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의 비극

권력 싸움이 한 때 활기찼던 나라와 수도를 폐허로 만들었다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수단 하르툼 도심의 텅 빈 검문소에 군인 복장의 마네킹이 세워져 있다. /사진=AP/뉴시스

이코노미스트의 8월 6일자 기사는 수단이 어떻게 폐허가 되어버렸는지를 조명합니다. 이 기사는 PADO가 8월 21일에 발행한 'UAE의 아프리카 제국' 기사와 함께 읽으시면 좀 더 입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수단의 비극 뒤에는 UAE을 포함한 외세들의 개입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 주변에 늘 국제분쟁 기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입니다. 모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교통로 중 하나인 아덴만-홍해 인접 국가들입니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만큼 지정학적 가치가 높고, 따라서 수많은 세력들(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이 호시탐탐 노리는 곳들입니다. 수단은 한국(남한) 크기의 인구(5000만 명)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땅 크기는 한반도의 8.6배나 됩니다. 지금 이곳에서 과거 함께 군부통치를 해왔던 두 세력이 나뉘어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이 내전으로 수십 만 명이 죽었고, 140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외세들도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자칭 "유일한 정규군" 수단군이 있고, 이에 맞서 준군사조직인 RSF(신속지원군)이 있습니다. 정규군이라고 해봤자 무장이 그렇게 중무장이 아니기 때문에 준군사조직과 무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거기에 RSF는 아프리카 지역에 "제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UAE의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UAE는 이스라엘과 제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UAE-이스라엘에 맞서는 중동지역 맞수는 사우디-튀르키예-이집트입니다. 이들은 이슬람권의 유일 핵무장 국가인 파키스탄과 가깝고, 최근 이들은 '메카 방어 동맹'을 공식 결성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수단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라이벌 구도가 수단에까지 확장된 셈입니다. 외세는 특정 국가의 분열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분열되면 될수록 맘대로 들어가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공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수단의 비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러일전쟁, 식민지지배, 분단, 전쟁을 겪은 우리로서는 수단의 비극이 더욱 가슴 아픕니다.

기자가 차를 타고 하르툼 거리를 지나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적막이었다. 3년 전 현재의 내전이 발발하기 전만 해도 수단의 수도는 600만~900만 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대도시였다. 사헬 지역에서 가장 탄탄한 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텅 비어버렸다. 시리아의 알레포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처럼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이 참상은 전쟁의 두 당사자가 주도권을 놓고 벌인 잔혹한 전투의 결과다. 한쪽은 자금력이 풍부한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이고, 다른 한쪽은 수단 정규군인 수단군이다. 전쟁은 2023년 4월 15일 시작됐다. 이후 약 2년 동안 RSF는 대통령궁과 공항 주변의 역사적인 도심을 비롯해 수도 대부분을 장악했다. 주민 가운데 최대 500만 명이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 수단군이 RSF를 수도에서 몰아낸 것은 지난해 3월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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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F와 수단군의 전쟁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분쟁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버금간다. 사망자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약 140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란했다. 이는 금세기 들어 발생한 최대 규모의 강제이주다.


수단군은 전쟁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국제사회가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군 수장이자 사실상의 수단 대통령인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수단군은 최근 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수단 싱크탱크 컨플루언스 어드바이저리의 콜루드 카이르는 수단군이 이러한 공세의 기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헤메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이끄는 RSF 역시 병력 대부분의 출신지인 다르푸르에 여전히 강력한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더욱이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분쟁 구도도 갈수록 분열되고 있다. 현재 이 전쟁에는 최소 150개의 민병대가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민족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여기에 드론 사용까지 증가하면서 수단 내에서 안전지대로 여길 만한 곳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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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으로 어느 한쪽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양측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들이 협상 타결을 압박할 수는 있다. RSF의 최대 후원자는 아랍에미리트(UAE)이며, 수단군의 배후에는 이집트와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오랜 갈등이 여전히 첨예하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걸프 국가들은 수단의 홍해 연안에 더욱 큰 전략적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주장을 부각하려는 수단군은 하르툼이 복구되고 있는 도시로 비치기를 바란다. 알부르한 장군이 수도로 복귀한 뒤 약 200만 명이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산된다. 알부르한과 그의 동맹 세력은 수도 장악을 통해 확보한 주권국가로서의 외형이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이라고 본다. 하르툼이 안전과 치안을 되찾고 경제 회복의 길에 들어섰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국내의 적대 세력과 해외의 우방 모두에게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복구 진척은 지역에 따라 엇갈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와 수도 공급이 실제로 재개됐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며 제한적이다. 학교와 병원, 정부 부처도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술리마 이샤크 사회복지부 장관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다시 미소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르툼 공항을 오가는 정기 국제선은 아직 없다. 지난 5월 드론 공격을 받은 이후 추가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엔도 인도주의 지원 항공편을 자주 취소한다. 다만 국내선 정기 운항은 재개됐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에 문을 연 하르툼의 상징적인 그랜드호텔도 부분적으로 영업을 재개했다. 반면 5성급 코린티아호텔의 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포트수단으로 이전한 외국 대사관들 역시 아직 하르툼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범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하르툼은 어두워진 뒤에도 경호원 없이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은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시내를 둘러봐도 건물과 기반시설이 실제로 복구되고 있다는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주거지역이 대부분이고 비교적 전투가 적었던 나일강 서안의 옴두르만조차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 주민은 한숨을 내쉰다. 강변에 자리한 폐허가 된 의사당 건물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상흔이다.


의사당 옆에 있는 폭격의 흔적이 선명한 다리를 건너 맞은편 도심으로 들어서면 피해는 더욱 뚜렷해진다. 불에 타 뼈대만 남은 국방부 청사에서 폐허가 된 중앙은행에 이르기까지 참상의 흔적이 이어진다. 고급 주거지역에서는 RSF가 약탈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샅샅이 뜯어갔다. 건물 대부분은 여전히 버려진 채 남아 있다. 많은 지역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가장 가난하고 달리 갈 곳도 없는 이들뿐이다. 거리마다 사람의 절반은 사라진 듯 텅 비어 있고, 밤이 되면 도시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다.


2026년 4월 27일 월요일 수단 하르툼의 수단 국립박물관 내부 방에 드론과 탄피가 놓여 있다. /사진=AP/뉴시스

도시 곳곳에는 불발탄이 널려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4만 발이 발견됐지만, 안전하게 제거 작업을 마친 지역은 하르툼 전체의 1%에 불과하다. 조만간 현지에서 제거 작업을 시작할 예정인 영국의 지뢰 제거 자선단체 헤일로 트러스트의 올리 톰슨은 "필요한 작업 규모가 현재의 처리 역량을 압도한다"고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가까운 우방조차 재건 비용을 선뜻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한 유럽 고위 외교관은 "재건한 시설이 다시 파괴될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따라서 당분간은 금과 아라비아검(gum arabic) 수출을 주요 재원으로 삼는 수단군 정부가 복구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려면 재건에 돈을 써야 하지만, 실제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알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군사정권의 2인자 말리크 아가르는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자원은 전쟁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단군이 하르툼으로 돌아온 뒤 줄곧 뜻대로 전황을 이끌어온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다르푸르의 주도 엘파시르는 18개월간의 포위 끝에 결국 RSF에 함락됐다. 당시 공격으로 주민 최대 6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조사관들은 이 공격에서 "집단학살의 전형적인 징후"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엘파시르 함락으로 RSF는 프랑스와 맞먹는 크기의 다르푸르 지역을 사실상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세는 다시 수단군에 유리한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수단군은 7월 초 에티오피아와 맞닿은 남동부 국경의 전략적 요충지 쿠르무크를 탈환했다. 이곳은 올해 초 RSF와 현지 반군이 점령했던 도시다. 몇 주 뒤에는 하르툼과 북코르도판주의 주도 엘오베이드를 잇는 간선도로를 따라 여러 도시를 잇달아 되찾았다. 엘오베이드의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싱크탱크 컨플루언스 어드바이저리의 카이르는 이번 돌파를 지난해 하르툼 탈환 이후 수단군이 거둔 첫 번째 "큰 승리"로 평가한다.


현재 수단군이 장악하고 있는 엘오베이드는 RSF에 거의 포위된 상태다. 이 때문에 엘파시르에서와 같은 학살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상당한 근거를 얻고 있다. 최근 며칠 사이 RSF는 엘오베이드 주변 도시들에 다시 드론 공습과 기타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주민 수천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RSF 지도자 다갈로('헤메티')는 불길하게도 자신의 전투원들을 "(공격개시를 위해) 풀어놨다"고 경고했다.


수단군은 최근의 승리로 엘오베이드에 주둔한 병력을 지원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 카마르 알딘 모하메드 백나일주 주지사는 "민병대(RSF) 세력은 이제 몰락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완전히 힘이 소진됐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백나일(White Nile) 주의 주도이자 엘오베이드로 향하는 핵심 병참 거점인 코스티를 찾아가 보면 RSF가 완전히 힘이 소진됐다는 주장은 과장처럼 보인다. 지난 5월 드론 공격으로 파괴돼 시커멓게 불탄 주유소 두 곳의 잔해는 RSF의 공격력이 여전히 먼 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엘오베이드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는 지금도 매우 위험하다. 운전자들은 하늘의 감시망과 공격을 피하려고 이 도로를 지나는 유조차에 진흙을 바를 정도다.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수단 하르툼 도심에서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을 뒤로한 채 놀이공원을 즐기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수단군이 최근 영토를 되찾으면서 엘오베이드가 RSF에 함락될 가능성은 작아졌다. 만일 이 도시를 빼앗긴다면 승리가 가까워졌다는 수단군의 주장도 산산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엘오베이드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언제든 남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엘오베이드는 앞으로도 수단 전쟁의 축소판으로 남을 것이다. 잔혹 행위가 곳곳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쪽도 물러서지 못한 채 소모전만 계속되는 교착 상태다.


코스티에서 차로 조금만 벗어나면 수단 전쟁의 또 다른 축소판을 마주하게 된다. 수단 각지에서 피란 온 약 2만 명이 나뭇가지와 담요를 엮어 만든 허름한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라자 압델가디르 알리는 약 두 달 전 엘오베이드에서 이 난민촌으로 왔다. 집 근처 학교에 폭탄이 떨어져 이웃 여러 명이 숨지자 피란길에 올랐다. 남편은 도시 방어를 돕기 위해 현지에 남았다. 난민촌의 환경은 처참하다. 알리의 네 살배기 딸은 일주일 전 숨졌다. 알리는 홍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난민들은 계속 밀려들고 있다.


양측의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은 대체로 외국의 지원에 좌우된다. 튀르키예와 이란이 제공한 드론은 수단군의 하르툼 탈환에 힘을 보탰다. 전쟁 초기 RSF를 지원했던 UAE는 현재도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인한다. 그러나 엘파시르 학살에 앞선 몇 달 동안 무기 수송이 대폭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단군의 최근 전과도 튀르키예의 무기 공급 급증과 관련이 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의 조너스 호너는 튀르키예의 무기 공급이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포트수단을 장악한 수단군은 항공과 해상 양쪽을 통해 보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양측이 외부 지원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외국이 분쟁을 진정시킬 수 있는 지렛대가 될도 법하다. 그러나 이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이집트-사우디-UAE가 구성한 협의체 '쿼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엘파시르에 대한 포위망이 조여오던 2025년 9월, 쿼드는 휴전과 함께 전후 체제에서 수단군과 RSF를 모두 배제하는 정치적 해법을 촉구했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두 목표 모두 요원하다.


가장 큰 이유는 쿼드 내부의 균열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당시 수단의 사실상 대통령과 부통령이던 알부르한 장군과 다갈로가 함께 권력을 장악했을 때만 해도 사우디와 UAE는 나란히 이들의 군사정권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2년 뒤 수단군과 RSF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자 두 걸프 국가는 각기 다른 편을 택했다.


UAE는 수단군이 이란과 지나치게 가깝고, 2019년까지 30년간 수단을 독재한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서 득세했던 이슬람주의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고 본다. UAE는 홍해 일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소말리아, 예멘, 리비아를 비롯한 역내 각지에 '대리세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RSF는 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핵심 거점 가운데 하나다.


반면 사우디와 이집트는 수단군이 하르툼의 권력을 내놓도록 강요받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집트와 수단군의 유대는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디 외교부 고위 당국자인 라예드 크림리는 "합법적인 국가를 대표하는 군과 정통성이 없는 RSF 민병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지난해 11월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이 RSF에 부과한 제재를 확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일은 마사드 불로스보다 경험이 많고 참모진도 탄탄한 협상가에게조차 버거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티퍼니 트럼프의 시아버지 마사드 불로스는 수단 평화협상을 맡은 트럼프의 특사다. 그가 협상을 이끄는 동안 미국의 태도는 오락가락했다. 미국은 올해 초 RSF 지도부 일부와 이들과 연계된 기업들을 제재했다. 이어 3월에는 수단군과 연계된 이슬람주의 세력을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미 국무부가 "수단 무슬림형제단"이라고 부르는 이 세력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지목됐다. 7월 20일에는 수단군이 2024년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보도를 근거로 수단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했다.

엇갈리는 신호

다른 나라 출신의 한 중재자는 "미국은 관심을 잃었고 이 문제까지 다룰 여력도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자신이 시작한 이란과의 전쟁도 아직 수단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의 보복이라는 공동의 위협이 두 걸프 국가(사우디와 UAE)의 화해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지금까지는 헛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유조선을 공격하면서 홍해의 영향력을 둘러싼 경쟁은 오히려 격화할 수 있다. 과거 수단에서 근무했던 미국 관리 케이트 알름퀴스트 노프는 "결국 중요한 것은 수단의 해안이며, 이란 전쟁으로 그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내전을 후원하는 걸프 국가들은 결국 수단의 안정이 서로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쿼드의 구상을 수정하려 하고 있다. 기존 구상은 수단군과 RSF가 특정 도시들에서 모두 철수해 인도주의적 안전지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사우디는 이를 RSF가 먼저 일부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방안으로 바꾸려 한다. 한편 수단군은 알부르한 장군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대통령 간 직접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아가르는 "우리는 UAE 측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수단군은 RSF를 패싱해 승리할 해법으로 UAE와의 협상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다갈로('헤메티')가 이끄는 RSF 병력은 외부 지원 없이도 전투를 계속할 능력과 의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가르에 따르면 UAE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협상 가능한지"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추진했지만 다섯 차례나 거절당했다. UAE가 수단군과 직접 협상에 나선다면, 수단군을 자신과 동등한 주권국가의 대표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RSF를 지원해왔다는 사실도 시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양측이 직접 협상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적대행위를 끝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불행히도 그런 협상이 각 진영 소속의 여러 연합세력들을 갈라놓을 가능성 역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수단군 진영에는 알바시르 정권 출신 이슬람주의자들과 과거 정부군에 맞서 싸웠던 다르푸르 반군이 함께 들어가 있다. 이들 사이의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엘파시르에서 수단군과 함께 싸운 옛 반군 연합체인 '합동군(Joint Forces)'도 이제는 "예전처럼 굳건한 동맹이 아니다"라고 다르푸르 토지위원장을 지낸 아담 압델라흐만 아흐메드는 말한다. 한편 RSF에는 약탈물을 노리고 가담한 용병들도 포함돼 있다. 더는 약탈할 것이 남지 않으면 RSF가 서로 다투는 여러 무장집단으로 분열될 수도 있다.


통상 여름 우기에는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만큼, 양측이 상황을 재검토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는 비가 늦어지고 있다. 형성 중인 엘니뇨가 강수량을 더욱 줄인다면 농작물이 말라 죽는 와중에 전투는 계속될 수 있다.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가르는 가장 두려운 것이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코스티 외곽의 비참한 난민촌에 사는 알리에게는 전쟁이 이미 일상이 됐다고 말할 만한 슬픈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