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렬 우파의 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기록 세우기를 좋아한다. 티치아노 화풍의 소박한 축제 그림 맞은편 안락의자에 앉은 멜로니 총리는, 곧 이탈리아 공화국 역사상 최장수 연임 총리가 되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 비결을 되짚어보았다.
"저는 스스로에게 규칙을 부과하는 사람이에요." 멜로니 총리는 좀처럼 하지 않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첫 번째 규칙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제가 믿지 않는 걸 말할 순 없어요. 제 뇌가 합선돼 터져버리거든요."
멜로니 총리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는 듯 미소 지었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포스트 파시즘에서 시작해 자신이 변화시키고 있는 유럽 정계의 중심부로 올라서기까지, 멜로니는 철저한 자기 통제 아래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 있다.
멜로니 총리는 로마 집무실 옆 라운지를 접견 장소로 택했다. 그는 지나칠 만큼 상냥했다. 그런 순간에는 멜로니 총리가 화가 나면 눈을 굴리고 매섭게 노려보곤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렵다. 최근에는 이념적 동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념적 적수인 좌파 성향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에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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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차이를 알아본다고 생각해요." 전후 이탈리아 총리 평균 임기의 약 네 배에 달하는 4년 가까이 재임 중인 멜로니가 말했다. "무엇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인지 국민들은 다 알아요. 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정치인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오늘날 제대로 통용되는 정치적 가치라 보긴 어렵지만 멜로니는 언제나 자신만의 방식대로 행동해 왔다. 그 결과는 이탈리아 정치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끔찍한 역사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멜로니화Melonization'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 용어는 멜로니가 구현해 낸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포스트 파시즘 정당인 자신의 '이탈리아 형제들Fratelli d'Italia'이 폭력적 권위주의의 위협적 이미지를 털어내고 실용적 보수주의, 혹은 최소한 그 겉모습을 통해 주류 정치권에 안착하도록 만든 과정이다.
"제가 이곳 집무실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불편한 쪽에 설 수 있는 용기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멜로니는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쪽을 택하는 용기 말이죠."
'용기'는 멜로니가 가장 아끼는 단어다.
한때 배척받던 프랑스 극우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내년 대선의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독일에서는 강경우익1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멜로니 효과는 전후 유럽 통합의 핵심부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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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을 아득한 과거의 일로, 심지어 정치적 성공 여부와는 무관한 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면, 독일의 홀로코스트나 프랑스의 전시 부역 비시 정권 역시 그렇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르펜의 아버지가 오늘날 '국민연합(RN)'으로 개명한 '국민전선(FN)'을 창당할 때 영감을 받은 것도 바로 비시 정권의 반유대주의적 민족주의였다.
르펜에겐 프랑스 유권자를 안심시키려 할 때 곧바로 내놓을 답변이 생겼다. 이탈리아를 보라!
"멜로니는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는 아니지만 세계적 스타이자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주류에 흡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 됐어요." 로마 루이스귀도칼리대 행정대학원장 조반니 오르시나Giovanni Orsina는 말했다.
선동가의 뜨거운 재능을 냉철한 현실주의로 뒷받침해 온 멜로니 치하에서 이탈리아는 혼란 대신 안정을 찾았다. 멜로니가 2022년 취임한 이래 프랑스는 내각이 6번 바뀌었고 영국은 총리가 4번 교체되었다.
내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퇴임하면, 파편화되는 세계 질서가 깊고 불안한 전환을 겪는 시기에 멜로니는 과거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그랬듯 유럽 정치의 좌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멜로니가 추구하는 전환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다. 49세가 된 멜로니 총리는 정말 민주적 온건파로 변했을까? 아니면 1996년 프랑스 방송에 출연해 "무솔리니는 훌륭한 정치인이었다"라며 "그가 한 모든 일은 이탈리아를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던 천사 같은 얼굴의 열성 당원, 그 19세 네오파시스트의 모습이 여전히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너무 먼 다리
멜로니 총리는 험한 물살 위의 다리가 되고자 했다. 유럽연합(EU) 정부 수반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받은 멜로니는 내셔널리즘과 반이민이라는 공통분모를 토대로 서방 동맹이 온전히 작동하도록 유지하려 했다.
그렇기에 지난해 트럼프가 기름진 아첨 섞인 어조로 자신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라고 불렀을 때도 멜로니는 태연한 척 넘겼다. 더 큰 사안들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관에서는 도발이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는 유럽연합이 미국을 "등쳐먹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에 넘겨야 한다고도 했다. 나토(NATO)의 유럽 동맹국들을 겁쟁이라 부르며 이탈리아 군인 53명이 목숨을 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 국가들이 참전을 "조금 꺼렸다"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를 흘린 이탈리아를 모욕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무례였습니다." 이탈리아 하원 부의장이자 멜로니의 오랜 심복인 파비오 람펠리Fabio Rampelli가 말했다.
멜로니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민과 워우크woke 문화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와는 일이 더 쉬울 거라고 믿었던 게 사실이에요." 멜로니는 말했다. "상황은 딴판으로 흘러갔지만요."
"딴판"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6월, 멜로니는 모욕을 당한 여러 유럽 정상들 가운데 처음으로 트럼프에게 강하게 반격을 가했다. 그 여파로 자신과 트럼프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다고 멜로니는 털어놓았다.
멜로니 총리에게 처음 선을 넘은 일은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레오 교황을 범죄에 "나약하고 외교정책에는 끔찍하다"고 공격한 것이었다. 멜로니는 그런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트럼프는 즉각 멜로니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관료주의를 비판해도 되고 스파게티 카르보나라나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으나 이젠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국가대표 축구팀을 비판해도 된다. 하지만 교황을 비판하는 것은 금물이며, 그것도 대문자로 비난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상황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멜로니 총리가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자신에게 "애걸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멜로니 총리는 격노했다. 멜로니는 트럼프를 맹비난했다. "이탈리아와 저는 결코 구걸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자신을 의도적으로 결합한 표현에는 이탈리아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사명감이 담겼다. 아름답지만 비효율적인 나라에서 진지한 의지를 지닌 나라로 바꾸려는 것이다.
트럼프와 공유하던 가치관은 멜로니의 최대 외교정책 목표 앞에서 빛이 바랬다. 바로 강대국 중 최약체라는 이탈리아의 오랜 위상을 극복하고 세계 8위 경제 대국에 걸맞은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굴종적인 이탈리아, 스스로를 다른 나라보다 열등하게 여기는 이탈리아라는 생각이 싫어요." 멜로니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목표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혁명, 자긍심의 혁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저는 서방의 단결이 매우 중요하다고 줄곧 믿습니다. 개인적 친분을 근거로 이탈리아의 전략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여름 휴가 뒤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겠느냐는 질문에 멜로니 총리는 망설였다. "글쎄요, 두고 봐야죠."

대의를 찾아서
멜로니 총리는 일찍이 수동적인 태도를 피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품고 자랐다." 멜로니는 자서전 '나는 조르자Io sono Giorgia'에서 이렇게 썼다. "그 생각에 대한 나의 대응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하는 것이었다."
멜로니는 아기 때 스페인으로 떠난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책에서 표현한 대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고통"을 "블랙홀"에 묻었으며 2012년 아버지의 죽음에도 "무덤덤"했다.
그는 강해졌다. 열세 살 때 아버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23년 연인이자 딸 지네브라의 아버지인 안드레아 잠브루노와 결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브루노가 여성 동료들에게 노골적인 추근거림을 하는 듯한 음성과 영상이 공개된 바 있다. 멜로니는 다음 날 아침 소셜미디어에 자신들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라고 적었다.)
조시 벨Josie Bell이라는 필명으로 140여 편의 선정적인 로맨스 소설을 쓴 어머니 안나 파라토레의 사랑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멜로니는 로마의 가르바텔라 지구에서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자랐다. 노동 계급 지역이지만 멜로니 가족이 살던 곳처럼 중산층 거주 구역도 섞여 있는 동네였다.
멜로니가 유년기를 보낸 2층 아파트는 오렌지나무, 소나무, 비파나무, 야자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당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창문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내걸려 있는데 로마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근처 벽에는 이렇게 휘갈겨 쓰여 있다.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라. 멜로니는 물러나라!"
가르바텔라는 전통적으로 늘 좌파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불과 열다섯 살이던 멜로니는 파시즘에 뿌리를 둔 우파를 선택했다.
그 결정은 분노에서 비롯됐다고 멜로니 총리는 설명했다. 1992년 마피아가 자신들을 위협하던 시칠리아 검사 조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를 두 달 사이에 잇따라 암살한 사건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무더운 7월 어느 날 TV로 그 장면을 보면서 이대로는 계속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멜로니 총리는 말했다. "이제 그만!"
보르셀리노 검사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 출신 인사들이 1946년 창당한 극우 이탈리아사회운동(MSI)과 한때 가까운 사이였다. 이 군소정당은 1990년대 초 이탈리아를 휩쓴 대규모 정경유착 부패 스캔들에서 비켜서 있었고, 그 점이 매력을 더했다고 멜로니는 설명했다.
멜로니는 MSI 당사로 전화를 걸었고 당 청년전선 지부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멜로니는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시 포스트파시즘 우파가 집권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20년 뒤 멜로니가 이탈리아형제들을 공동 창당했을 때조차 당 지지율은 7년 동안 3%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멜로니는 끈질기게 버텼다.
"남들이 제 한계를 정해주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멜로니는 말했다. "'안 된다'는 말이야말로 저를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죠."

'복잡했던' 시절
당시 가르바텔라 사무실에는 현재 멜로니 정당의 지부가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책임자인 마르코 볼포니를 만났다.
볼포니는 10대 시절부터 멜로니 총리를 알았다. 나는 바깥에 있는 당 로고에 관해 물었다. 이탈리아 국기의 녹색·흰색·빨간색 삼색 불꽃은 MSI가 처음 채택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오르는 파시즘 정신을 상징한다고 널리 여겨진다.
"무솔리니의 불꽃이 아니에요." 볼포니는 당의 공식 입장을 되풀이했다. "1946년부터 오늘날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이어져 온 우리의 열정의 불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거리가 먼 세대에 속한 멜로니는 "모든 전체주의 및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한다"라고 천명하며 파시즘을 규탄하면서도 완전히 결별하지는 않았다.
취임 연설에서는 무솔리니가 1938년 반유대주의 인종법을 공포했을 때가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나치 점령하에서 결국 수천 명의 이탈리아 유대인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멜로니는 파시스트 시기를 단지 "유난히 복잡했던" 시절로 일컬었다. 그 여파가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괴롭혔을 만큼 복잡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납의 시대'에 네오파시스트와 극좌 단체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전후 공화국을 뒤엎으려 했다. 폭탄 테러와 암살, 학살로 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1978년에는 좌익 '붉은 여단'에 의해 알도 모로 전 총리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멜로니가 자란 환경은 이러한 불안정 속이었고, 이는 형태를 조금씩 바꾸며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오랫동안 이탈리아를 짓눌렀다. 멜로니는 안정을 자신의 표어로 삼았다.
포스트파시즘 정당을 주류로 이끈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반파시스트라고 말하기를 거부해 왔다. 멜로니 총리에게 반파시스트란 "파시스트를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어린 시절의 좌파 단체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멜로니는 "반파시즘의 제단에 희생된 모든 청년의 이름과 사연을 알고 있다"고 쓴 바 있다.
네오파시스트의 테러에 관해서는 멜로니 총리가 할 말이 훨씬 적다. 밀라노와 볼로냐에서만 우익 세력의 두 차례 폭탄 테러로 102명이 숨졌다. 멜로니 총리에게 이탈리아의 전후 혼란은 좌파의 책임이었고 자신의 당이 뿌리를 내린 "복잡한" 시기는 제쳐두는 편이 최선이었다.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해 멜로니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 역사를 바라본다면 분명 하나의 관점이 존재하겠죠. 하지만 그 시대 한가운데 서서 바라보았다면 아마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요?"
역사가 RJB 보즈워스는 전기 '무솔리니'에서 그의 독재가 "최소 100만 명의 때 이른 죽음을 초래했다"고 썼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에 이르는 학살터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무솔리니는 폰티네 습지를 매립했고, 밀라노 중앙역을 건설했으며, 기차가 정시에 운행되도록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무솔리니 통치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충분히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학자 다비데 콘티Davide Conti는 "이탈리아는 파시즘과의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한 적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것은 없었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처벌하려면 대부분 공산주의자였던 레지스탕스 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멜로니는 이러한 머뭇거림 속에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이탈리아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한 헌신과 자유가 상실되었던 시기에 대한 묘한 양가적 감정 사이의 좁은 길을 헤쳐 나갔다.
극우 세력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멜로니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네 번의 내각을 이끌며 총 9년간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였다. 그러나 그 문을 통과하기에 이상적인 정치인은 멜로니였다.
가르바텔라 사무실에 발을 들인 지 불과 14년 만에 의회에 입성한 멜로니는 공화국 역사상 최연소 하원 부의장이 되었다. 2년 뒤인 2008년에는 31세에 최연소 장관이 되며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정부 최장수라는 세 번째 기록은 9월 4일 멜로니 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멜로니가 가입할 당시 MSI 로마 청년부를 이끌었던 람펠리는 극우 세력이 늘 "위험하고, 향수에 젖어 있으며, 파시스트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외국인 혐오적"인 집단으로 비쳤다고 말했다.
"그런데 키 160cm에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미소를 띠면서도 냉소적인, 파시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주 젊은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를 계속 모욕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죠." 람펠리가 말했다.
"어쩌면 제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는지도 몰라요." 멜로니는 말했다.

멜로니와 역사의 흐름
멜로니의 부상을 이해하기 위해 토스카나 해안에 위치한 도시 피옴비노를 찾았다. 한때 번영을 누렸으나 지금은 거리가 한산해진 철강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이곳 철강 산업은 8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노동자는 500명도 되지 않는다.
한때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의 중심지였던 피옴비노는 오랫동안 좌파와 강성 노조의 아성이었다. 오늘날 이곳은 멜로니 정당의 차지가 되었다.
프란체스코 페라리가 시장이다. 세련된 변호사 출신인 페라리 시장은 2019년전후 최초의 우파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2년 전 재선에 성공했다. 좌파는 공허한 약속과 부실한 행정으로 피옴비노 노동자들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이들은 21세기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노동자 계층의 대규모 좌파 이탈과 우파 이동에 합류했다. 세계화와 그로 인한 일자리 손실, 통제되지 않는 이민, 리버럴 도시 엘리트의 이질적인 가치관에 분노한 계층이다.
유령 도시처럼 휑하게 펼쳐진 공장 출구 표지판에는 악수하는 그림과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25년간 용광로에서 일하다 2024년 일자리를 잃은 미켈레 나르디니가 말했다. "저들은 우리를 엿 먹였어요."
나르디니는 현재 매달 실업급여 1250달러(170만 원)를 받는다. "정치 계급 전체가 저를 배신했어요." 나르디니는 중앙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70년 동안 좌파 아래 있었으니 이제 우파에 70년을 줄 겁니다!"
페라리 시장은 철강산업을 되살리고 엘바섬 맞은편 해안 입지에 알맞은 양식업과 관광업 등으로 도시 산업을 다각화하려 하고 있다.
"저는 파시스트라는 단어든, 심지어 반파시스트라는 단어든 입에 올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요." 페라리가 말했다. 하지만 피옴비노 주민들의 선택이야말로 자신의 당이 과거 선대 세력과 완전히 결별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페라리 시장은 역설했다.
7월 우크라이나 기업과 이탈리아 철강회사, 지방 당국이 37억 달러(5조 원)를 투자해 최첨단 공장을 짓는 합의가 체결됐다. 그러나 피옴비노는 너무 많은 공약의 남발을 겪어온 탓에 낙관론이 크게 번지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좌파 노조 '이탈리아총노동조합'(CGIL)의 고위 간부 출신 미르코 라미는 멜로니가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임금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보건의료 체계는 파탄 직전"이라는 것이다.
페라리 시장의 견해는 다르다. 도시 재생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며 당 대표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2020년이었고 멜로니 총리가 방문했어요." 페라리 시장은 회고했다. 페라리 시장에 따르면 취임 직전 중도좌파 민주당은 쓰레기가 악취를 내며 썩는 인근의 거대한 매립지를 확장하는 사업을 승인했다. "방문 며칠 전부터 총리는 매립지 관련 서류와 확장 사업 세부 계획, 쓰레기의 종류, 그리고 제 입장을 요구했어요. 그리고 회의를 시작했을 때 서류의 내용을 저보다 더 잘 꿰뚫고 있었죠!"
해당 사업은 백지화되었다. 페라리 시장은 환하게 웃었다. "그게 바로 조르자 멜로니예요."
폐쇄적인 측근 그룹
멜로니 총리가 취임했을 때 이탈리아의 중도좌파 총리를 지낸 마테오 렌치는 스마트 반지를 선물하기로 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최악의 결정은 수면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조언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말했어요. '조르자, 이 자리는 아름답지만 고통스럽습니다. 부디 매일 밤 얼마나 자는지 수면량을 체크하세요.'"
멜로니 총리는 얼마 후 측정기를 내던졌다. "내가 자신을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렌치가 말했다.
"멜로니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1995년 MSI를 민주적 정당으로 재정립하고 멜로니의 초고속 승진을 이끌었던 잔프랑코 피니 전 대표가 말했다. "오직 자신만의 셈법으로 움직이죠."
멜로니는 친언니 아리안나Arianna와 젊은 시절 알게 된 몇몇 극우 활동가로 구성된 소수의 폐쇄적 측근 그룹과 함께 일한다. 이들은 상원과 문화기관 등에서 요직을 차지한다.
이러한 폐쇄적 스타일에 좌파 진영은 격분했다. 중도좌파 소수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talia Viva'를 이끄는 렌치는 최근 "아담스 패밀리2"가 이탈리아를 통치하고 있다고 꼬집어 소동을 일으켰다. 렌치는 내년 선거에서 멜로니 총리를 꺾기 위해 좌파를 결집하려 한다.
좌파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대표 엘리 슐라인은 0.5%에 불과한 초라한 경제성장률, 8%의 실질임금 삭감, 유럽 최고 수준의 에너지 요금, 마비 상태에 이른 공공병원을 들며 이를 "역사적 기회 낭비"의 증거로 꼽았다.
"안정이 가치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체로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슐라인이 멜로니를 겨냥해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인터뷰에서 반격에 나섰다. 고용, 물가상승률, 불법 이민자 입국 수, 보건 지출, 시장 금리 스프레드 등 긴 "지표" 목록을 줄줄이 읊었다. "이 지표들이 나아지지 않았는지 한번 말해보세요!"
때로는 미미한 수준일지라도 수치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뭐, 제가 아무것도 안 했을 수도 있죠!" 멜로니는 특유의 빈정거림을 섞어 말했다.
"기껏해야 재앙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로마 루이스귀도칼리대학교의 베로니카 데 로마니스Veronica De Romanis 경제학 교수는 120만 명의 이탈리아 청년이 취업도 교육도 훈련도 받지 않는 상태이며 많은 이들이 조국을 떠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말했다.
멜로니 총리가 가져온 것은 재정 규율이다. 신망이 두터운 잔카를로 조르제티Giancarlo Giorgetti 재무장관 지휘 아래 재정적자 비율은 7%에서 유럽연합 기준인 3% 한도에 가깝게 낮아졌다.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도 23년 만에 처음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2014년 "우리는 유로존 탈퇴를 지지한다"라고 공언했던 멜로니로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뚜렷한 태도 전환을 보여준 셈이다.
경제에 엄청난 부양 효과를 가져다준 약 2210억 달러(316조 원) 규모의 팬데믹 회복기금을 비롯해 유럽연합의 자금이 이탈리아에 절실함을 멜로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경멸하던 부류인 모범적인 EU 전문관료처럼 이탈리아 재정적자 문제에서 대열에 맞췄다. 또한 유럽의 모범적 나토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지했다.
"거의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멜로니를 잘 아는 일간지 일 폴리오Il Foglio의 살바토레 메를로Salvatore Merlo 부편집장이 말했다.
'나는 조르자입니다'
멜로니의 아버지는 딸에게 해준 것이 거의 없었지만 스페인에 살면서 딸이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기회는 제공했다. 그는 2021년 10월 7일 마드리드에서 17분간 연설하며 자신의 찬가가 된 말을 다시 한번 외쳤다.
"나는 조르자입니다! 나는 여성입니다!Yo soy Giorgia! Soy una mujer!"라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조르자이고 여자이며 어머니이고 이탈리아인이며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내게서 이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결코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멜로니의 혐오 대상들이었다. 멜로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BLM(Black Lives Matter)운동의 야만인들", "유럽을 소련식 국가로 바꾸려는" 좌파, "우리를 파산시키는" 녹색당, 그리고 대리모 활용을 제안하는 "괴물들"이었다.
나는 멜로니 총리에게 그 절박한 외침이 왜 공감을 얻었는지 물었다. "수백만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에요." 멜로니는 말했다.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정체성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죠. 정서적 반란에 쉬운 구호를 제공해 준 셈이에요."
멜로니는 여성이라는 게 그 '근본적인 정체성'의 일부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멜로니는 확답을 피했다. 멜로니는 능청스러운 자기비하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편이다.
최근 란제리 차림의 인공지능(AI) 딥페이크 합성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자 멜로니는 이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직접 올렸다. 사진을 비판하면서도 "내 외모를 훨씬 돋보이게 만들어줬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멜로니는 자신의 직함을 남성형인 '일 프레시덴테il presidente'로 택해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할당제 같은 사안을 두고 "잘못된 싸움"을 벌여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 관심사는 제게 각료회의의 의장il presidente이 될 자유가 있느냐는 것뿐이에요."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내각과 총리의 공식 명칭을 사용해 말했다. "그게 바로 평등이지 여성형인 '라 프레시덴타la presidenta'로 불리는 게 평등이 아닙니다."
멜로니 총리는 자신의 나라가 세계의 존중을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강인하고 실용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가 "프랑스와 독일의 스페어타이어" 노릇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탈리아는 "방향을 결정하는 이들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도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서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의 자아상을 재편하려는 멜로니 총리의 노력은 작은 디테일에서도 드러난다. 이탈리아를 언급할 때 '공화국republic'이나 '국가country'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고 언제나 '민족n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전임자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이러한 변화는 혈통과 문화의 공동체로서 새로운 국가적 자긍심을 누릴 온전한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다.
물론 공화국은 평등한 국민의 터전이지만 멜로니 총리가 이해하는 '민족'은 유구한 이탈리아 혈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민 문제는 핵심적이면서도 첨예한 갈등을 낳는 쟁점이었다.
8월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로 수천 명의 이주민이 밀려들자, 멜로니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안이한 이민 정책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세를 주도했다.
이 충돌은 유럽을 우경화하는 멜로니의 영향력뿐 아니라,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격앙된 감정을 능숙하게 조성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국내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이민정책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멜로니 총리는 이주민들이 이탈리아의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고 유럽에서 가장 고령인 인구를 돌볼 수 있도록 약 45만 건의 비자를 조용히 승인했다. 또한 고국을 떠나지 않고도 자국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 투자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망명 신청자들을 알바니아로 보내는 계획은 여전히 법적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성과는 보잘것없는 데 비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계획은 실패작처럼 보였으나, 6월 유럽연합이 망명 신청자를 "안전한 제3국"에 수용하는 "송환 허브" 구축을 승인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에 멜로니 총리는 유럽 이민정책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끈질기게 남는 의문
이탈리아인들은 로마 제국의 유적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자신들의 전성기가 까마득한 옛날에 지나갔음을 알고 있으며 거대한 야망의 덧없음도 잘 알고 있다. 1948년 제정된 이탈리아 헌법은 "이탈리아는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 교훈을 일깨우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콜로세움 뒤편의 콜레 오피오Colle Oppio다. 트라야누스 황제 목욕탕 유적이 있는 곳으로 멜로니와 극우 동료들이 모이곤 했다. 10대 시절의 멜로니에게 이곳은 거의 신화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콜레 오피오에서 제 생각을 지키는 법을 배웠죠." 멜로니 총리는 말했다. "젊은 시절 열성적으로 투쟁했던 세월 덕분에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 국방장관이자 멜로니와 함께 '이탈리아 형제들'을 공동 창당한 귀도 크로세토Guido Crosetto는 국방부 집무실 인터뷰에서 멜로니가 "자신이 일군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라고 말했다.
크로세토 장관 주변에는 무솔리니를 포함해 역대 이탈리아 국방장관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독일에서 몇 년간 일했던 나는 베를린에서 비슷한 장면이 어떨지 상상해 봤다. 히틀러 초상화가 버젓이 걸려 있는 모습! 상상할 수 없었다.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에게 파시즘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사뭇 다르다.
5월 22일 멜로니 총리가 조르조 알미란테Giorgio Almirante를 추모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이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알미란테는 무솔리니 치하의 열렬한 파시스트이자 1946년 멜로니 정당의 전신인 네오파시스트 MSI를 창당한 인물이다. 알미란테 사망 38주기를 맞아 멜로니는 그가 "열정과 품격, 존중으로" 실천했던 정치적 구상이 계속 살아 숨 쉴 것이며 "용기 있게" 행동하려는 이탈리아 우파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알미란테는 무솔리니 치하에서 발행된 인종차별·반유대주의 잡지 '인종의 수호The Defense of the Race'의 주요 필자였다. 그는 잡지에 "우리의 인종주의는 혈관 속 피의 인종주의여야 한다"라고 썼다. 그렇지 않으면 이탈리아가 "혼혈인과 유대인"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미란테는 말년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알미란테는 가치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어요." 멜로니 총리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처음에는 아주 변방에 있더라도 존엄을 지키며 자신의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멜로니는 파시스트적인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전혀 없어요." 서브스택 뉴스레터 '아푼티Appunti'를 편집하는 스테파노 펠트리Stefano Feltri는 말했다. "그러나 멜로니는 우리 헌법을 탄생시킨 레지스탕스 문화, 반파시스트 이탈리아에 속하진 않습니다."
멜로니 총리는 올해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려 했다. 우파 지도자들이 진보 세력이라며 오랫동안 반감을 품어온 이탈리아 판사들을 더 강한 정치적 통제 아래 두려는 개헌이었다.
국내 입법 과제 중 가장 야심 차게 추진했던 이 개헌안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모든 이탈리아 국민이 멜로니에게 권력을 온전히 맡기지는 않는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승리했다면 나중에는 더 강력한 행정부와 더 대통령제에 가까운 체제를 향해 훨씬 강도 높은 개헌을 했을 겁니다." 역사학자 콘티는 말했다. "그것이 멜로니의 근본적인 목표예요."
그러나 멜로니 총리의 지지율이 무너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은 약 27%로 2022년 선거 득표율보다 조금 높다. 현재로서는 분열된 좌파 진영에 멜로니에 필적할 만한 지도자가 없어, 내년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할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멜로니 총리의 오른편에서는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다. 신당 '국가의 미래'를 빠르게 성장시킨 퇴역 장성 로베르토 반나치(Roberto Vannacci)다. "다른 수많은 역사적 시기가 그랬듯 나치즘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일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반나치가 말했다.
반나치는 이탈리아의 "문화적 동질성"을 요구하고 동성애자는 "정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며 합법 체류 자격이 없는 이민자 50만 명의 "재이주"(본국 추방)를 촉구했다.
"멜로니의 근본적인 실수는 스스로의 색깔을 희석해버렸다는 점입니다." 반나치가 말했다.
우파의 귀환?
멜로니가 총리로서 이룬 성과에는 절제된 온건함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거 행보와 민족주의적 본령을 볼 때 내년에 멜로니가 재선되고 프랑스에서 마린 르펜이 집권할 경우, 유럽의 운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언젠가 AfD가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세 세대가 지나면 기억은 흐려집니다." 토마스 바거Thomas Bagger 주이탈리아 독일 대사가 말했다. "심지어 홀로코스트조차 예전만큼 경각심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유럽 통합의 당위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그대로 부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국경에서의 전쟁은 유럽연합에 심각한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유럽연합의 약화나 해체를 꾀하고 있다.
"좋게 보아도 멜로니가 원하는 것은 개입을 최소화하는 느슨한 유럽입니다."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연구원(SAIS) 유럽 분원의 나탈리 토치Nathalie Tocci 교수가 말했다.
권력의 무게중심은 이미 바뀌었다. 올여름 나는 코트다쥐르의 호화 저택에서 열린 2020년 이후 첫 프랑스·이탈리아 정상회담에서 멜로니 총리가 때때로 자신을 비판했던 마크롱 대통령 옆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가 프랑스인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조언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멜로니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당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멜로니 총리가 2022년 10월 당선됐을 때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인권과 자유"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탈리아의 공분을 샀다.
이 자리에서 멜로니 총리는 날 선 목소리로 (자신이 생각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주제넘은 태도를 상기시켰다. 그 이후 멜로니의 이탈리아는 마크롱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멜로니 총리는 확고히 자리 잡은 지도자의 권위를 지니고 움직인다. 이탈리아 최대 경제단체인 이탈리아산업총연맹Confindustria의 최근 연례 총회에서, 멜로니는 모여든 재계 총수들에게 "불확실성의 시대는 곧 용기의 시대이며, 용기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시대"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멜로니 총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9세에 한국어를 배우는 딸 지네브라Ginevra에게 한 조언은 알고 있다. "먼 길로 가렴. 지름길은 언제나 환상이니까."
나는 멜로니 총리에게 가장 긴 정치 여정 끝에 곧 세울 이정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제게 '조르자, 당신이 역사를 썼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라고 말하지만 제가 떠올리는 것은 제가 죽은 뒤 어느 날 '맙소사Mamma mia, 오늘 오후는 조르자 멜로니공부하는 시간이야!'라고 말할 아이들의 모습뿐이에요."
역사의 주인공은 웃음을 터뜨렸다.




뉴욕타임스(NYT)의 8월 21일자 기사는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를 조명합니다. 멜로니는 한때 파시즘을 승계한 "극우"의 초강경 정치가로 경계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극우" 정치가와 안 어울리는 상냥한 표정의 젊은 여성 느낌으로 전 세계 대중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유럽의 병자와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정치는 혼란하고 재정적자는 심각했습니다. 멜로니는 혼란과 재정적자를 정면 공격하기 위해서인지 안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재정을 안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멜로니가 무엇보다 목표로 했던 것은 이탈리아의 자존심 회복인 것 같습니다. 파시즘의 나라로 2차세계대전 전범국이 되어버린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것이 멜로니의 정치적 목표이고, 이것이 이탈리아 내에서 어느 정도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시즘의 나라 이탈리아가 과연 민주주의 유럽의 중심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강경 우익' 내지 '극우'의 부활만을 기록하고 멜로니의 도전이 끝나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일본의 다카이치와 이탈리아의 멜로니가 어쩌면 비슷한 역사적 과업을 맡고 있는 듯 한데, 두 사람이 어떤 선택들을 해나갈지 비교해가며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