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한때 필명 뒤에 매스큘리니즘 충동을 숨기던 필자들이 이제는 실명으로 거리낌 없이 과격한 말을 쓰고 내뱉는다. '날달걀 내셔널리스트Raw Egg Nationalist'로 알려진 매노스피어 도발꾼을 보라. 팔로워가 30만 명이 넘는 그의 X(옛 트위터) 계정명은 @Babygravy92다. 그는 날달걀 노른자를 들이키는 이른바 '슬롱킹slonking' 같은 라이프스타일·영양 조언에 강경 우파 반이민 정치를 결합하며 음모론자 앨릭스 존스Alex Jones의 매체 인포워스Infowars에 글을 쓴다. 반백인주의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고 '킨드레드 하비스트'라는 미세플라스틱 없는 허브차 티백 브랜드도 운영한다.


2024년 한 좌파 활동가 단체가 그의 정체를 폭로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 종교사학자 찰스 코니시데일Charles Cornish-Dale로, 박사 논문 제목은 '성스러움의 이동: 1400~1640년경 윔본 민스터의 신앙 문화'이었다. 이름이 공개되자 현재 38세인 코니시데일은 신상 털기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내가 하는 일에 더 헌신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코니시데일은 신간 <마지막 남자들The Last Men>에는 필명을 쓰지 않았다. 책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온전히 남자로 사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다. 윌슨과 마찬가지로 코니시데일의 정치적 처방도 비타협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얼마 전에 누가 물어봤어요. 아마 여자였을 거예요. '그럼 여자들한테서 투표권을 빼앗겠다는 건가요?'라고요." 코니시데일이 내게 한 말이다. "그래서 저는 '대다수 남성의 투표권도 박탈할 거예요'라고 답했죠."


유서 깊은 보수 출판사 레그너리에서 나온 이 책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주장한다. 높은 테스토스테론이 위계, 지위, 불평등의 수용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리버럴리즘은 남성의 생명력을 억누른다고 한다. "좌파는 이제 거세당한 상태와 낮은 테스토스테론을 정체성의 일부로 공공연히 받아들였다." 코니시데일은 '에케 호모스3Ecce Homos'라는 글에서 처음 폈던 주장인, 좌파가 이성애자 남성의 영웅들을 게이로 다시 그려내 그들에게서 영웅을 빼앗아 갔다는 주장도 다시 꺼낸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테르모필레에서 최후 항전을 벌인 스파르타인들, 카우보이, 해적, 갱단원"의 남성적 유대를 되찾고 싶어 한다.


<마지막 남자들>은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 출산율 하락과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오스카 3관왕에 똑같이 심란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코니시데일은 세계적으로 정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처럼 우려할 만한 현상들을 짚어내고, 보람 없는 일자리에 갇힌 채 삶의 더 큰 의미를 찾아 헤매는 미국의 많은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진짜 권태감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책임을 엘리트들에게 돌린다. 엘리트들이 당신을 계속 살찌게 만들고, 리스크 감수와 위계질서를 못마땅해하며, 남성성을 유해하다고 부른다는 것이다.


대화해 보면 코니시데일은 건방지지만 밉지 않은 인물로, 사이먼 코웰4을 연상시키는 나른한 말투를 지녔다. 우리의 줌Zoom 인터뷰는 그의 시간으로 오전 6시에 진행됐는데 그는 줄무늬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서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요즘 그의 미학은 삭발 머리에 우람한 근육질 몸이지만 2012년에는 상투머리man bun를 자르라는 요구를 받자 불교 사원에서의 현지 조사를 포기한 적도 있다. "그때는 힙스터 시기를 지나고 있었거든요." 코니시데일이 내게 말했다. "스키니진 대신 승복을 입으라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어요."


코니시데일은 본질적으로 인플루언서다. 다만 현학적인 단어를 잔뜩 아는 인플루언서다. 그러나 매스큘리니즘은 단지 관심경제의 부산물이 아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인물들은 보수 정책 서클과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한 명이 스콧 예너Scott Yenor로, 현대 여성들이 "각종 약에 절어 있고, 참견하기 좋아하고, 걸핏하면 싸우려 든다"고 선언한 인물이다. 예너는 2000년부터 더글러스 윌슨의 근거지 모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아이다호주 보이시주립대학Boise State University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쳐 왔다. 그는 또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함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 축소 작업을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DEI를 백인 남성에게 해로운, 사실상의 인종·성별 할당제로 본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의 핵심은 '차별금지'입니다." 예노어는 2021년 이메일에 썼다. 이 이메일은 공공기록 공개 청구에 따라 뉴욕타임스에 제공됐다.


이제 예너는 스스로 약간의 차별을 꿈꾼다. 지난 가을 클레어몬트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듯이, 그는 기업이 "남성 가장만 고용하거나 가족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전통적 가정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아내가 일할 필요가 없도록 남성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자는 것이다. (현행법상 이는 성별에 따른 차별로 명백히 위헌이다.) 2021년에는 대학이 여성 엔지니어를 더 많이 뽑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가 될 남성을 더 많이 모집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와 로스쿨, 모든 직종도 마찬가지다."


JD 밴스와 마찬가지로 예너는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 특히 격한 경멸을 쏟아붓는다. 아이 낳는 것보다 커리어를 갖는 걸 택한 여성, 예너의 표현으로는 '애 없는 미디어 잔소리꾼'이나 '불임의 관료제 하수인'에게는 신의 가호가 필요하리라. 예너의 언사는 불쾌하고 극단적이어서, 그는 플로리다의 한 대학 이사회 임명 인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수정헌법 19조 폐지에 대해 예너는 이메일로 내게 "미국에 가구 단위 투표나 그와 비슷한 제도가 있던 시절에도 미국은 폭정이 아니었고, 나라는 잘 통치됐으며, 가족은 지원을 받았다"고 답했다. "지금의 미국은 다르며, 동일한 투표 제도는 오늘날의 여건에 맞지 않을 겁니다." (예너는 수정헌법 19조에 대한 질문에는 답했지만 나와의 인터뷰에는 시간을 내지 않았다.)


스콧 예너가 2021년 5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지의 주도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교육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예너는 최근 헤리티지재단의 '미국 시민권 이니셔티브' 의장이 됐다. 재단이 지난 1월 낸 보고서는 부모 중 한 명이 일하는 기혼 부부에게 후한 세제 혜택을 줘 가족 형성을 장려하는 '문화적 맨해튼 프로젝트'를 촉구했다. 동시에 낙태, 피임, 한부모 수당, 보육시설, 데이트 앱, 무과실無過失 이혼은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내가 읽어본 것 중 가장 낭만과 거리가 먼 축에 드는 문장이 들어 있다. "결혼은 또한 독특한 은퇴 설계 기회를 열어준다."


이 모든 것은 헤리티지재단이 만든 트럼프 2기 청사진 '프로젝트 2025'에 담긴 주제들의 연장선이다. 동료 기자 데이비드 그레이엄의 표현을 빌리면 이 문서는 '남자는 생계부양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인' 미국의 비전을 제시한다.


페미니즘이—그리고 뒤따라오는 가정 밖 노동, 피임, 경제적 독립이라는 '공포'가—여성을 신경증적이고 약물에 의존하게 만들었다는 예너의 주장은 이제 우파의 신조가 됐다. 익명의 온라인 게시자들은 진보 성향 여성이 불안 증세를 호소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데이터를 수시로 들고나온다. 그러나 여성의 불행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를 한참 벗어난 이야기로 보인다. 이 사람들은 20세기 중반 전업주부들의 절망을 샅샅이 기록한 <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ystique> 같은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단 말인가? ("수많은 교외 주부들이 기침약 사탕 먹듯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다"고 저자 베티 프리단은 책에 썼다.) 그러나 매노스피어 곳곳에서 젊은이들은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망치기 전에는 여성들이 남편의 아낌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의 여성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먹고살거나 무의미한 '이메일 일자리'로 억대 연봉을 번다는 것이다. 매스큘리니즘의 패러다임 속에서 모든 여자는 고양이를 위한 인사과 업무나 보는 사람이고, 모든 남자는 배관공이나 상선 선원이다.


나는 윌슨에게 그의 동맹들이 향수에 젖어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간단한 질문 하나 할게요." 윌슨이 답했다. "1850년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아픈 사촌을 보러 가든 뭐든 여행하려면 남편 허락을 받아야 했던 그 여자들, 그중 1만 명을 놓고 봤을 때 몇 명이나 항우울제를 먹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중 몇 명이 항우울제를 먹고 있을까요?"


나는 그것이 공정한 비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모두가 항우울제를 먹기 때문이다. 게다가 1850년대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발명되지도 않았었다. 그저 아편팅크(로더넘)나 좀 먹고 온천에나 다녀오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매스큘리니즘 사상은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지난해 킹스칼리지런던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조사에 따르면, 30개국의 Z세대 남성은 베이비붐 세대 남성보다 여성 평등을 위한 싸움이 지나쳐서 이제는 남성이 차별받는 지경이 됐다고 답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아버지는 '남자로서 부족하다'고 답할 확률도 두 배 이상이었다. 한편 보수 성향 맨해튼연구소의 설문에 따르면 50세 미만 공화당 지지 남성의 83%가 사회가 지나치게 여성화됐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이 조사에서는 노동계급 남성이 고상한 척하는 여성 엘리트에게 반기를 든다는 흔한 서사가 재현되지 않았다. "대졸 공화당 지지자가 비대졸 지지자보다 사회가 너무 여성적으로 변했다는 견해에 동의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가 맞붙은 가장 최근의 대선은 매스큘리니스트들에게 선물이었다. 매스큘리니즘 운동의 악당 명단에는 여성 상사, 페미니스트,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 올라 있는데 해리스는 그 셋 모두의 화신이었다. 2024년 트럼프 뒤에 섰던 남성 팟캐스터들은 이제 노골적인 여성혐오자들을 초대한다. 기독교 토론가 앤드루 윌슨의 커리어를 보라. 그는 지난 1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라 할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에 출연했다. 매노스피어 인플루언서에게는 슈퍼볼에서 국가를 부르는 것에 맞먹는 일이다.


로건의 게스트 선정은 미국 정치 분위기의 바로미터다. 로건 자신도 반(反)워우크 정서와 코로나19 봉쇄에 대한 짜증, 음모론에 대한 깊은 몰입을 거치며 2020년의 버니 샌더스 지지자에서 2024년의 트럼프 지지자로 흘러갔다. 최근에는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무교파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온라인 토론 강좌를 홍보하러 로건의 방송에 나온 앤드루 윌슨은 원래 유튜브 구독자 460만 명의 연애 팟캐스트 '왓에버Whatever'에 거듭 출연하며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 방송의 주특기는 모델이나 온리팬스OnlyFans BJ들을 부추겨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하는 발언을 끌어내는 것이다. 최근 한 게스트가 자신은 백만장자 남편을 만날 자격이 있다고 말한 것이 그런 예다. '왓에버'라는 투견장에서 여자들은 결코 이길 수 없게 되어 있는 존재이지만 남자들이 걸고넘어지는 동안 그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기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한 에피소드에서 윌슨은 함께 출연한 여성 게스트에게 당신은 너무 멍청해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게스트는 윌슨의 아내 레이철이 서로 다른 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꺼냈다. 윌슨은 핵폭탄급으로 폭발했다. "너는 여자 X이나 핥는 X야." 윌슨은 으르렁거렸다. "이 빌어먹을 레즈X아. 내 아내 얘기를 함부로 지껄이지 마, 이 멍청한 X아." 윌슨은 "나는 너보다 나아"라고 덧붙였다. 통제되지 않은 공격성이 그대로 드러난 놀라운 장면이었다. 또 다른 영상에서 윌슨은 피클 병을 열지 못하는 여성 게스트를 조롱했다. 게스트가 병을 건넸는데 윌슨도 열지 못했다. "당신 손 기름이 뚜껑에 잔뜩 묻었잖아요." 윌슨은 투덜댔다. 윌슨은 내가 접해본 중 가장 불쾌한 축에 드는 인터넷 인격의 소유자다. 난 블루스카이도 해본 사람인데 그렇다. (윌슨은 나의 인터뷰 요청에 답하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놀랄 것도 없이 윌슨은 지위 높은 남성인 로건을 '왓에버'의 모델들을 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중하게 대했다. '브로'들끼리 한껏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윌슨은 로건에게 말했다. "페미니스트들도 뭐랄까, 밤이면 늑대를 피해 문을 걸어 잠가야 했던 시절의 삶을 조금이라도 맛본다면 당장 페미니스트 노릇을 그만둘 거예요." (팟캐스트로 먹고사는 헤비스모커 중년 남성이 늑대와 맞붙으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이날의 앤드루 윌슨과 '왓에버'의 앤드루 윌슨의 차이는 놀라웠다. 로건이 저 악의적인 버전에는 아무런 우려도 없이 이 온화한 버전을 기꺼이 초대했다는 사실도 그만큼 놀라웠다.


윌슨은 이 기회에 아내의 책 <오컬트 페미니즘>도 홍보했다. 페미니즘이 "오컬트 신앙에서 태어났는데, 그 핵심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을 남성 위에 군림하는 신으로 만들거나 최소한 여성을 신격화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봤는데(스포일러: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강령회séance를 사랑했고 마일리 사이러스의 혀는 이교도적pagan이다) 술에 취해 위키백과 문서 대여섯 개를 읽은 친구가 그 내용을 늘어놓는 걸 듣는 기분과 섬뜩할 만큼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윌슨의 아내 홍보가 어찌나 성공적이었던지, 몇 주 뒤 레이철 윌슨이 직접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에 출연했다. "저는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별 의견이 없었어요." 로건이 레이철 윌슨에게 한 말이다. 다만 일부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아차렸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나서 페미니즘의 기원이 "정신 나간" 것임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진 것은 안티페미니즘 히트곡 모음이었다. 필리스 슐래플리가 깨달았듯이, 안티페미니즘은 여성의 기여가 언제나 환영받는 유일한 주제다. "아무도 이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레이철 윌슨이 로건에게 한 말이다. "이건 아무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요. 여성의 고등교육 접근성은 경제, 인종, 문화, 지위,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출산율 하락과 가장 밀접하게 맞물리는 첫 번째 상관요인입니다."


사실 교육과 출산율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것은 정책 서클에서라면 지극히 진부한 이야기로 여겨질 것이다. 유엔(UN)은 이미 1990년대에 이 현상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노스피어에서는 모든 것이 이른바 금지된 지식인 양 제시되어야 한다. 몇 주 뒤에는 트럼프 백악관의 스티븐 밀러 보좌관의 아내인 팟캐스터 케이티 밀러가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러햄에게 똑같은 주장을, 역시 금기를 깨는 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펼치고 있었다. 밀러는 잉그러햄에게 페미니즘이 "여성을 일터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가족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 질 필리포빅은 이렇게 꼬집었다. "이 두 여성은 지금 자기 직장에서 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실 출산율 하락이라는 난제는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 많은 나라가 이미 출산장려 정책으로 대응해 왔다. 싱가포르는 1만1000달러(1650만 원)의 '출산 축하금'을 주고, 헝가리는 자녀가 셋 이상인 어머니에게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떤 당근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말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이야기는, 더 많은 아기를 낳고 문명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의 교육과 노동시장 접근을 제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레이철 윌슨 같은 사람들이 차라리 자신들이 그것을 지지한다고 터놓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대로 된 논쟁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는 대신 이들은 고전적인 매스큘리니즘 전술을 구사한다. '에볼라 의무 감염'만큼이나 지지받기 어려울 정책의 가장자리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홱 돌아서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LGBT 마피아'에 반대하며 소셜미디어에서 대규모 팔로잉을 쌓은 텍사스 오스틴의 강경 우파 목사 조엘 웨번Joel Webbon은 여성의 공적 참여를 제한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준비가 된 사람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을 알고 있어요. 물론 이름을 대지는 않겠지만 여러분이 알 만한 이름의 많은 사람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른쪽에 있어요." 웨번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러나 웨번은 이들이 사람들을 미끼로 유인한 뒤 말을 바꾸는 스타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좌파가 수십 년간 써온 수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동성결혼을 통과시키려고 "사랑은 사랑"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시다시피 '아, 사실은 드래그퀸 동화구연회도 해야 돼'가 됐죠." 매스큘리니스트들은 좌파의 전략을 그대로 좌파에게 되돌려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글러스 윌슨과 마찬가지로 웨번도 곧잘 혐오 설교자로 묘사된다. 웨번은 오스틴에서 자신이 집전하는 예배에 시위대가 몰려와 신도들을 촬영해 간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윌슨, 코니시데일과 마찬가지로, 웨번의 호전적인 온라인 인격과 내가 인터뷰한 실제 인물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팟캐스트에서 그는 '인종차아아별이라는 가짜 죄악' 운운하며 조롱을 일삼지만 일대일로 만나서는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ma'am'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예의를 차렸고, 내가 당신이 옹호하는 제도는 기독교 전통의 그 무엇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성 후견인 제도에 가깝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끼어들지 않고 들었다. 웨번은 자신의 인터넷 활동을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논쟁하고 강론하던 것처럼" 여긴다고 내게 말했다. 초대 교회의 중요한 전도 시기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웨번의 X 피드를 확인해 보니 그는 "유대인 남색가들"에 대해 떠들면서 @IfindRetards(나는 저능아들을 찾아낸다)라는 계정의 글을 리포스트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필리스 슐래플리는 작가 헬렌 앤드루스Helen Andrews다. '헬렌 구분 장애'가 있는 리버럴들은 가끔 나를 이 사람과 혼동한다. 앤드루스는 2025년 콤팩트 매거진에 기고해 화제가 된 글 '거대한 여성화The Great Feminization'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가 '문명에 대한 위협'인지 물었다. (정말이지, 여자들은 이렇게 호들갑스럽다니깐.)


앤드루스의 글은 우파에서 영향력 있는 '롱하우스longhouse'(공동 거주 가옥) 테제 위에 서 있다. 현대의 여성화된 사회가 과거의 공동 거주 공간을 닮았다는 주장으로, 그 공간은 수동적 공격성, 트집 잡기, 적을 따돌리기 등 전형적으로 여성적인 행동 양식으로 군림하는 '무리의 어머니들den mothers'이 지배했다는 것이다. 롱하우스 테제를 가장 유명하게 정리한 글은 종교 잡지 퍼스트씽스First Things에 'L0m3z'라는 필명의 필자가 쓴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들기를 거부했고 어차피 롱하우스는 딱히 정의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 정의는 탄력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혐오하는 광대한 사회 세력의 무리를 조롱하는 힘을 잃기 때문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대신 롱하우스는 "동시대의 사회적 상상계를 괴롭히는 불균형에 대한 환유"라고 했다.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겠다. L0m3z는 결국 인문학 교수로 밝혀졌다.


앤드루스는 이 테제를 한발 더 밀고 나가 "당신이 워우크니스wokeness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저 인구학적 여성화의 부수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쉬운 말로 옮기면 여자들은 가이 리치 영화의 등장인물들처럼 흡연장 밖에서 주먹다짐을 벌이고 두 시간 뒤에는 뒤끝 없이 털어버리는 식으로 논쟁을 매듭짓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신 여자들은 "은밀하게 적의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적을 따돌린다"고 앤드루스는 쓴다. 따라서 "모든 캔슬(퇴출시키기)은 여성적"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사책을 잠깐만 들춰보면 몇 가지 난제가 나타난다. 로마 원로원의 등 뒤에서 칼 꽂기는 문자 그대로의 일이자 비유이기도 했고 바티칸은 언제나 음모를 꾸미는 추기경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찰리 커크의 암살 이후 ABC를 압박해 지미 키멀을 방송에서 끌어내린 사람은 누구였나?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자 Y염색체의 소유자인 브렌던 카였다.


글 후반부에서 앤드루스는 검증 가능한 명제를 하나 내놓았다. "기업이 저돌적인 기상을 잃고 여성화된, 안으로만 향하는 관료제가 되면 정체하지 않겠는가?" 공교롭게도 노동경제학자 레바나 샤르푸딘Revana Sharfuddin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인구학적 여성화' 시기 중 하나였던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장들의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공장들이 캔슬 컬처와 시시콜콜한 인사 분쟁으로 마비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묻자 앤드루스는 전시의 자동차·전기 공장들이 여전히 사실상 성별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런데도 일부 관리자들은 새로 들어온 노동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상담사를 고용했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게 가장 와닿았던 반론은 공산주의의 사례였어요." 앤드루스가 이메일에 쓴 말이다. "소비에트 블록에서는 여성이 의학과 과학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었는데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았어요. 뭐, 무너지긴 했지만 여성들 때문은 아니었겠죠."


앤드루스의 글은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을 옹호하고 나선다. 서머스는 2006년, 여성이 순수과학 분야에서 과소대표되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타고난 무관심과 최고 수준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능력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압박 속에 사임했다. 나중에 엡스타인 파일에서 드러난 바로는, 이것도 서머스의 사견을 순화한 버전이었다. 그는 여자가 남자보다 IQ가 낮다고 생각했다. (궁금해서 서머스가 사임한 2006년의 다양성 통계를 찾아봤다. 당시 하버드에서 테뉴어를 받은 교수의 5분의4가 남성이었다.) 돌이켜보면 서머스의 축출은 페미니즘 히스테리의 산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들이 그를 낯 뜨거운 골칫거리로 여기던 차에 이 기회를 잡아 밀어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놀랍게도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앤드루스는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래리 서머스가 그 논란 때문에 잘렸다고 하는 건, 미국이 진주만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앤드루스가 말했다. "단순화라는 거죠. 한 문장짜리 설명으로는 충분하지만 중요한 요인들을 분명히 빠뜨리고 있으니까요."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앤드루스는 짓궂으면서도 자기비하적이었고 내가 자신, 즉 "나쁜 헬렌"과 혼동되어 겪었을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이런 모습의 앤드루스였다면, 일하는 여성이 "문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하던 앤드루스처럼 입소문을 타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파에서 '서서히 번지는 여성화'는 최근 여러 사건을 설명하는 만능 열쇠가 됐다. 여자들은 약자를 동정하고 자칭 피해자들에게 영합하고 진실보다 상처받은 감정을 더 중시하는데, 미등록 이민자와 흉악범들이 이 모든 것을 악용한다는 식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 단속요원의 총에 맞은 여성 러네이 굿은 좌파적 가치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었다. "'부유한 백인 여성 도시 리버럴Affluent White Female Urban Liberal'(AWFUL) 하나가 자기한테 발포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에게 차를 들이받고 죽었다." 우파 논객 에릭 에릭슨이 굿의 사망 직후 올린 글이다. 여자들은 어린애 같고, 순진하고, 미성숙하며, 그저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MAGA 인사들은 여성적 공감의 과잉을 정치적 문제로 지목해 왔다. 더글러스 윌슨의 팟캐스트 '맨 램펀트Man Rampant'의 첫 에피소드 제목은 '공감의 죄악'이었다. 캐나다의 마케팅 교수 개드 사드Gad Saad는 여자들이 "더 이상 제대로 된 옷을 입지 않고 맨날 애슬레저 차림"이라고 불평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틈틈이 "자살적 공감"에 대한 규탄을 정기적으로 내놓는다.


공감에 대한 이런 경멸은 여성의 정치 참여가 문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 아녀자들이 기어이 엉뚱한 후보와 정책에 표를 던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정치에 대해 진정으로 낙관할 수 있었던 마지막 10년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찌감치 트럼프를 지지한 피터 틸이 2009년 케이토연구소 저널 기고문에 쓴 문장이다. "1920년 이후 복지 수급자의 급증과 여성의 참정권 확대로 생겨난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악명 높게 버거운 두 유권자 집단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형용모순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정치의 젠더 격차(2024년 트럼프에게 남성은 55%가 투표했지만 여성은 46%만 투표했다)는 단지 우선순위가 서로 다르다는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다.


윌슨 같은 사람들이 수정헌법 19조를 폐지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바로 그 시점에도, 누군가 진지하게 여성 참정권을 끝내려 한다는 지적은 주류 보수들 사이에서 '리버럴의 히스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결국 헌법을 바꾸려면 50개 주 가운데 4분의3의 동의가 필요하다. "단 한 주라도, 38개 주 중 하나라도 폐지안을 통과시키는 날이 오면 그때 가서 수정헌법 19조 문제를 걱정할게요." 클레어몬트연구소 전 연구원 이네즈 스텝먼은 지난 3월 썼다. 리버럴들은 "농담과 술자리 잡담의 메아리를 유머 감각도 없이 쫓아다니면서, 그것을 진짜 정책·문화 논쟁을 침묵시키는 데 부정직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논법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8년 보수 지식인 조던 피터슨과 마주 앉았을 때,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을 것이라는 나의 말에 그가 코웃음을 치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혹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생 시민권 문제를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피트 헤그세스가 이미 여성(그리고 흑인) 장교들의 진급을 막고 여성의 전투 복무에 대한 반대를 수시로 표명하지 않았더라면.


매스큘리니즘은 이제 그 지도자들 다수가 그토록 흠모하는 로마 제국처럼 제국적 과잉팽창 단계에 다가서고 있다. 가장 열렬한 신봉자들에게는, 좌파 쪽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성별과 무관하게 무엇이든 여성화된 것이고 나쁜 것이다. 반면 트럼프가 사소한 원한을 담아 앙칼진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날리면 그것은 남자다운 기백의 발현이다. 터커 칼슨의 완벽하게 부풀린 머리 모양은? 거칠고, 심지어 상남자답다. 벤 셔피로가 뮤지컬을 흐뭇하게 즐기는 취미는? 아마도 바이킹이나 스파르타인의 훌륭한 전통을 잇는 것이리라. 여자 것은 나쁘고 남자 것은 좋다는 이 단세포적 세계관은 2010년대 텀블러5 페미니즘의 최악의 과잉을 거울에 비춘 상이다. 그 시절 내향적인 십대 소녀들은 '#KillAllMen'(모든 남자를 죽여라) 같은 해시태그를 올리고 '남자의 눈물MALE TEARS'이라고 적힌 머그잔으로 음료를 마셨다.


지난 3월, 반DEI 활동가 크리스토퍼 루포Christopher Rufo는 백인 남성이 "역사상 가장 억압받는 집단임이 매우 분명하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익명 우파 네티즌 무리와 싸워야 했다. 루포가 이런 견해를 "뇌 손상" 수준이라고 표현하며 노예제라는,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들먹이자 항의가 빗발쳤다.


내게는 이 에피소드가 MAGA 매스큘리니즘의 핵심을 찌른다. 이 운동의 진짜 얼굴은 어느 쪽인가? 차별금지법을 되돌리려는 보수 싱크탱크 연구자들인가, 아니면 '가슴 작은 잔소리꾼들'과 AWFUL들을 향해 악을 쓰고, 자기연민에 뒹굴고,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것에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인플루언서들의 막장 드라마인가?


그러나 물론, 근엄한 사상가들과 돌격대는 서로를 먹고 자란다. 윌슨처럼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실제 정책 목표를 가진 운동이다. 무과실 이혼의 폐지.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에게 보상을 주는 세제 혜택. 헤그세스가 없앤 군 여성 리더십 프로그램 같은 것까지 포함해, DEI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의 폐지. 성희롱이 일상이던 1970년대 직장 문화로의 회귀. 채용과 승진, 보수 책정에서 남성 노동자를 공공연히 우대하는 것—다시 말해 남성을 위한 소수자 우대 정책.


그러나 매스큘리니즘은 동시에 불만의 영구기관으로도 작동한다. 현 상황을 향해 내지르는 두서없는 고통의 울부짖음이다. 그 상황이 지금 무엇이든 간에. 매스큘리니즘은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과장된 광대극이며 때로는 오싹하고, 이목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이자 진심 어린 제안이다. 그것이 트럼프주의의 주춧돌이 된 것도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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