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뒷이야기

출판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 정치와 편향으로 자주 얼룩졌던 이 숭고한 이상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2026년 10월 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이 캐나다 작가로는 역대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사진=신화/뉴시스

PADO가 작년 조희정 교수(중앙대)의 해설과 함께 실었던 시의 저자인 앤 카슨(Ann Carson)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10월 1일에 발행한 이 기사는 노벨문학상의 역사 등 이 상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기사입니다.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이 상의 수상을 거부한 일이나 이 상의 수상에 대해 2주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미국의 가수 겸 작사작곡자 밥 딜런의 이야기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가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서양 언어로 'literature'라는 것은 우리의 '문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대학의 영문학과 학생들이 교과서로 사용하는 'English Literature'의 'Anthology'는 시와 소설과 함께 토마스 홉스나 존 로크의 철학책도 일부 싣고 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도 노벨문학상을 시와 소설에 대해서만 주진 않았습니다. '창조적 진화' 같은 당대 베스트셀러 철학책을 썼던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크손(베르그송)이나 '2차세계대전 회고록'을 썼던 윈스턴 처칠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만, 우리에게 좋은 작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작품이 영어로 더욱 널리 소개되어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노벨문학상도 계속해서 수상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작가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열정은 넘쳤으나 평범한 문재를 지닌 작가였다. 다이너마이트로 거부가 된 이 스웨덴인은 출간되지 않은 시들과 40분짜리 고문 장면이 등장하는 희곡을 썼다. 재산을 물려받고 싶어 하던 친척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노벨이 1895년 손으로 쓴 유언장에 따라 문학상을 비롯한 다섯 가지 상을 위한 기금이 마련됐다. 노벨은 "스톡홀름의 한림원"에 "이상적idealisk 방향의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에게 문학상을 수여하라고 지시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상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수십 년 동안 고심한 끝에 조용히 그 기준을 폐기했다.


10월 8일 목요일 스톡홀름의 금빛 홀에서 문이 열리면, 정장을 갖춰 입은 한림원 상임사무총장이 앞으로 나와 스웨덴어와 영어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흡인력 있고 비전 있는 전 작품"을 인정받은 헝가리의 모더니즘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ászló Krasznahorkai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현재 예측시장에서는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 중국의 전위적 작가 찬쉐残雪, 미국 소설가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을 상금 1200만 스웨덴 크로나(16억 원)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꼽는다. 다만 미투 운동 관련 추문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겪은 오늘날 한림원은 그 이전보다 정보가 덜 새어 나와, 실제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전문가들의 예측은 대개 빗나가기 일쑤다.


노벨문학상은 으레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나이지리아 시인 친웨이주 이베퀘Chinweizu Ibekwe는 한때 "스웨덴인 몇 명이 모여… 온 세상의 지적 탁월함을 판정하겠다는 오만"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작가 팀 파크스Tim Parks는 "스웨덴 교수들"이 인도네시아 시인과 카메룬 소설가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두 작가 모두 원문이 아닌 번역으로 읽었을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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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파리 아메리칸대학교 비교문학 교수 대니얼 메딘Daniel Medin은 말한다. "세계 소설 문학에서는 노벨상이 단연 가장 큰 상이에요. 다른 비교 대상이 없죠." 그는 노벨상의 뚜렷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꼽는다. "세계적인 작가의, 전 생애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며, 한 세기가 넘는 전통을 자랑하고요." 세계가 반발할 수는 있어도 노벨상은 세계 문학의 정전을 형성한다. 이 상의 역사는 문학적 취향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상의 무게와 심사위원들의 편협함 사이에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괴리가 있었다. '18인회'로 불리는 한림원의 종신회원 18명은 스웨덴의 작가, 문학사가, 언어학자들과 1명의 법률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스웨덴 내부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금세기 전까지는 여성 회원이 거의 없었다.


노벨상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조부를 둔 미카엘 솔만Michael Sohlman 전 노벨재단 상임이사는 상의 주변부에 있는 일부 인물들이 상의 중요성을 자신의 중요성과 혼동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위험인 '노벨병Nobelitis'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솔만은 스톡홀름이 세계 문학을 평가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작은 도시지만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다. 스톡홀름의 상류층은 전통적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독서를 해왔으며 자국 문학이 세계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림원은 스웨덴에 무려 8개의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 각각이 받은 것보다 많은 수치다.


1901년 제1회 시상식은 국제적인 화제를 모았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작가 레프 톨스토이를 추천하지 않은 반면,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17명이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을 추천했고 프뤼돔이 수상했다. 초창기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국가 간 경쟁으로 여겨졌다고 솔만은 말한다.


그러나 그는 "생산적인 스캔들"이 노벨문학상을 위대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여긴다. 문학상이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평화상만큼 논란을 일으킨 적은 없다. 하지만 문학의 위대함은 과학에서보다 주관적이어서 한림원의 선택은 어김없이 비평가들의 분노를 산다. 비평가들은 한림원이 간과한 위대한 작가들의 명단을 작성하며 쾌감을 느낀다.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Constantine Cavafy 등이 그 예다. 비록 이들 중 일부는 사후에야 명성을 얻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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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처음 생겼을 때 한림원 종신 사무총장이었던 카를 다비드 아프 비르센Carl David af Wirsén은 "대륙(유럽) 문학의 위대한 남성들"에게 영예를 안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성과 비유럽인은 보편적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1913년에 벵골 출신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수상하기는 했으나 이는 산문시집 '기탄잘리'의 영어 번역본 덕분이었다.


1923년 수상자인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노벨상 수상 경험을 담은 '스웨덴의 선물'을 썼는데 많은 수상자가 겪는 당혹감이 담겨 있다. 아이리시타임스가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하자 예이츠 부부는 소시지를 요리하며 자축한다. 스웨덴 국왕이 참석하는 시상식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길에, 예이츠는 기차 창밖에서 안을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의아해했으나,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주고서야 이해했다. 55년 후, 이디시어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도 정확히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마이애미비치의 단골 잡화점에서 달걀과 베이글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귀가했을 때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곧 '신생' 국가 문학 전체를 공인하는 권위를 획득했다. 1930년에는 당시 낯설게 여겨지던 미국이 그 수혜국이었다.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가 미국인 최초로 수상한 것이다. 1938년 미국의 수상자인 펄 벅Pearl Buck은 노벨상 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만 기억된다. 그는 중국 농민의 삶을 그려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대지The Good Earth'를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벅은 처음 후보로 추천된 해에 수상했으며, 이 실수는 처음 추천된 후보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낳았다.


한림원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돋보일 만한 선택을 내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주 실패한다. 독일의 루돌프 오이켄Rudolf Eucken(1908년)과 파울 폰 하이제Paul von Heyse(1910년) 등 많은 수상자가 벅과 함께 잊혔다. 그러나 메딘 교수는 한림원을 탓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작가가 잊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한림원 회원 셸 에스프마르크Kjell Espmark는 노벨상 역사를 여러 뚜렷한 시기로 구분하는 영향력 있는 분류 체계를 세웠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한림원은 문학적 선구자들을 수상자로 선정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TS 엘리엇, 그리고 그때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윌리엄 포크너가 그 주인공이었다. (포크너는 시상식이 "미시시피의 장례식만큼이나 길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상을 받지 못한 선구자 중 한 명은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였다. 한림원 회원이자 훗날 유엔(UN) 사무총장이 된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는 파운드가 이탈리아 파시스트 라디오 방송에서 홀로코스트를 찬양한 것은 "인간 이하의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허용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까다로운 일이다. 파시즘을 지지한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는 1934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이 가장 정치화된 시기는 냉전기였다. 한림원은 소련 당국의 신임을 얻지 못한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1958년)와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70년), 이오시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1987년)를 선정했다. 파스테르나크는 처음에는 러시아에서 흔히 '노벨레프카'라고 부르는 이 상을 수락했지만 이후 정권의 압박을 받아 "내게 수여된 이 과분한 상"을 거부했다.


1964년 노벨상을 거부한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이 상이 "서방의 작가나 동방의 반체제 인사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을 꼽았다. (사르트르는 또한 "엄청난 액수의" 상금에 "고통"을 느꼈으며 이를 "매우 무거운 짐"으로 여겼다.)


한림원이 솔제니친을 수상자로 선정하기 전, 모스크바 주재 스웨덴 대사는 이 결정이 "우리의 소련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림원은 이렇게 답했다.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만 솔제니친이 가장 수상 자격이 있는 후보라는 데 우리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세계적으로 독서가 쇠퇴하면서 노벨문학상이 다시 그만큼 정치적인 상이 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렸지만 오늘날 독재 정권들은 틱톡 인플루언서를 더 걱정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림원은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시인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등 덜 알려진 재능 있는 문인들에게 관심을 모으는 데 이 상을 활용했다. 메딘 교수는 말한다. "심사위원을 해봐서 알아요. 문학사의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언제나 즐거움을 느끼죠."


1980년대에 이르러 한림원은 서방 문학계의 주류 대부분보다 먼저 서방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는 선정 절차를 더욱 전문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 절차는 수상 후보를 제안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추천인"에게서 시작된다. 문학 기관과 학술원 회원, 문학 교수, 역대 수상자들이다. 어떤 추천서는 "사르트르", "말로Malraux"처럼 이름 하나만 적혀 있다. 그런가 하면 특정 작가를 유력 후보로 밀어 올리는 설득력 있는 에세이도 있다. 결국 수상하지 못한 필립 로스Philip Roth나 1999년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같은 특정 작가들은 해마다 후보로 거론되는 반영구적인 후보군이 된다.


2021년부터는 위촉된 외부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작성한다. 자기 자신을 추천할 수는 없지만, 작가들이 예테보리나 스톡홀름에서 강연을 연 뒤 술자리에서 한림원 회원들의 환심을 사며 로비를 벌이는 오랜 관행은 존재한다.


한림원 회원 네다섯 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추천받은 작가들을 최종 후보 다섯 명으로 추리면 18인은 여름 동안 이들의 작품을 읽는다. 수상자는 10월 초에 결정한다.


그런데 이제 전 세계의 문학을 검토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행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후보 중 상당수가 영어로 작품을 쓴다.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부터 2021년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까지 수상자 31명 중 13명의 창작 언어가 영어였다.


일부 한림원 회원은 작품의 수준을 입증하는 두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다른 주요 문학상의 수상 경력과 작품이 널리 번역됐는지 여부다. "보편적인" 작가란 자신의 언어를 초월하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고 메딘 교수는 말한다.


번역은 노벨문학상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파울 텐가르트Paul Tenngart와 카를 오게루프Karl Ågerup가 편집한 신간 '문학 번역과 노벨상'은 번역가들이 수상자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계 유대인 시인 넬리 작스Nelly Sachs(1966년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1971년), 작가 모옌莫言(2012년)의 작품을 번역한 이들은 모두 스웨덴 한림원 회원이었다.


노벨상은 세계 문학의 정전을 더 포용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세계로 문호를 넓힌 이 상은 최근 성별 균형도 이뤘다. 이는 2017년 미투 운동 관련 추문 이후의 변화다. 당시 여성 18명이 한림원 회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의 프랑스인 남편에게 성폭력과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훗날 수감되었다. 전 세계적인 추문이 잇따르던 해였기에 이 사건은 스웨덴 국외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나, 한림원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규정상 사임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여러 회원이 물러났고 추문 이후 개편된 '18인회'에는 훨씬 더 많은 여성이 포함되었다. 한림원은 1년 후 2018년 상을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에게 수여했으며 2018년 이후 여성 수상자가 세 명 나왔다. 노벨문학상에 관한 스웨덴어 책을 쓴 카이 슐레르Kaj Schueler는 실제로 정확한 패턴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 수상한다는 것이다. 이 패턴이 계속된다면 2025년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수상에 이어 올해는 여성이 상을 받을 것이며 어쩌면 찬쉐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수상자들의 반응도 이 상을 둘러싼 일화의 일부다. 1962년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자신이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했다. "솔직히, 아뇨." (많은 비평가가 동의했다.) 사뮈엘 베케트(1969년)가 아내 쉬잔과 함께 튀니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그의 프랑스 출판사로부터 전보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했습니다. 몸을 숨기실 것을 권합니다." 소식을 들은 쉬잔은 탄식했다. "이런 재앙이 있나요." 베케트는 매년 시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에 "빌어먹을 노벨 난장판의 날Nobloodybeldamday"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2007년 도리스 레싱은 식료품을 잔뜩 들고 택시에서 내리다가 집 앞마당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불쾌해했다. 수상 소식을 듣자 레싱은 탄식했다. "아, 맙소사." 좀 더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레싱은 말했다. "글쎄요, 이 얘기가 나온 지 벌써 30년이에요. 아시다시피 기쁜 만큼 기쁜 거지, 그 이상으로 기뻐할 수는 없잖아요."


2014년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는 "이제는 노벨상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 뒤 2019년 수상했으며,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지지한 전력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은 한림원의 전화를 무시했고 2주 넘게 수상 사실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벨상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우연성을 깎아내리기는 쉬워도, 이 상은 의미가 있다. 딜런의 수상은 조롱을 받았지만 무엇을 문학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세계적인 논쟁을 촉발했다. 또한 이 상의 훌륭한 점은 작가의 인기가 아니라 작품의 수준이라고 판단되는 것만을 고려한다는 데 있다. 수상자인 옐리네크(오스트리아·2004년)와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독일과 루마니아·2009년)는 자국에서조차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다.


독일인들이 '노벨상 효과Nobelpreis-Effekt'라고 부르는 현상은 도서 판매량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단편소설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가 2013년 수상한 다음 달, 작품 판매는 조국 캐나다에서 4424%, 이탈리아에서 4213%증가했다(이탈리아에서는 기존 판매량이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수혜자는 소규모 출판사인 경우가 많다. 요즘 번역 문학을 출간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들이다. 영어권에서는 런던 남동부의 출판사 피츠카랄도가 정규직 직원이 여섯 명뿐인데도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소속 작가 네 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토카르추크,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욘 포세Jon Fosse다. 메딘 교수는 에르노를 몰랐던 머나먼 나라의 아이 한 명에게라도 에르노의 책이 닿는다면 이 상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서평과 독서 자체가 쇠퇴해가는 세상에서 노벨상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셜미디어에서 시인의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벨상 발표뿐이다. 온갖 조롱과 분노를 동반할 10월 8일의 발표는 문학에 이로울 수도 있는 오래된 의식이다.



사이먼 쿠퍼는 파이낸셜타임스(FT)를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옥스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1994년 FT에 입사했다. 초기에는 스포츠에 사회학과 경제학적 통찰을 접목한 비평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스테판 시만스키와 함께 쓴 『사커노믹스Soccernomics』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며 FT 위크엔드 매거진 등을 통해 유럽 정치, 국제 관계, 사회·문화 전반을 다루는 심층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영국 잡지편집자협회(BSME)로부터 '올해의 칼럼니스트'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